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대 미스터리 연구회]
아 아이이치로의 당황(亜愛一郎の狼狽)
아와사카 쓰마오 저 / 도쿄소원샤 / 714엔(세금 포함)
—— 노리즈키 씨는 교토대학교 추리소설 연구회, 즉 '미스터리 연구회' 출신이시죠. 아야쓰지 유키토 씨나 아비코 다케마루 씨와 같은 곳 말입니다.
노리즈키: 아비코 다케마루는 동기입니다. 당시에는 20명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시마네현 출신 고등학생이었는데, 시골이라 주변에 미스터리를 읽는 녀석이 없어서 제가 꽤 대단한 마니아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교토에 와서 대학에 들어가 보니, 다들 엄청나게 읽어댄 데다 장기 분야도 제각각이더군요. 하드보일드, 모험 소설, 경찰 소설 등등…. 신간은 뭘 읽고 있는지 물어보면 다들 조금씩 달라서 "저게 재밌다", "이건 어떠냐" 하며 정보 교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본은 탄탄히 다져져 있어서 엘러리 퀸 같은 작품은 다들 읽었기 때문에 일단 말이 통했어요. '툭 치면 탁' 하고 반응이 오는 즐거움이 있었죠. 게다가 선배 중에는 더 깊은 마니아들도 있었고요. '도시 대학은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습니다(웃음).
저는 그 무렵 일본 작품은 별로 읽지 않았는데, 선배가 재미있으니까 무조건 읽어보라고 권해서 렌조 미키히코와 아와사카 쓰마오를 읽었다가 홀린 듯 빠져버렸습니다. 대학 1, 2학년 때는 동기나 주변 사람들이 추천하는 걸 하나씩 읽어가는 시기였어요. 그전까지는 미스터리 외에는 읽지 않았는데, 아비코 다케마루가 이것저것 많이 읽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다"고 하길래 읽어봤더니 재미있었다든지…. 고구마 줄기 캐듯 다른 소설, 만화, 음악을 흡수할 기회가 많아서 미스터리 연구회에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죠.
—— 상당한 양을 읽으셨을 텐데, 당시 읽었던 것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노리즈키: 역시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대학 시절에 읽은 것들이에요. 1, 2학년 때는 렌조 미키히코와 아와사카 쓰마오를 필사적으로 읽었습니다. 임팩트가 컸죠. 아와사카 씨 작품이라면 역시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고요. 렌조 씨의 단편도 수준이 높아서,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양손가락으로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가장 대중적인 건 『회귀천 정사(戻り川心中)』죠. 하지만 렌조 미키히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는 다 갈려요. 『밤이여 쥐들을 위해』는 질릴 정도로 트릭이 화려하고, 『요이마치구사 야정(宵待草夜情)』에는 「노멘 제작자의 아내」나 「미완의 성장」 같은 수작이 있고…. 저는 남들이 잘 언급하지 않는 『운명의 8분 쉼표』를 좋아합니다. 이것만 동일 캐릭터 연작으로 되어 있는데, 제가 옛날부터 시리즈 탐정을 좋아해서요. 책의 분위기 자체를 좋아하는데, 그중 「관객은 단 한 명」이라는 단편을 아주 좋아합니다. 렌조 씨의 단편 중에서는 얌전한 편이지만, 역발상으로 허를 찌르는 묘미가 있죠.
* 회귀천 정사 - 렌조 미키히코 저 / 고분샤 / 560엔
* 밤이여 쥐들을 위해 - 렌조 미키히코 저 / 카도카와 하루키 사무소 / 900엔
* 요이마치구사 야정 - 렌조 미키히코 저 / 카도카와 하루키 사무소 / 700엔
* 운명의 8분 쉼표 - 렌조 미키히코 저 / 분게이슌주 / 407엔
[작가가 되기까지]
밀폐교실(密閉教室)
노리즈키 린타로 저 / 고단샤 / 620엔
(노컷판: 2,415엔)
—— 당시 간사이 지역에서 미스터리 작가들이 연이어 데뷔했었죠.
노리즈키: "왜 간사이에서 그렇게 많이 나오냐"는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 노리즈키 씨 본인도 계속 글을 쓰고 계셨나요?
노리즈키: 원래 교토대 미스터리 연구회는 전통적으로 창작이 주류였기에 동인지에도 꽤 많이 썼습니다. 대학 노트를 세로로 세워서 샤프로 쓰기도 하고…. 데뷔작이 된 장편도 처음에는 그렇게 썼습니다.
—— 『밀폐교실』이군요. 데뷔는 재학 중에 하신 건가요?
노리즈키: 아뇨, 졸업 후였습니다. 유급을 해서 23살인가 24살 때였죠. 아야쓰지 씨는 이미 데뷔한 상태였는데, 고단샤의 편집자인 우야마 히데오미 씨가 "더 쓸 만한 사람 없느냐"고 물었을 때 손을 든 게 저와 아비코 다케마루였습니다. 대학 노트에 썼던 걸 장편으로 다듬어 에도가와 란포상에 응모했다가 떨어졌는데, 그걸 우야마 씨에게 보여드렸더니 "이걸 제대로 고쳐 쓰면 책으로 내주겠다"고 하셨죠. 보통이라면 책이 되지 않았을 학생 소설을 우야마 씨가 재미있다고 해주신 겁니다. '미스터리 랜드'도 우야마 씨의 기획이었죠. 지난달에 돌아가셨어요, 아직 젊으신데 갑자기…. 그래서 다들 상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일을 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우라고 서로를 격려하며 지냈죠.
—— 안타까운 일이네요. 그런 우야마 씨의 뒷받침 속에 데뷔하셨는데, 졸업하면 바로 전업 작가로 나갈 생각이셨나요?
노리즈키: 아비코 군은 취업하지 않고 그대로 전업 작가가 되었지만, 저는 당시 작가 하나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취업 준비를 해서 은행에 들어가 반년 정도 일했습니다. 하지만 은행은 은행대로 여러 갈등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우야마 씨가 빨리 다음 원고를 쓰라고 독촉하시는데, 신입 행원 처지에는 쓸 시간이 없었죠. 그래서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 당시 출판계는 분위기가 어땠나요?
노리즈키: 지금과는 꽤 달라서, "세상 물정 모르는 학생들이 치기 어린 수수께끼 풀이로 연달아 데뷔하고 있지만, 애초에 소설이 안 되어 있다", "인간을 그려내지 못한다"라는 비판을 꽤 들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그런 말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어요. 저도 24, 25살이었으니 한창 기세등등할 때였죠. 수수께끼 풀이가 고리타분하다는 비판에는 "아니, 우리 쪽에 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술적으로 인간을 못 그린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론 무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저희가 대학생일 때가 아사다 아키라 씨의 책이 팔리며 '뉴 아카(New Academism)'라고 불리던 시절이었거든요.
—— 뉴 아카데미즘이군요.
노리즈키: 미스터리에만 빠져있던 학생들 눈에는 뉴 아카나 '신인류' 같은 단어들이 가볍게 느껴졌고, 추리 소설 따위는 촌스럽다고 무시당하는 기분이었죠. 그래서 실시간으로는 경원시했었는데, 당시 포스트모던 계열 사람들이 말하던 것이 "인간을 그려내지 못한다는 비판은 낡았다, 그런 시대는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새로운 시대다" 같은 이야기였고, 그런 공기는 현대 사상 서적을 읽지 않아도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론 무장을 하려면 포스트모던 철학이다 싶어, 작가가 되고 몇 년 동안은 당시 가장 기세 좋았던 가라타니 고진의 책만 읽었습니다. 전부 닥치는 대로 읽고, 그 이론을 그대로 빌려와 무장하고, 가라타니 고진이 칭찬하는 책도 다 읽었죠. 그렇게 순식간에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설 쓰는 걸 소홀히 하게 돼서 꽤 혼나기도 했습니다(웃음).
[철저한 추구형]
존재론적, 우편적(存在論的、郵便的)
아즈마 히로키 저 / 신쵸샤 / 2,100엔(세금 포함)
뱀딸기 요양소(ヘビイチゴ・サナトリウム)
호시 오사나에 저 / 도쿄소원샤 / 1,575엔(세금 포함)
—— 한 번 빠지면 끝까지 파고드시는군요.
노리즈키: 다만, 꽤 무엇이든 뒤늦게 합류하는 편입니다. 그건 본격 추리 소설 때부터 그랬어요. 한창 유행할 때보다 조금 지난 뒤에 빠지곤 하죠. 늦게 시작한 만큼 차분하고 냉정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만. 다만, 90년대 전반에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지금 (흐름이) 오고 있다'는 감각이 있어서 즐거웠죠. 데뷔 초기에 "인간을 그려내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 분했지만, 분명 몇 년이 지나면 우리 쪽 주장이 옳다는 것이 증명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후 역시 (시대의 흐름과) 잘 맞아떨어진 것은 행운이었죠.
—— 가라타니 고진 이후에 빠진 대상은 누구인가요?
노리즈키: 어느 시기 이후부터는 가라타니가 칭찬하는 것들만 읽었습니다. 나카가미 겐지와 절친이라고 하면 나카가미의 책을 섭렵하고, 사카구치 안고를 칭찬하면 안고를 독파하고…. 그 후에 가라타니의 문하에서 나와 지금은 완전히 오타쿠 평론가처럼 된 아즈마 히로키 씨의 논문을 읽었습니다. 단행본인 『존재론적, 우편적』이 아니라 잡지에 실린 그 원형을 읽고 '아, 이 사람을 따라가야겠다'라고 생각했죠. 그걸 읽은 게 94년쯤이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읽고 있습니다.
—— 실로 10년 이상 추적하고 계시는군요.
노리즈키: 그렇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좀 놀란 일이 있었어요. 학생 시절 하드보일드를 읽을 때 번역가인 코다카 노부미쓰 씨가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소개해 주셨거든요. 제게는 동경의 대상이었죠. 그런데 아즈마 히로키 씨의 결혼 상대가 호시 오사나에 씨라는 분인데, 이분이 도쿄소원샤의 '미스터리 프런티어' 시리즈에서 『뱀딸기 요양소』 같은 책을 내신 분이자 코다카 씨의 따님이시더라고요.
—— 에엣! 정말인가요!
노리즈키: 제가 오랫동안 서로 다른 관심사로 지켜보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건 정말 신기한 기분이에요. '도쿄의 문화인들은 대단하구나' 싶었죠(웃음).
[작품의 스타일]
피의 수확(血の収穫)
대실 해미트 저 / 도쿄소원샤 / 588엔(세금 포함)
캐치-22 (상)
조지프 헬러 저 / 하야카와 쇼보 / 798엔(세금 포함)
—— 지금까지 읽어온 것들이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을 텐데요.
노리즈키: 대학생 때 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당시, 수수께끼 풀이물이나 본격물은 제약이 많고 페어플레이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서 어떻게 쓸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서술 트릭 노선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저는 독자로서는 좋아해도 직접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엘러리 퀸도 작풍이 변해서 전후에는 사건이 일어나 수수께끼가 풀릴 때까지 실시간으로 쫓아가는 방식이 되었는데, 그런 방식이 제게 맞지 않을까 싶었죠.
하드보일드도 1인칭 현재 진행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잖아요. 1인칭은 그 시점에서 화자가 믿었던 것, 확신했던 것이라면 거짓말이 아니게 되죠. 3인칭 지문에서는 거짓말을 쓸 수 없지만 1인칭이라면 가능하다는 점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 무렵 사와키 고타로가 젊은이들의 필독서였는데, 읽어보니 약간 하드보일드적인 느낌이 있어서 이것도 다 읽어 치웠죠. 저는 논픽션도 미스터리와 연관 지어 생각했는데, 읽어갈수록 화자가 괴로워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 왜 그런가요?
노리즈키: 사와키 씨도 처음에는 무명의 젊은이라 어디든 뛰어들어 '나'를 지울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점점 이름이 알려지면서 결국 '사와키 고타로'가 주인공이 되어버리거든요. 마치 명탐정이 사건을 조작해버리는 듯한 느낌이죠. 하드보일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데, 대실 해미트의 『피의 수확』 같은 곳에 나오는 '이름 없는 탐정'도 점차 그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거든요. 해미트는 그 후 '샘 스페이드' 시리즈부터는 3인칭을 사용합니다. 역시 나레이터가 1인칭인가 3인칭인가, 유명한가 무명인가 하는 점은 작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렇다면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1인칭으로 시리즈 명탐정을 쓰는 것은 안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인지에 100매 정도 쓰던 시절,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지 않을 때 머릿속으로만 그렇게 까다롭게 생각했었죠.
—— 답은 어떻게 찾으셨나요?
노리즈키: 계기는 잊었지만 커트 보니것 주니어를 읽고 빠져서 전부 독파했습니다. 보니것 외에도 미국의 메타픽션 대가인 토머스 핀천이나 존 바스, 조금 앞선 세대지만 『캐치-22』의 조지프 헬러 등이 있었죠. 모두 절반은 허풍 같은 이야기이면서도 굉장히 공들인 문학적 장치가 있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대학교 4, 5학년 때 읽으면서 '소설이란 건 뭘 해도 괜찮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그 시점에서 핀천이나 바스는 한 세대 전 사람이고, 유행하던 건 레이먼드 카버처럼 더 미니멀하게 일상을 그린 작품들이었지만요. 하지만 저는 보니것이나 핀천 쪽이 더 새롭고 멋져 보였고, 이런 걸 미스터리에서 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데뷔 전후로 힘을 얻었던 책들이 바로 그 지점입니다.
그 후에는 이탈리아의 이탈로 칼비노. '엉터리 같은 소설이라도 괜찮지 않나'라며 기운을 차렸고, 데뷔작은 보니것의 아류작처럼 짧은 장들로 구성해서 썼더니 "이상한 책이다"라는 소리를 들었죠. 거만했던 시절에는 "이런 소설을 수수께끼 풀이로 해내겠다"며 으스댔지만, 점차 작품 수가 늘어나면서 얕은 꾀가 생겨 엉터리 같은 시도를 못 하게 되더라고요….
—— 리얼리티를 중시하게 된 거군요.
노리즈키: 그렇습니다. 그러던 차에 우야마 씨가 정년퇴직하시기 전에 주브나일(청소년 소설)을 하자며 '미스터리 랜드' 기획서를 들고 오셨어요. "예전에 아이였던 어른(당신)과 소년 소녀를 위한" 미스터리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도대체 뭘 써야 하지?" 싶었죠. 우야마 씨는 신기한 분이라, 본인이 얼마나 자각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에게 가장 치명적인(핵심적인) 제안을 툭 던지곤 하셨어요.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다른 작가들이 같은 시리즈에서 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괴도 그리핀, 절체절명(怪盗グリフィン、絶体絶命)
노리즈키 린타로 저 / 고단샤 / 2,100엔(세금 포함)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生首に聞いてみろ)
노리즈키 린타로 저 / 카도카와 서점 / 1,890엔(세금 포함)
우리들의 시대(ぼくらの時代)
구리모토 가오루 저 / 신풍사 / 890엔(세금 포함)
—— 미스터리 랜드의 『괴도 그리핀, 절체절명』은 어른이 읽어도 정말 즐거웠는데, 고민 끝에 도달한 작품이군요.
노리즈키: 고민 끝에 결국 엉터리 같은 허풍, 데뷔 전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출발점은 미국식 허풍 같은 느낌이었죠. 쓰기 시작하니 아이들을 위한 건 상관없이 마음대로 썼습니다만, 한 바퀴 돌아 데뷔 때로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20살 때는 이런 걸 하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못 했거든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때는 묘한 자의식을 버려야 하잖아요.
—— 그것이 『그리핀』에서 해소되었군요.
노리즈키: 아까 『인간 실격』을 거북하게 느꼈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전에 저도 한 번은 『인간 실격』에 빠졌던 적이 있고, 본래 그런 성향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학생 때나 데뷔 직후에 쓴 소설을 읽어보면, 등장인물은 평면적인 캐릭터일지 몰라도 쓴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가 속속들이 드러납니다. 인간의 비루함을 숨기지 못하는 면이 있는데, 몇 년 동안 계속 쓰면서 그런 고름을 다 짜낸 느낌이랄까요. 그 시기에 마침 미스터리 랜드 이야기가 들어와서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의식의 고름이 나오는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역시 정기적으로 리셋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그리핀』 이전인 2004년 작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도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받거나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에 오르는 등 평판이 아주 좋았죠.
노리즈키: 그건 너무 과찬을 받은 게 아닌가 싶네요(웃음). 10년 만의 장편이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썼다는 것에 대한 '축하 표'가 모인 거겠죠. 연재 시작부터 책이 나오기까지 3년 반이 걸려서 지금도 객관적으로 보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다른 형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고, 지금 쓴다면 좀 더 가볍게 썼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은 스스로 정리가 되지 않아서 다시 읽을 수 없는 소설입니다.
—— 그런데 항상 본인과 같은 이름의 탐정이 등장하는데요.
노리즈키: 원래 엘러리 퀸이 그랬거든요. 드문 일은 아니고 아리스가와(아리스) 씨나 구리모토 가오루 씨의 『우리들의 시대』 등도 그렇죠. 독자들은 '셜록 홈즈'라는 이름은 기억해도 '코난 도일'은 잊어버리잖아요. 그래서 엘러리 퀸도 홍보 아이디어나 즉흥적인 생각으로 시작했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후 40년 정도 계속 쓰다 보면 묘한 화학 반응이 생깁니다. 점점 작가 본인의 생활과 작중 인물의 사고방식이 가까워지기도 하죠. 엘러리 퀸은 작가가 두 명이라 더 복잡했겠지만요. 저도 앞일은 생각지도 않고 이 필명을 지어 작중 인물로 만들었습니다만, 이 이름으로 40세가 넘어서도 쓰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지금 41살입니다만.
—— 향후 예정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노리즈키: 연내에 해설과 평론을 모은 책이 국내편, 해외편 두 권 나옵니다. 그리고 '쇼분샤 미스터리' 시리즈가 카와데쇼보신샤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그 시리즈에서 내년에 나올 예정인 로버트 투이(Robert Twohy)의 단편집 엮은이를 맡았습니다. 작품 선정은 끝났고 제목은 아마 『물건밖에 쓸 수 없었던 글쟁이(物しか書けなかった物書き)』가 될 것 같아요. 이거 아주 재미있습니다. 단편만 쓰는 작가인데 일단 미스터리지만 전부 변화구예요. 예전부터 희귀 단편 마니아들 사이에서 알려진 작가로, 코다카 노부미쓰 씨의 번역으로 소개되기도 했었죠. 아무튼 작품마다 나사가 하나씩 풀린 방식이 달라서, 오히려 미스터리 마니아가 아닌 분들이 더 재미있게 읽으실지도 모릅니다. 단독 저서가 없어서 아마 세계 최초의 단편집이 될 겁니다. 그런데 저쪽 출판사에 문의해 보니 잡지 편집부에 계약서는 있다는데 본인은 행방불명이래요. 원래 소설만으로는 먹고살지 못해 운전기사나 학교 선생님 등 직업을 전전했고, 소설을 가장 많이 쓴 80년대에도 파트타임 작가였다고 합니다. 루저 같은 남자가 트러블에 휘말려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역시나 안 되더라는 이야기가 많아서, 본인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네요(웃음).
—— 재미있겠네요! 본인의 소설 예정은 어떠신가요?
노리즈키: 당장 임박한 마감은 '노리즈키 시리즈'로, 별자리를 모티브로 한 단편 연작을 고분샤의 『GIALLO』에 연재합니다. '범죄 호로스코프'라고 부르고 있는데, 일단 6편 정도 쓰면 한 권의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빨라도 내년쯤이 되겠네요.
일본 추리소설들중에 명문대 이공계 출신이나 교수들이 좀 있더라
와 동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