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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 히피아스의 논의를 완벽히 마무리짓지는 못했지만 추가적인 감상과 글을 남겼으니 어찌 됐건 일단 마무리한다.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788116


이것들이 그 감상이다.


여하튼 소 히피아스가 주제인데 너무 딴 얘기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 것이다.

그럼 시작하자.

소 히피아스의 논의는 당혹스럽기 그지 없다. 진실을 잘 고할 수 있는 자는 거짓도 잘 고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이 둘이 같은 사람이다. 자발적 악행을 저지르는 자가 비자발적으로 저지르는 자보다 낫다. 히피아스는 이와 대조적이며 당황스러워한다. 사실 우리의 일반적 입장은 히피아스에 가까울 것이다(칼리클레스는 아니겠다만.). 소크라테스의 사상적 입장과도 반대되고. 그럼 어째서 반대가 되는 것일까? 그건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지행합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보면 대화의 모든 논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진실된 자는 거짓을 고할 수 있는가에서의 답은 능력과 행위의 일치시킴에서 발생하는 오류다. 능력(할 수 있음)은 행위가 아니다. 소크라테스적 입장에서 본다면 진실이 옳은 것임을 아는 자는 거짓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을 것이다(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 대해 의지박약이란 개념을 놓아 반박한 적이 있다고 기억한다.). 그것이 옳은 것이기에. 자발적과 비자발적 또한 이런 지행합일에서 보면 자발적으로 하는 자는 덕에 대한 앎이 없는 자다. 비자발적의 덕에 관한 상태는 미지수다. 결국 자발적이라는 것은 행위의 선택권이 있었다는 뜻이고 이는 스위치를 뜻한다. 스위치를 움직이는 것은 그 사람의 앎이다. 결국 그 사람이 자발적으로 한 것으로 실상 능력의 부족(앎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기에 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앎을 요구하고, 이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말한다.

+) 김유석 교수님이 지적하듯 거짓말을 하는 데 있어서 앎은 보탬이 될 뿐이지, 그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히피아스의 태도를 보며 지적하고 있는데 그가 청중 설득을 목표로 하기에 소크라테스의 논변에 거부를 표하며 반응을 살핀다는 것이다. 이는 소피스트와 자신의 스승을 구분하려 놓는 장치일 것이다. 이런 플라톤의 구분은 개와 늑대의 비유, 요리사와 의사의 비유 등이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오류 지적 대환영



이제 고르기아스를 읽을 차례다.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카넷은 분량이 많으니. 그리고 고르기아스는 중요 철학자이기에 그의 사상도 다루는 것이 좋아 보여 소피스트 단편 선집도 재독해야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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