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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솔직한 고백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난 이 저작을 보다가 조금 잤다. 여러 탓을 돌리며 회피할 수도 있으나 이를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먼저 이 고백을 한다. 그래도 중간까지는 어찌저찌 따라왔고 끝을 보기는 했기에 비록 반푼이 감상이나마 글을 남긴다.

대 히피아스의 내용은 사실상 개념 제대로 정의하기에 가깝다. 이는 다른 저작인 에우튀프론에도 적용이 되는 사항이나 이 저작에선 히피아스는 에우튀프론만도 못해 제대로 하지를 못한다. 이는 예시적 정의에서 드러난다. 그는 자꾸만 예시적 정의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히피아스 입장에선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트라쉬마코스가 국가에서 지적했듯 소크라테스는 큰 틀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닌 작은 부분을 꼬치꼬치 지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은 이런 엄밀함으로써 존재한다. 인식론에서 게티어의 작은 논문 하나(히피아스의 말로는 조각낸 것)가 쏘아올린 영향을 생각하면 이는 무시하지 못할 문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대 히피아스는 이 문제에 천착한다. 거기엔 적합함, 유용함, 신체적 즐거움 등이 답으로 나온다. 그러나 히피아스의 주장에 소크라테스가 반박을 함으로써 논의는 미지로 빠진다. 그런데 나는 소크라테스의 반박이 옳은 것인지, 그것이 적합한 비판인지 의아스럽다. 그는 아름다움과 적합함 등을 혼용하기 때문이다. 예로 초반에 나온 사물로서의 아름다움, 실용성으로서의 아름다움, 유용함으로서의 아름다움 등 아름다움이란 것을 사실상 훌륭함(arēte)으로 바꿔도 아무런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런 쪽의 아름다움에 관해 답을 하면 은근 슬쩍 다른 쪽의 아름다움으로 빠지는 것이 반복된다.

사실 소크라테스도 아름다움이란 것을 혼용하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려 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이란 것의 범위를 내리지 않으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논의하는 것은 꽤나 이상한 일이다. 그것은 번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박종현 역본의 주석에선 그 아름다움의 원어가 뜻이 많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단어적 구분 없이 엄밀한 정의를 내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로고스라는 단어의 뜻이 논변, 말, 얘기, 대화 등 수많은 뜻으로서 작용하나 이를 대화-맥락적 구분 없이 무차별적으로 물어보는 것은 부당한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이는 소 히피아스에서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비판하며 바라보아야 하듯 이 또한 비판을 가하며 보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저작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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