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어머니가 내게 쪽지 하나를 읽어보라고 건네준 적이 있다. 어머니가 서랍에 보관해두었던 그 쪽지에는 놀랍게도 내가 어렸을 때 쓴 글이 적혀 있었다.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곧장 눈길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 글에는 분명히 내 철학의 비밀이자 핵심이라고 봐야 할 표현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어떻게 여덟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머뭇거리는 손이 내 철학의 가장 본질적인 매듭을, 다시 말해 나중에 쓰이게 될 나의—그의—모든 저서는 그 표현의 힘겹고 장구한 해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야 할 정도로 핵심적인 내용을 무심결에, 그토록 정확히 묘사할 수 있었을까? 나는 아무 말 없이 어머니에게 쪽지를 되돌려드렸고, 그 뒤로는 다시 읽어본 적이 없다. 그것을 되찾는 일은 이제 불가능해졌고, 그 쪽지와 함께 나의 비밀도 영원히 사라졌음이 분명하다. 내게 남은 기억이라고는 그것이 무언가 텅 빈 중심 혹은 정지 상태나 틈새에 가까웠다는 것뿐이다. 그것은 마치 종이가 느닷없이 하얗게 변해버린 것 같은 느낌, 혹은 내가 살고 글을 쓰며 경험한 모든 것의 중심에 완벽하게 공허하고 완벽하게 경험 불가능한 어떤 순간이—비록 찰나에 불과하더라도—존재했으리라는 느낌에 가깝다.
당시에 글의 형태로 등장했던 것의 광채가 너무나 강렬했기에 나는 곧장 뒤로 물러서며, 내가 읽고 입으로 거의 중얼거리기까지 했던 내용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아이의—나의—손이 내가 보는 앞에서 글을 지우개로 지워버린 나머지 내 기억에는 공허함과 백색만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왜 그토록 성급하게 그 글에서 멀어지려 했을까? 어쩌면 고백하기 힘든 어떤 질투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평생 말하려고 했던 모든 것이 이미 어렸을 때 쓴 그 글귀 속에 궁극적이고 탁월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그런 표현의 경지에 다시 도달한다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불현듯 분명히 다가왔기에 불거진 질투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들
출판사 입장에선 쌀먹에 가까운 책 구성인데 나도 도서관 쌀먹해서 읽는 거라 결과적으로는 괜찮은 독서 경험
새삼스럽지만, 베르그손 말마따나 철학자는 하나의 직관을 평생 번역하는 걸 업으로 삼게 된 사람 같다
아감벤은 그 번역에 있어 다소간 우직한/강박적인 스타일이고
유아기에 대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집요한 관심
경계와 틈의 신비화
템페스트 속 마술사와 정령의 관계성
아무리 푸코와 벤야민을 들이켜도 늘상 르 토르라는 추억의 본향으로 회귀하려드는 하이데거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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