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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독갤을 보다 보면 실로 다양한 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걸 볼 수 있다. 아마 그 중에서 가장 비중이 많은 것은 갤주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고, 그 다음은 독갤의 아이돌 도끼, 라이벌 톨스토이, 나비단, 핀천, 하루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연코 내 눈길을 끈 것은 멜빌과 <모비 딕>에 대한 글들로, 글의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너무 어렵다’, ‘지루하다’, ‘고래 백과사전을 보는 느낌이다’ 라는 부정적인 반응 혹은 ‘인생책’, ’개명작‘ 등의 긍정적인 반응만 눈에 보였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이렇게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지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감명깊은 작품이 아닐까 한다.

읽기 전까지는 단순히 고래잡이에 미친 선장에 선원들이 깊게 감화되어 고래를 추격해나가는 그런 작품인 줄 알았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소설을 이렇게 단순히 표현하고 끝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역시 고래와 포경업에 대한 설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모비 딕을 읽었던 사람들이 왜 ‘백과사전’ 이라고 말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소설 속에서는 고래의 종류, 관련 저서, 고래 몸 속 기관들의 역할, 고래들의 생태, 무리 생활을 비롯한 다른 모든 것들을 설명한다.

거기에 더해 포경업의 역사, 경뇌유의 가치, 포경선 선원 부심, 관련 장비부터 해서 진짜 작품 이해에도 딱히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리 궁금하지도 않은 정보들을 먼저 늘어놓고서는

독자의 머릿속이 정보 과다로 인해서 고래 몸에 붙은 따개비마냥 복잡스러워질 때 쯤 소설의 ’결‘ 부분으로 진입한다.

물론 과장을 한 부분도 조금씩 있긴 하지만 소설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이나 제목만 보고 읽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많이 버겁게 느껴질만한 부분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대단했던 건 항해하는 모습은 소설 초중반부에 잠깐 나오고 고래 관련 정보만 계속해서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내용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스레 다시 인물들의 독백과 이스마엘의 서술, 항해로 이어지는 것이 인상깊었다.

한 챕터를 길게 가져가지 않고 1~5쪽 정도로 짧게 가져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소설의 흐름을 만드는 비결이 아닌가 싶었다. 너무 무거워진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서 독자들의 흥미를 유지하는 느낌도 들었다.

중간중간 연극처럼 구성되어있는 장도 있고, 노래, 시도 있는데 잊을 만 하면 나와줘서 독특하게 느껴지면서도 작가가 자기 해보고 싶은 거 시험삼아 넣어본 느낌? 아무튼 그랬다.


모비 딕에는 고래나 포경업뿐만이 아니라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인용과 묘사가 많이 들어가있기도 하다.

나는 기독교를 잘 몰라서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읽었는데,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생각들에 꽤나 중요하게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작품 속 문체도 꽤나 인상깊었다.

기본적으로 만연체 혹은 장광설이 대부분이었는데, 모비 딕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쫒는 에이해브의 광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면 장광설과 만연체만한 게 없다. 만약 모비딕이 헤밍웨이같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간결한 문체로 쓰여졌더라면 소설이 아닌 진짜 고래 백과사전으로 남았을 것이다.


단점도 있었는데, 앞서 말했던 고래 백과사전 부분 또한 이런 문체로 쓰여진 게 대부분이라, 읽는 데 굉장히 피곤했다.

물론 백과사전 부분은 소설의 재미보다는 낮선 것을 배운다는 것에서 오는 재미가 더 큰 부분이라 사람에 따라서 무슨 문체를 썼든 별 상관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진짜 논문처럼 딱딱한 말투로 쓰여진 정보들을 상상하면 그건 그거대로 끔찍해서 차라리 만연체가 더 낫지 않을까? 이건 사람마다 다르니 직접 읽어보면 된다.


관심이 가서 더 찾아보니 모비 딕 속에는 서사시적인 면도 약간 있다고 한다. 기독교 잘알이라면 기독교와 깊이 관련되어 있는 인물들의 대사만 봐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장광설은 아주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 문장을 곱씹으며 여러 번 읽다 보면 유사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품의 최후반부에 들어서 에이해브는 장광설을 이전보다 더 많이 하게 되는데, 도스토옙스키가 잠깐 겹쳐보일 정도로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


작품 속에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인물둘이 많이 등장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작품의 숨겨진 주인공인 에이해브를 꼽고 싶다.

에이해브는 오래 전 모비 딕과 맞서다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렇기에 에이해브에게 모비 딕은 숙적, 잡아야 하는 목표, 악 등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또한, 에이해브가 기독교의 죄인과 같다는 내용을 담은 종교적 해석에서는 목표의 달성을 일종의 ‘구1원’ 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모비 딕은 에이해브에게 아무런 감정도 갖고있지 않다. 그저 넓은 바다를 유유히 해엄치고 있는 것 뿐이다. 숙적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분노를 느끼는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이 상황에서는 한 쪽의 일방적인 증오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에이해브가 오랜 염원 끝에 고래를 잡아 목표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그가 원했던 구1원은 과연 존재했을까?

설령 구1원이 있다고 해도, 작품을 완독한 뒤의 감정은 조금 허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완독하고 나서 에이해브를 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그가 돈키호테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었다.

둘 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쫒으며, 광기에 휩쌓여있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도 않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신이 바라는 것, 해야 할 것을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나중가서는 다른 사람들(스타벅, 산초) 의 마음을 감화시키기도 했다는 점이다.


소설은 이스마엘을 제외한 모든 선원들이 전멸하는 것으러 끝난다. 바다로 끌려들어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악착같이 버텨 새를 깃발에 꽂아넣는 장면은 멜빌이 담아놓은 희망적 메세지가 아니었을까?

비록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신기루를 쫒고 실패할지언정 그 마음가짐에 의미가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모비 딕은 책의 그 두께만큼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만큼 여러 해석이 존재하는 책이고, 그 속에 정답은 없으니 독자는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국의 그 당시 사회를 대입하여 해석한 것과 등장인물 중 핍의 말을 빌려 인간 본성과 해석한 것 또한 흥미로웠다.


나는 고래 백과사전 부분이 다행히도 취향에 맞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평소에 모르는 분야 잘 찾아보거나 낮선 지식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아마 재밌게 읽을 것 같다.


여담으로 독갤 내에서 작가정신 혹은 문학동네의 판본이 많이 추천되는 편인데, 나는 문학동네 일러스트 판으로 읽었다. 

장점은 번역하신분이 시인이라서 그런지 표현이 더 생동감넘치는 감이 있고, 그림이 많아서 각종 항해 장비나 장면들을 상상할 때 몰입이 잘 됐다.

작가정신판은 실제 포경선을 탄 것 같이 깔끔하고 정확하게 번역이 되어있다고 하는데 미리보기를 보고 결정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