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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작, 당신이 언젠가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정말인가요?
시한부 폐병 환자인 입폴리트가 주인공 미쉬킨에게 건네는 말이다. 언젠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18살에 시한부 판정을 받은 입폴리트에게 이러한 공작의 희망찬 철학은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다. 그에게 희망은 없다. 입폴리트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나름의 결론으로서 권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그의 삶의 결론이었다. 아무것도 안해도 주위에 사람이 모여드는 미쉬킨이나 상류층 사람들과 달리 그를 사랑하고 애정해주는 사람은 없다. 외로움 속에서 그는 점차 어두움의 늪으로 빠져가고 그 끝은 스스로 삶을 끝내는 것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에 대한 결론을 낭독하고 삶을 끝내려던 그의 야심찬 계획에도 그의 목표는 좌절된다. 자신의 죽음마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작중 주인공 미쉬킨 공작은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폐병 환자에게도 선의의 손길을 내미는 지극히 선한 사람이다. 그는 마치 그리스도를 닮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았다고 그가 예수의 전능한 신적 능력까지 닮은건 아니다. 말하자면 그는 성격적으로는 경건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인간이다. 즉 그는 그 주변의 각각의 사정으로 불행하고 비참한 어린 양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준다는 점에서 진정 신성한 인간이지만, 그 역시 현실에 얽매인 한 인간이기에 그 사람들을 비참한 현실에서 구해 내지는 못한다. 이것은 결말에서 그가 나스타시야에게 베푼 그리스도적 사랑이 거절됨으로써 증명된다.
작중에서 미쉬킨은 두 여자와 얽힌다. 한편에는 불행하고 상처입은 여자 나스타시야가 있고 다른편에는 행복하게 자랐지만 오만한 아글라야가 있다. 일단 두 여자는 자라난 환경부터 다르다. 나스타시야는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서 토츠키라는 불한당 부자에게 입양되어 성적 학대(작중에서 묘사가 확실치는 않음)를 받아 스스로를 불결한 여자라고 여기게 된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상처를 수치라고 여기면서도 자신을 노리개로 만든 토츠키에게 분노한다. 이 분노는 나스타시야를 살아있게하는 원동력이자, 그녀의 삶을 단란한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주범이다. 자신이 타락했다는 나스타시야의 자기세뇌는 미쉬킨이 건네는 구1원의 손길을 거부하도록 만든다. 미쉬킨이 1차로 그녀에게 청혼했을 때 그녀는 그토록 더러워진 자신에게 순수한 호의와 애정을 바치는 그를 보고 혼란스러워하며 도피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미쉬킨이 그녀를 선택했을때 그녀는 드디어 그의 사랑을 받는 듯 하였으나 결국에는 다시 로고진에게로 돌아간다.
한편 또다른 여주인공 아글라야는 나름 상류층 집안인 예판친 가문에서 자라난 어여쁜 여성이다. 그녀는 부모님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세 자매 중에서도 덕보적인 미모를 가져 당연하게도 높은 사회적 지위와 명성과 재산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기를 기대빋는다. 아글라야는 선하면서도 고결함과 순수함에 끌리는 성격이라 공작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시기와 질투로 인해 스스로 자신의 사랑을 망쳐버린다. 그녀는 누구보다 사랑을 독점하려는 욕심 때문에 누구에게나 사랑을 주려하는 예수와 같은 공작을 참지 못한다. 미쉬킨에게 아글라야가 인간적 사랑의 대상이라면 나스타시야에 대한 사랑은 기독교적인 사랑, 즉 약자와 죄 지은 자에 대한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사랑이다. 아글라야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이었기에 겅작에게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하고, 나스타시야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공작을 보고 좌절한다.
<백치> 속 인물들은 일견 오락가락하고 어딘가 미쳐있는 사람들 같지만 그 누구보다 우리들을 닮았다. 나 역시 로고진, 나스타시야, 아글라야 세 인물들의 결핍과 죄의식에 깊은 공감을 느끼며 작품을 읽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항상 어딘가 결핍되어 있으며 그 부족한 무엇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법이다. 사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것은 순수함, 선함, 솔직함 같은 것들일 것이다. 이것은 어린아이에게는 흔히 보이지만 성인에게는 가장 부족한 것이다. <백치>의 세계에서 미쉬킨은 그런 결핍을 채워주고 보듬어주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미쉬킨은 분명히 이 세계의 성자이다. 그가 가진 이름다운 성격, 그의 순수한 선의와 헌신은 그 주변의 인물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그런데 그가 가장 사랑했던 두 여인은 모두 적어도 독자가 기대하는 방식으로는 구1원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미쉬킨의 믿음대로 순수한 선의가 비참한 세상을 구해내지 못한다는 것일까? 그런데 이것은 미쉬킨의 잘못, 그의 사상의 실패가 아니다. 그의 선함은 두 사람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해지길 거부한 건 나스타시야와 아글라야라는 두 인간의 인간적 연약함 때문이다. 나스타시야는 끝까지 자신의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글라야는 인간적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미쉬킨을 져버렸으나 미쉬킨은 그녀들을 끝까지 져버리지 않았다. 미쉬킨은 나스타시야가 떠난 뒤에도 예브게니에게 그의 행방을 물었고 아글라야를 다시 찾아가려 한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미쉬킨이 백치였으니 가능했고 동시에 성자(聖者)였기에 가능했다.
누구보다 선했지만 파멸의 열쇠고리가 되어버린 불쌍한 인물...
아예 희망이 없는 작품은 아니지만 스위스로 다시 떠나는 미쉬킨의 결말은 참 쓸쓸했음
백치가 의외로 재밌더라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구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썩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