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미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마려운건 그 생각에 대한 반응에서
매번 어쩔 수 없이 하스미를 인정하는 의례를 하고야 마는데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건 분명히 내가 그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의 일부이긴 하다만
내가 느끼는 하스미의 매력의 근원을 생각하면
역시 그것은 공포를 포착하여 지연시키는데 있다
그가 던지기에 매료되고 shot에 집착하는 것을 따라가면
그가 포착한 영화야 말로 본질적으로 죽음의 예술이 아닌가?
말하자면 그것은 화면의 연쇄의 끝까지 끝없이 사라져가는 것들의 이야기고
shot 이란 던지기는 오직 소멸만을 변함없이 약속하고
이 속절없는 지나감이야 말로 결국 어떻게든 해결해야하는 가장 근원적인 공포일 수 밖에 없다고 인지할때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 투사체에서 영원한 죽음의 유예의 안식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느끼고 인정하는 하스미의 매력은 아무래도 그 공포를 끝까지 외면으로 지연시키는데 있다
두고 온 닿지 못한 심연이란 환상적인 미련이나 원래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닐까하는 허무가 끼어들 틈 없이
수백 수천번 하늘 천 아래를 지나도 그 미끄러짐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기에 산뜻하다
다만 그 미끄러짐은 끝까지 이어져야한다는 의무 아래에 있을 뿐이지
그 미끄러짐이 이어질때 확인할 필요가 없었을 뿐인 심연에 대한 상상은 오히려 끝없이 두터워지고 풍부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사실 도금을 부정하는 표면은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말하자면
미시마의 도착 즉 그의 관념의 완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의 표층론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만
그러나 그 미시마의 죽음에 대한 하스미의 혐오에서
미끄러짐이 도달하는 것도 결국은 소멸임을 거울로 폭로당하는 부끄러움의 분노가 느껴지는 것 같달까
니 글을 더 싫어할듯
인공정원처럼 잘 기획된 젊음의 죽음과 성적 가학이 기분 나쁜건 굳이 비평의 언어로 훈련받지 않아도 공감받기 쉬움. 굳이 하스미가 아니더라도
그냥 죽음이 혐오스럽지 그게 죽음의 표면 아닐까? 가학은 피아를 구분하고 긴장을 유발하고 그게 기분 나쁜건 선택이고 표면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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