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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문학으로 카뮈, 사르트르, 카프카 소설 위주로 접함


그 덕분에 인간의 죽음, 부조리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 되었고, 현실에서 내게 발생하는 부조리도 많이 극복할 힘을 얻었음


그러다가, 그냥 편협한 사고를 가지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파스칼의 팡세를 읽었는데 아차 싶은 거임


개인이 아니라 인류의 영원, 불멸을 꿈꾸는 그의 모습을 보고 혼란에 빠졌음


지금이 중세도 아닌 현대이고, 영원, 불멸을 꿈꾸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잘 알지만 그가 근원적으로 인류애를 가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싶었음



나를 돌이켜보니, 나야 부조리 철학 덕분에 죽음에 의연한 척할 수 있겠는데 (막상 죽음이 닥치면 눈물콧물 다 흘리겠지만, 일단 겉보기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인생은 세계, 인간, 부조리의 삼위일체에요ㅇㅇ (걍 죽는 걸 인지하고 반항하시면 됩니다ㅋ)” 라고 말하는 게 뭔가 웃긴 거임


그래서 팡세의 인간의 비참을 말하는 1부에 많이 집중했는데 흥미로웠음


먼저 존재하였음에도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 받는 사물을 알게 되었고(물론 이건 구토 보고 알게 됨), 우리의 이성이 왜 정신의 수단인지 알 수 있었음


그래서 신앙에 대해 존중해줄 정도의 힘은 생긴 것 같음 (중력과 은총이란 단어가 정말 이해를 돕는 예시인듯. 중력은 특정 시점, 이성을 통해 정의되는데,


9원이란 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행위로서 설명됨. 아주 단편적으로, 감각적으로 이해를 돕는듯)



은총이란 게, 이 이성의 장벽을, 이성이란 수단을 벗어나 무언가를 관조할 수 있다는 능력으로 이해하였는데,


이게 신이 부여했다, 내정되어 있다 라는 게 참 재미있지 않음?


물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건 믿지 않음. 오히려 스피노자가 말하는 범신론, 무한한 실체에서 나오는 변용과 필연성이 더 설득력 있는 것 같음



아직 근대 철학자들의 책들은 접하질 못했는데, 직전에 읽은 에티카나 사랑의 기술, 지금의 니체를 보면


내 인류애는 타당하지 않은 관념이나 표상, 아니면 사랑을 받고 싶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능, 아니면 힘이 만든 결과 그런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듦


하나는 나를 의연하지만 기계적으로 만들고, 하나는 나를 자동기계로 만들고, 하나는 반항심을 일으키지만 신체로 닿을 수 없는 초월을 말하는 것 같아 막연함



앞으로 여러 책을 읽으면서 인류애의 근원, 내가 왜 혼잣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라는 말을 외치는지 탐구해봐야겠지만


중세의 신앙을 보고, 개인이 아닌 인류애로서 신앙을 말한 사람들의 그 근원적 마음가짐이 어디에서 출발했을지,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는 인류애가 있는지 궁금함이 문뜩 들어 적어봄...... (그니까 부조리 철학 읽은 사람들이 요즘 어떤 생각인지 궁금함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