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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많은 시간을 쏟아 한 권을 독파해낼 여유가 없어졌다. 대신 매일 조금씩 읽을 수 있는 책들, 가령 시집이나 단편 소설집을 골라두었다. 「10 ½장으로 쓴 세계 역사」는 아마도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접하고 장바구니에 담아둔 것으로 기억한다. 추천사는 사실 전혀 기억나지 않고, 단편 소설집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줄리언 반스나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는 단 하나도 조사하지 않고 눈에 쑤셔 넣듯 이 책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추천할 만한 이유가 분명한 소설이었다. 매우 참신한 소설들의 연속이었다. 창의성으로만 치면 이 책에 견줄 책이 얼마 없으리라 확신한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대체로 '관점'이라는 주제를 공유한다. 첫 작품인 「밀항자」는 인간의 관점에서 기술되어오던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방주에 몰래 탄 좀벌레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이와 더불어 성경에서 부여하는 인간의 권위나 노아의 이미지를 아예 부숴버린다. 인간과 성경을 중심에서 내쫓는 도발적인 서사는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많이 옅어진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난파」는 아예 그림 하나를 상상하게 하고 그 그림에 대한 여러 해석 방법을 보여주며 독자를 교란시킨다. 없는 것을 당연히 있는 것처럼, 픽션을 에세이처럼 쓰는 반스의 기술은 보르헤스를 방불케 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산」은 광신자와 평범한 신도의 시선을 계속 대비시킴으로써 세상의 의미에 대해 되묻게끔 유도한다. 작년에 읽은 플래너리 오코너가 생각나는 소설이기도 했다.
역사 속에서 '어떤 사건'의 존재 자체는 사실이다. 존재를 의심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증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이 갖는 의미'에 대해 물으면 도무지 진실을 특정할 수 없다. 너무도 많은 해석이 난립하기 마련이다. 결국 역사는 '누군가가 자기 시점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일뿐이다. 물론 객관성이 미덕이지만, 완전히 객관적인 주체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사건이 갖는 의미'를 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범적인 답안은 이성이겠지만, 실제로는 그보다는 감성이다. 각자가 추구하는 욕망, 각자가 품은 사랑이 같은 것을 다르게 만든다.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자연조차도 어떤 사람에게는 신의 조화가 깃든 신성한 곳이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사물의 집합일 뿐이다.
세상을 완벽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고 없고와는 별개로 내가 혐오하는 존재도 세계의 일부분으로서 나와 동등한 권리로 존재한다. 우리 이야기에서 존재를 맘대로 지우거나 만들 수는 없다. "직시해야 한다. 모든 것은 '정말'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부분들, 특히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부분들이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살자면 세상은 버티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인간은 사건이 아니라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다. 갑자기 "태양은 떠오르고 있지만 '당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불쾌해지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가 삶을 살고 세상 일에 참여하는 것은 우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또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다고 세상이 멈추지는 않지만,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멈춘다. 그러므로 반스는 여태까지 한 현상에 관한 여러 해석을 보여주며 '주관성의 무용성'을 보여줬으면서도 끝내 이렇게 말하고 만다. "사랑은 우리의 인간성을 부여하고, 또한 우리의 신비주의를 제공한다. 우리에게는 우리 이상의 것이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랑이 행복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행복을 찾아가며 악착같이 고된 세상일을 버틸 이유도 없다. "사랑이 우리를 실망시킨다 해도, 사랑이 우리를 실망시키지만, 사랑이 우리를 실망시키기 때문에, 사랑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여전히 우리는 사랑을 믿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세계의 역사와 타인의 진실에 항복하는 것이다."
반스의 사랑 이론은 인간의 한계와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훨씬 지성이 발달했다지만, 사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어리광쟁이다. "사람들은 받을 만한 것을 받기보다는 원하는 것을 받기를 좋아하죠." 그래서 자신에게 오는 축복의 당위성은 그다지 의심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잣대로 평가하며 멋대로 천국의 열쇠를 뺏으려 들기도 한다. 다만 이런 이기심은 이타심으로도 번질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기적이므로, 자신 이외의 사랑하는 존재가 생길 때 이타적으로 변한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에 타인이 깃들면, 사람은 합리적이지는 못하더라도 품격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꿈꾼다면 그만큼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반스의 주장에 동감하는 바이다.
다만 소설들 전체를 볼 때 아쉬운 부분도 있다. 반스는 10개의 소설에 더해 1개의 에세이를 실었고 이들 사이에 유기성을 부여하려 애쓴 것 같다. 그래서 소설들마다 반복되는 모티프들(나무좀, 노아의 방주, 선별)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반복에도 불구하고 소설들 각자가 주는 느낌은 완전히 별개다. 그래서 모티프들을 발견하더라도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해석하는 재미에 취하다 보니, 반스가 비장의 카드로 준비한 (사랑 이론이 실린) 삽입장은 뜬금없게 느껴진다. 차라리 해석 이야기에 끝까지 중심을 뒀다면 이런 비판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편협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갑자기 삽입장으로 사랑 이야기가 나오고, 다시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 듯 보이는 이야기들이 후속 장으로 이어지다 보니 감동보다는 의아함이 더 컸다. 차라리 삽입장을 에필로그로 뺐더라면 나았을 것 같다.
번역도 아쉽다. 물론 2010년에 번역된 작품의 전자책을 읽었으므로 현재 유통되는 판본과 다른 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오타가 많다. 퍼거슨 양이 갑자기 휘거슨 양이 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등 꽤나 심각한 오류도 있다. 특히, 아무리 2010년대에 레스터 시티가 2부 리그나 전전하던 소위 '듣보잡' 팀이기는 했지만, 레스터 시티를 꾸준히 '레스터 시'로 번역한 것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레스터 시가 FA컵에서 우승했다'라는 문장부터가 이상하지 않은가? 만약에 작품에 나오는 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으면 '맨체스터 연합'이라고 번역했으려나? (그래도 '레이세스터 시'라고 번역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아무튼 지금 팔리는 판본에는 수정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소설들 하나하나에 대한 짧은 감상을 덧붙이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두 번째 문단에서 이미 말한 것들은 생략한다. 「방문자」는 무고한 사람들을 팔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던 프랭클린의 운명이 슬프고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사람은 이러나저러나 자신과 그 주변 사람이 우선이라는 비정한 법칙을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폭넓은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종교 재판」은 인간과 좀벌레 사이의 재판이라는 설정도 재밌었지만 법정답게 서로 트집을 잡는 모습이 특히 재밌었다. 「세 개의 간단한 이야기」는 세 이야기가 있지만 솔직히 요나 모티프와 세인트루이스 호 이야기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단 세인트루이스 호 이야기가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많이 침통해졌다. 「상류로!」는 재미로 치면 으뜸이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관철하다가 서로 완전히 이해할 기회를 놓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아라라트 계획」은 재밌기는 했지만 별다른 의미는 찾지 못했다. 그간 나왔던 모티프들을 모두 넣어서 가장 강한 유기성을 가진 소설이 됐지만,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꿈」은 철학적인 메시지로 치면 가장 훌륭한 작품이었다. 자신은 아무런 수고 없이 천국에 들어서 원하는 것을 누리면서도 천국에서 함께 지내는 남은 함부로 재단하고 천국에서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생각하는 화자의 짧은 식견이 반성을 잊은 내 의식에 경종을 울렸다. 참신한 이야기가 많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소설이었다. 다음에 다시 읽을 일이 있다면 좀 더 꼼꼼히 읽고 싶다.
반스 이 양반 소설들이 다 사변적이라더니 이건 더 실험적으로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