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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후기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딱딱하고 거칠게 번역한 글투를
눈으로 씹으면 이 소설을 읽었는지. 사소한 기억은 잡을 틈도 없이
쉽게 흘러버리고, 버려진 기억들은 의식 밖에서 해류를 타듯 돌고 돌아
멀고도 긴 여행을 한다. 그러다 우연히 출발했던 곳, 떠내려갔었던 데로
다시 돌아온다.
나는 뜰 안에서 빛바래 희미해진 채로 떠밀려진 기억 한 조각을 발견했다.
기억 조각은 내 삶의 일부였었다. 촛불처럼 흔들리는 영혼, 한계가 없을 것
처럼 느껴지던 세상 속에서 내게 주어진 선택은 가늠할 수 없는 막막함을
안겨주었다. 불확실성이라는 파도가 정신과 영혼을 흔들었다.
나는 확실성을 찾아. 나를 단단히 붙잡아 줄 그 무언가를 찾아 긴 여행을 했었다.
손 안에 든 기억 조각은 이제 내가 그때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 지를 표시하는
이정표가 될 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은 없었다."-11
헤세가 밝혔듯 이 소설은 결코 완성된 인간을 다루지 않는다. 그러니
성장 소설로 다룰수는 없다. 헤세는 니체의 철학을 소설로 풀어썼고,
니체 철학은 주기 순환이라는 끊임없이 활동하는 의지에 대해 다룬다,
한 인간이 성장하여 인격을 완성하는 것으로 귀결하여 끝맺는 게 성장
소설 특징이라면, 소설 [데미안]은 먼 거리에 있다. 가령 우리는 달려
가는 기차를 보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말하지 않는다. 열차가 멈추고서
야. 플랫폼에 발을 딛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한다. 니체 철학은
멈추지 않는 운동,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달리는 기차다. 순간을 포착할
수 있어도 끝을 모른다.
'그곳에서는 두 세계가 뒤섞였다. 밤과 낮이 두 극으로부터 나왔다.'
-12
' 그 애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21
대립하는 두 세계는 니체 철학을 설명하는 시작점이다. 싱클레어가
생성된 조형 세계를 대표한다면, 크로머는 조형 세계를 파괴하는 힘
을 상징한다. 대립하는 양상이 전개됨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달라진다. 곧 싱클레어가 크로머에게 두려움을 갖고 굴복한다면
크로머는 그의 세계를 기꺼이 파괴할 것이다. 싱클레어가 두려움에서
오는 불안을 걷고 맞서야만이 대립하는 세계는 동시적으로 이어진다.
강한 자가 세계를 이어 갈 수 있다. 여기서 '강한'은 다분히 주관적이
다.
'내 유년의 끝이 왔음을 알려주던....'어두운 세계', '다른 세계' ...
이제는 나 자신 속에 박혀 있었다.' 67
헤세는 싱클레어의 유년 시절를 끝마치면서 이 영혼을 디오니소스가
벌이는 광란에 집어던진다. 디오니소스에 대해 니체는 말한다.
"고통이 쾌락을 일깨우는 현상, 가슴 속에 일렁이는 희열이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내는 현상, 쾌감이 절정에 도달한 순간 놀라 마비
된 몸이 고통스러운 절규를 뱉는 현상,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탈에 울부짖는....." -[비극의 탄생], 58, 김남우 역-
그러나 의심스럽다. 고통, 희열, 쾌감, 절규, 허탈 등은 사실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닌가? 디오니소스가 드러내는 진실이 이를 받아
들이는 개인에게 아닐 수도 있다. 계속 이야기를 따라 가보자.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주었다.' 106
'이제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숭배해야 한다.'
'삶은 다시 예감과 비밀에 찬 영롱한 여명이었다.'
'캄캄한 것은 아무것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어떤 추한 것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107
디오니소스가 벌인 광란에서 길을 잃은 싱클레어는 오랜 방탕 끝에
베아트리체의 축복을 받아 다시 아폴론이 있는 세계로 올라선다. 결국
이런 식이면 끝이 없는 순환고리를 따라 도는 것과 같다. 인간은 점점
강해져야만이 점증하는 파괴적 힘으로부터 자기 세계를 이어갈 수 있
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
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122
"우리는 그 이름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 과제
를 지닌 어떤 신성의 이름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124
목적 없음이 주기 순환 철학에 동력이 되지 않던가. 헤세는 이 힘을
과제를 지닌 신성으로 바꿔버린다. 이 의도는 [에바 부인]편에서 드러난다.
"우리의 과제는 세계 안에서 하나의 섬을 제시하는 것, 어쩌면 하나의
모범을, 아무튼 살아가는 다른 가능성를 알려주는 것이다."191
"무서움과 증오를 일으켜 당시의 인류를 그 옹색한 목가적 생활로부터
끌어내 위험하게 넓은 곳으로....인류가 가는 길에 영향력을 발휘할 사
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들에게 닥칠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에...."194
니체 철학은 쇠퇴를 병든 것으로 간주한다. 또 다른 생성이라는 과정
을 지나기 위해 부수어야만 하는 것으로. 헤세는 여기서 필연적인 역할을 할 사
도들을 등장시킨다. 이 사도들은 아브락사스를 지키며 따른다. 그들
은 새로운 생성과 번영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이 세계가 파괴되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아브락사스의 사도로, 파괴와 번영의 집행인 자격으로 수 백만의 희생 제물을
요구한다. 역겨운 일이지만, 헤세는 진지하게 썼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날 거야......이제 나는 거칠게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걸." 218
소설은 데미안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난다.
기억 조각을 더듬어 보았다. 이정표로부터 꽤 멀리 왔다. 확실성은 없다. 나는 그 길에서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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