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관련한 이야기가 페북에서 떠돌기에, 문학 출판 시장의 변화에 대해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1)
2010년대 이후, 한국 문학 출판에서 여성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짐

- 더스쿠프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한 작가의 성별은 여성이 66.5% 남성이 33.5%로 여성이 2배 가까이 많음

- 2025년 교보문고 한국문학 베스트셀러 40편 중 남성 작가는 정대건, 김기태 등 4명뿐임

- 내부 평가도 좋지 않음. 교보문고에서 매년 조사하는 ‘2025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서 언급한 국내 소설 작품 19편 중 남성 작가는 이기호, 박선우, 민병훈, 정용준 네 사람뿐.

- 전통적으로 남성 작가가 우위를 보였던 장르 문학의 경우도 여성 작가들에 대한 주목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음 (특히, SF 소설이나 고딕 호러 소설의 경우, 여성 작가들의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음)

- 전체적으로 남성 작가들은 데뷔, 인기, 내부 평가 등에서 지표가 좋지 않음

(2)
- 국내뿐 아니라 영미권 등 해외에서도 여성 작가들의 약진은 뚜렷한 통계적 수치로 나타남

- 조엘 왈드포겔의 유명한 연구 <미국 책 시장에서 여성 저자의 성장>에 따르면, 19세기에는 도서의 약 10%만 여성 저자가 썼으며, 1960년에도 여성 저자 비중은 18% 정도에 불과했음.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여성 저자 비율은 급격히 증가해 2020년에는 출판된 책의 절반 이상이 여성 저자의 작품이 되었음 (아마존 통계 이용)

- 영국에서는 조애너 토머스코어의 유명한 <옵저버> 기고, <여성은 어떻게 소설의 세계를 정복했는가>(2021)에서 비슷한 논의가 있었음. 2020년 베스트셀러 소설의 62.9%가 여성 작가 작품임. 특히, 순문학의 경우 그 비중이 75%에 달함. 문학상 후보, 주목받는 신인 등에서도 여성 작가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함

- 독일의 경우도 2000년대 초반부터 유디트 헤르만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이른바 '아가씨들의 기적' 현상이 화제가 되었고, 여성 작가 우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

(3) 변화의 원인
- 사회 경제적 통계에 바탕을 둔 연구는 없으나, 경험적으로 볼 때 크게 그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음

첫째, 문학 출판 바깥에선 여성의 고등교육률 증가 및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표현 욕구가 커졌다는 점, 그리고 자본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지 않는 출판에서는 가장 쉽게 그 표현 수단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침 (이는 영화, 게임 등 대자본이 필요한 영역과 비교해 보면 쉽게 그 차이를 알 수 있음)

둘째, 독자층의 성비 불균형 : 소설의 주 독자층인 20~40대 여성의 선호도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 특히, 여성 독자들은 전통적인 이념, 역사, 전쟁 등 거대 담론에 바탕을 둔 이야기보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또는 독립하려는 여성의) 개인 일상, 감정, 사회적 위1상, 소수자 문제 등을 다룬 이야기를 선호함

-> 1) 가부장제 사회에서 일상이 크게 부족한 남성 작가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리 (뮤지컬, 전시회, 영화 등 문화 콘텐츠 시장 전반에서도 여성 취향 콘텐츠 또는 여성 취향 서사에 대한 신념 소비가 강세임)
2) 남성 작가들의 일상 서사는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찌질한 남성의 자기 연민적 이야기, 냉소적 지식인의 애티튜드를 갖춘 잘난척 이야기가 흔한데, 이는 여성들에게 좀처럼 공감받기 어려움(소위 힐링 소설은 남성 작가들이 어떻게 이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줌)

셋째, 출판 편집 인력의 여성 비중이 극단적으로 높아진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 국내 주요 출판사의 문학 편집자 중 여성 비율은 80%에 가까우며, 이는 여성 작가를 발굴하고 선호하는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 영국의 경우도, 출판 편집 인력의 약 78%, 마케팅 인력의 83%, 홍보 인력의 92%가 여성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남.

(4) 문학 시장의 여성 우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 정치적 올바름이나 캔슬 컬처 땜에 남자들이 함부로 말하기 어려워졌다든지 하는 건 다소 엉뚱해 보임 (물론, 나는 소셜미디어와 결합한 집단적 형태의 정치적 올바름 강요나 캔슬 컬처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고 보기에 이에 반대함)

- 여성이 더 잘 쓴다거나 남성이 약화했다는 식의 분석 역시 별 근거 없는 것으로, 피상적 아무 말에 가까움

- 왈드포겔에 따르면, 여성 저자의 책 비중이 증가한 현상은 남성 작가 또는 남성 독자의 시장 이탈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책 생태계의 다양성을 높여 독자 만족도를 전반적으로 크게 높인 것으로 나타남.(여성 저자 선호 독자의 만족도가 더 크게 높아짐)

- 여성 저자의 책 비중이 높아지면서 여성 저자의 수익은 2배로 증가했으나, 남성 저자의 수익은 일부 하락하는 데 그침. (여성 작가는 남성 작가의 대체제도 아니고, 출판 시장 역시 여성 작가의 참여로 인해 점차 그 규모가 커졌음) 이는 여성 저자의 신규 참여가 독자 복지(책 선택폭 확대 및 다양화)를 증가하는 데 기여했음을 보여줌

- 여성 작가의 증가는 전체적으로 도서 시장이 성별 포용성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임을 보여주는 성공 사례임. 이는 영화, 게임 등과 비교해서 매우 독특한 현상임.

(5) 남성 작가들은 어디로 갔는가?

- 서사에 대한 선호는 남녀 공통이고, 직접 서사를 창작하고자 하는 사람의 비율은 일정하다고 생각함. 따라서 남성 작가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들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주로 살펴야 함

- 영국의 조사에서는 여성 작가들이 문학 시장에서 활약하는 동안, 남성 작가들이 점차 논픽션과 장르 소설로 이동했다고 되어 있음. 경험적으로 볼 때,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임. 즉, 남성 작가들은 출판 시장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출판 내 다른 영역으로 이동했음.

- 남성 창작자들이 대규모로 웹소설이나 영화, 연예 기획 등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남. 특히 웹툰 작가는 약 3분의 2가 여성이지만, 웹소설 작가는 주로 30대 미혼 남성들이 인기 작품의 주력임(2019년 문화일보 기사)

-> 남성 독자들 역시 웹소설로 급격히 이동함 (화산귀환, 재벌집 막내아들, 하남자의 탑공략법,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등 인기작은 모두 남성의 '버림받음'(호구)과 '사이다'(먼치킨적 성공) 사이의 간극을 핵심 동력 삼아 인기를 끔)

-> 최근 로판이 인기를 끌고, 여성 독자의 웹소설 이동이 증가하면서 웹소설에서도 여성 작가들의 참여도가 점차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

- 소셜미디어 등을 중심으로 한 정치 서사(음모론 등)나 재태크 서사 등에 쉽게 접속해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이쪽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도 흔해짐 (이는 정치성향이 좌우를 막론하고 나타남)

-> 페북이나 인스타 등에서 특정 정치/사회 사안마다 온갖 해석을 늘어놓는 이들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임(옛날 같으면 소설 쓸 분들임) 주류 언론에 맞서는 이런 정치 서사는 세계에 대한 해석, 자아의 투영, 정서적 배-설, 진실의 구현 등 소설 쓰기와 거의 동일한 사회적 욕구를 실현시켜 줌

-> 게임화한 현대의 정치 서사는 실화에 바탕을 둔 대서사시에 가까운 편으로, 이는 정치 권력을 둘러싸고 MMORPG의 공성전 같은 재미와 흥미를 불어넣음. 여기에 몰두하면 작은 서사가 주는 도파민 따위는 시시해 보임

-> 특히, 매노스피어를 중심으로, 현대 소설이 주목하지 않는 남성의 고통, 사회적 소외, 억울함과 분노, 박탈된 소속감 등을 다루는 서사의 유통과 소비가 무척 활발함 -> 유튜브는 이들에게 수익 모델을 제공함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 참고)

- 대통령까지 부추기고 있는 재태크 서사는 단기적으로 실제 돈이 오간다는 점에서 그 도파민 중독성이 가장 높은 편임 -> 이런 자기계발 서사를 개발해 먹고사는 이들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남성들 비율이 극단적으로 높은 편임

(6) 문학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 남성 작가들이 문학 시장에서 전반적으로 빠져나가는 건 성장이 부진한 출판 시장에서 다양성 증가가 곧 개별 서적의 평균 판매 부수 저하로 나타나는 현상과 관련이 깊음.

-> 남자가 가장으로서 가족들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가부장적 인식과 소설로 먹고살기 어려운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크게 영향을 주고 있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지 않는 글쓰기는 죄악(게으름, 무능력 등)으로 규정됨.

-> 작가란 과거엔 지식인이나 선생님으로 대접받는 권위 있는 명예직이었으나, 현재는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일상적 직업인으로 전락했음(게다가 지금은 아무나 써서 누구에게나 읽힐 수 있는 출판의 민주주의 시대로, 작가가 되는 게 남성 가장들에게 큰 매력이 없음)

- 소설 출판 시장이 기약 없는 희망 시장에 가깝다면, 웹소설 시장은 꾸준히 쓰면 돈이 생기는 근면 노동 시장에 가까움 (물론, 20만 명의 웹소설 작가 중 대부분은 전업 작가로 살기 어렵지만, 소설 시장보다는 형편이 좋음. 소설 시장에서는 극소수만 돈을 벌고 나머지 전부는 최저 생계비 수준의 전업 작가로도 살기 힘듦) -> 웹소설은 남성들이 도전할 만한 매력이 있음

- 남녀 평등이 훨씬 진전된 사회에서 여성들이 가족 경제에 책임을 지기 시작하는 북유럽 같은 나라에서는, 즉 글쓰기가 자아실현이 아니라 생계수단 역할을 하는 나라에서는 여성 작가들 역시 급격히 미스터리, 로맨스, 스릴러 등 장르 출판 시장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남.

-> 전업 주부 등이 자가출판 시스템에 부업으로 글을 올려 막대한 수입을 올린 후, 작가로 데뷔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음

- 순문학과 웹소설(자가출판)의 이중 시장에서 순문학이 금수저들 또는 중상층 계급 출신들의 놀이터가 되는 '문학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증가하고 있음 (문학의 사치재화)

-> 순문학은 돈이 안 되는 시간을 충분히 견뎌야만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작품을 쓸 수 있음 (공적인 예술가 지원 제도와 함께 문예지의 기능이 중요함. 문예지는 작가들이 무명의 세월 동안 편집자/비평가와 꾸준히 소통하면서 일정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핵심 사회적 장치임)

- 출판 환경이 나빠져서 문예지가 폐간되거나 작품 발표를 빌미로 구독 등을 강요하는 착취적 제도로 작용하면, 생계형 작가들은 문단에서 밀려나서 결국 문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부모 자산이 넉넉하거나, 고소득 전문직 배우자가 있거나, 자신이 자산가 또는 전문직 직업인 사람들만 남음

- 금수저들은 사회적 명예와 상징 자본, 즉 작가 또는 시인이라는 이름을 필요로 함. 근대 귀족들이 외교관 같은 직업을 얻었듯이, 작가는 21세기 사회에서 현대적 작위가 될 것임. 문단의 농담 중에 '압구정 김 시인'을 떠올려 볼 것.

->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문학을 하려면 부동산(자기만의 방)과 불로소득(연 500파운드)이 필요하다고 말했음 -> 연 500파운드는 현재 가치로 따지면, 한 1억 원쯤 됨.

- 최근 한국문학에 나타나는 몇 가지 징후는 문학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떠올리게 함. 읽는 독자들은 카드값, 갑질, 월세 문제로 고통받는데, 쓰는 작가들은 파리에서 유학하고, 뉴욕에서 여름을 보내고, 핀란드에서 휴가를 지내는 등의 일이 자주 눈에 띔. -> 전반적으로 수도권 중상층들의 삶이 점차 자주 반영되고 있음.

- 독자들이 자기와 비슷하고, 또 공감을 일으키는 삶을 찾아서 에세이로 이동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현상임

-> 이슬아에 따르면, 에세이도 페르소나를 설정해 사건들을 적절히 재조립한다는 점에서 소설과 다를 바 없는 서사 양식(이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에세이가 전통적 에세이가 아니라 오토픽션에 가까운 것임을 보여줌)

-> 아울러 넷플릭스 드라마, 웹소설 등도 중산층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를 다양하게 소화해 주고 있음. 이는 문학 출판에 강력한 경쟁재로 작용함. 따라서 작가들은 동시대 사람들의 공통 경험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