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로,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 이성을 마비시키는 가짜 합리성에 대항하는 논리학 백신>, 윤경미 역, 와이즈베리, 2011)
이 책 (177-178면.)에 나오는 얘기.
코넬대와 시카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앨런 블룸(Allan Bloom) 교수는 자신의 저서 <미국 정신의 종말>(The Closing of the American Mind)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교수들이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대학에 입학하는 거의 모든 학생이 진리는 상대적이라고 믿거나,
자신은 그렇게 믿고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블룸은 상기 책에서,
"내가 틀렸고 저 사람이 옳을 수 있다"라는 긴장 속에서 진리를 찾는 게 진정한 의미의 '개방성'인데,
지금의 학생들의 전형적인 태도는 "너도 맞고 나도 맞으니 서로 건드리지 말자"는 식의 '무관심'으로 변질되었다고 말한다.
이성을 통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행위 자체를 타인을 차별하거나 공격하는 행위로 여기기 때문에 학생들은 명료한 판단 자체를 안 해버린다.
걍 이런 생각도 있고, 저런 생각도 있네~에서 끝인 것이다.
블룸은, 학생들이 "나는 진리를 다 알지 못한다"라고 겸손해하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 판단하려 드는 것 자체가 죄다!"라는 도그마에 빠져 결과적으로 진리에 대한 탐구욕을 잃어버리게 됐다고 한탄한다.
1987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책에 나온 상황이 저러한데
지금 우리나라 사정이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금방 떠오르는 예가 있는데,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라는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뿐만 아니라, 출간 당시 나온 샌델의 거의 모든 문헌을 분석하여 조목조목 논리정연하게 논박하는 역작인데,
어떻게 감히 남의 생각(특히 수학도, 과학도 아닌 인문학!)에 대해 "틀렸다!"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며 애저녁에 글러먹은 책이라고, 제목만 읽고 본문은 안 읽은 독자(?)들에게 욕을 얻어먹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라.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가 인부 5명을 그대로 치는 게 옳은가, 아니면 인부 1명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게 옳은가?
주디스 자르비스 톰슨의 <권리란 무엇인가> (7장 트롤리 문제)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 기냥 소름이 다 돋을 정도로 논리정연하고 명료한 풀이를 해주는데도
이도 저도 아니고, 아아~ 골치아프다~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정의란 무엇인가>가 전자보다 10000배는 더 각광을 받는다.
사람들은 모호한 말을 늘어놓으며 후까시 잡는 책을 수정처럼 투명하고 논리정연한 책보다 훨씬 더 사랑한다.
또 한편,
많은 사람들은 주장을 펼치다 반박이 들어왔는데 재반박하기 빡세면
열혈 상대주의자 또는 극단적 회의론자로 돌변한다.
"어차피 절대적 진리는 없잖아?" 혹은 "이성이나 논리도 확실한 게 아니야. 괴델 불완전성 정리 어쩌고저쩌고"라는 식으로
논의의 지반 자체(그래서 자기도 딛고 서있는 바로 그것)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이런 짓거리를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에서는 "핵폭탄 터뜨리기"(going nuclear)라고 명명한다.
밑도 끝도 없이 상대주의나 회의론을 들이미는 짓은, 공론장에다가 일종의 핵폭탄을 터뜨리는 것이다.
"(...) 우리 모두는 매일매일 이성에 의존해 산다." 우리는 "차의 브레이크가 잘 작동할 것이라고 믿으며 운전하고, 자신의 체중을 잘 지지해 줄 것이라 믿으며 다리를 건너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약을 먹는다."
"사실 핵폭탄 터뜨리기 전략을 채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주장이 수세에 몰리기 전까지는 기꺼이 이성에 의존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을 때 비로소 "이들은 핵폭탄 작동 버튼에 손을 뻗는다."
논쟁이 그렇게 흐지부지 끝이 나고 지친 상대방이 떠나면 그들은 열심히 이성을 사용하여 논리와 수학과 과학을 신뢰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이는 전적으로 위선적인 태도다."
"따라서 핵폭탄 터뜨리기 전략은 사실상 책략에 불과하다. 이러한 전략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성에 대해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도 믿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흙먼지를 일으켜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고는 재빨리 도망치기 위해 이러한 술수를 쓰는 것뿐이다."
(스티븐 로,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 이성을 마비시키는 가짜 합리성에 대항하는 논리학 백신>, 윤경미 역, 와이즈베리, 2011, 164면.)
상대주의나 회의주의를 견지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런 식의 핵폭탄 터뜨리기 전략을 사용했을 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깽판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바로 철학을 입문하는 단계서부터
'핵폭탄' 해체법을 배우는 게 필요하다.
다음의 회의론, 상대주의 3종 세트에 대해 각각의 해체법이 적힌 책들을 읽자!
(1) 진리란 없다! (또는 상대적이다!)
-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철학과 학문의 노하우>, <철학적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
(2) 도덕이란 없다! (또는 상대적이다!)
- <도덕 철학의 기초>, <윤리학 - 옳고 그름의 발견>
(3)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다!
- <자유는 진화한다>
정의란무엇인가는 틀렸다 제목만보고 제목 웃기네 하고 지나쳤는데 보기보다 좋은 책인가보네. 한번 읽어보고싶어졌다
진리를 쫓아야 한다는 전제부터가 솔직히 고깝네 - dc App
벤담이 한 말이 생각나네 "한 사람이 지구를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 그러나 그는 먼저 자신이 딛고 설 또 하나의 지구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논의의 전제 자체를 파괴하면 그건 이긴 게 아니라 그냥 무결론으로 비화되는 거지. 물론 그런 식으로 행위하는 사람은 그걸 원하는 것이겠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당시 '정의' 열풍이 불어서 그렇지 팝 심리학만 봐도 대게 모호하게 마무리하기 보다는 매력적이고 깔끔한 결론을 내는 책을 대중들이 더 좋아함 그래서 이것만 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식에 자계서가 잘 팔리는 거고
본문이 강조한 논리정연함과 투명함은 전제와 근거로부터 결론이 도출되는 '논증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지, 네가 말한 무대뽀 자기계발서 식의 '단정적 결론의 단순성'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과학적, 논리적 근거를 뚜렷이 드러내지 않고 무작정 우기는 자기계발서의 무조건적인 확신은 '엄밀한 검증의 수고'를 면제해 준다는 점에서, 대중은 논리적 사고를 촉발하는 '투명한 글'보다, 사고 과정이 불투명한 글을 선호한다는 본문 내용에 오히려 잘 들어맞는 사례다.
@베너타 너 말은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결론"의 책이 각광을 받는다며,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래서 각광 받은 게 아니라는 거임. 오히려 그 당시 사회적인 정의 열풍으로 설명하는 게 맞다는 거고. 애초에 저 책이 한창 팔렸을 때도 사람들이 명확한 결론이 없다고 싫어했음. 니 논지는 현실적인 출판계나 독자 반응을 고려하지 않고 너만의 세계관에 억지로 끼워맞춘 거지.
@베너타 그렇다면 너마저도 자기계발서식의 매끈하고 단정적인 인과관계를 보여주지 않음? 정말 저 한가지 이유 때문에 권리란 무엇인가가 안 팔린 걸까? 방통대출판부에서 학술서 타겟으로 나온 4만9천원짜리 벽돌과 대형 출판사 김영사에서 대중들 타겟으로 나온 1만5천원 책은 기준점마저 다르고, 출판 업계의 히트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변수와 운이 존재함. 너마저도 엄밀한 검증 없이 한가지 인자가 모든 걸 결정했다고 무작정 우기는 유혹에 빠진 거지.
@베너타 반대로 총균쇠는 본인의 환경결정론을 지루할 정도로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기 위해 700쪽이 넘는 벽돌책이 되었어도 대중들에게 불티나게 팔림. 소재가 좋았거나, 마케팅이 탁월했거나, 책이 있어보이거나 많은 이유가 있었을 거임. 이처럼 반례도 충분히 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너처럼 한 가지 문장으로 베스트셀러의 성공을 설명하기에는 단정지을 수 없다는 걸.
@ㅇㅇ 본문은, 논리정연하고 투명한 글과 대비하는 '맥락'에서 "모호하고 이도 저도 아니고 뜬구름 잡는 글"이라는 말을 한 거다. 그 맥락을 고려하면, 본문 글을 "좌우지간 모호한 결론만 내면 인기 끈다" 같이 무슨 "모호한 결론"이 <차밍 포인트>라도 되는 양 쓴 것처럼 읽는 건 엉뚱한 거다.
@ㅇㅇ 네 말대로 [이것만 하면 무조건 성공한다] 식의 자계서는 무조건 성공한다고 했으니까 엄밀한 근거를 대야 한다. 그에 반해 본문은 그저 사람들은 골치 아픈 논리정연한 글보다 겉멋부리는 글을 더 좋아한다는 경향성을 말한 것에 불과하다. 뻔한 얘기다. 베스트셀러를 보라. 거기다 대고 "엄밀한 검증 없이 한가지 인자가 모든 걸 결정했다고 무작정 우기는 유혹에 빠졌고 어쩌고" 하는 건 이상한 거다. "여름이라 날이 더워서 아이스크림이 잘 팔린다"는 말은 더위라는 기후 요인과 판매량 사이의 경향성을 말한 상식적인 얘기다. 거기다 대고 "날씨라는 한 가지 인자가 모든 걸 결정한다고 우기지 마라. 수만 가지 변수와 운이 존재하는데 엄밀한 검증도 없이 날씨 탓만 하냐?"라고 따지는 꼴이다.
ㅁ메신저 공격인건 아는데 너무 찐따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