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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의 죽음은 물론 헛되지만, 동시에 거대한 이념적 건축물을 완성시킨 죽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는 많은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발자크와 모리 오가이, 야마모토 쓰네토모가 적은 하카구레의 영향이 컸다고 보여진다. 그는 발자크에게서 현실을 믿지 않는 묘사의 태도를 배우고, 하카구레에게서는 일본 사무라이의 무사도 정신을 만나 매혹되었다. 모리 오가이에게서는 그 무사도 정신이 문체화된 것 같은, 칼로 베는 듯한 문체를 배웠을 것이다. 문제는 미시마가 자신의 감수성을 사랑하지 않고 무사도의 행위적인 삶을 동경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문학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결코 떨어질 수 없다고 여긴 듯하다. 미시마가 소년이었을 당시 일본의 젊은이들은 죄다 전쟁에 징용되기 일쑤였다. 죽음과 가깝고, 무엇보다도 죽음을 먼저 생각하는 시기에 성장기를 보냈으니 당연히 죽음과 삶의 문제를 결부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항복하고 세상이 다시 전쟁 이전의 호흡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일본은 자국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를 갑작스럽게 융합하게 된다. 이제까지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살던 어린 소년들이 그 과도기 속에서 청년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그들은 변화한 세상에 적응해야 했고, 문학 또한 변하기 시작했다. 전후문학이라 불리는, 전쟁 이후의 문학 세계를 만들어나간다는 생각에 그들은 굉장히 들떴다. 하지만 동시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살던 관성이 남아있었던 그들은 자기네들의 삶에 그들 스스로의 내적 세계를 변경해야 할 순간이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곧 죽는다고 믿고 살아가던 이제까지의 정신 세계에 갑작스런 대수술을 강요받게 된 것이었다.  그건 당연히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예술을 생의 문제와 결부짓던 미시마의 창작 문제 또한 그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이미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변질되어 있었고, 급변하는 시대를 바라보며 일본이 지금 시대적 변화의 길을 밟고 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일본이 나쁜 방향으로 타락하고 있다고 섣불리 확신하고 자신의 미학으로 도피하기에 이른다. 그는 일본의 패전이 나치의 패전과 다르다고 말했다. 일본의 패전은 나치처럼 이념의 패배가 아니라 감수성 자체가 전형적인 태도를 취하며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또한 사상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자신의 감수성의 정확함에만 의지하여 살아온 일본인은 오랜 세월 동안, 생활 속으로 미학을 끌어들이고, 미학 속으로 생활을 끌어들이며 태연히 살아왔다고 말한다. 마치 여인의 육체와 정신이 경계가 불분명한 채로 동일한 차원에서 이어져 있듯, 미가 사상을 보완하고, 사상이 생활을 보완하며, 생활이 미를 보완하는 끝없는 순환을 언급한다. 그는 유미주의자 답게 일본의 문화에서 미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일본 문화의 희유한 감수성이 그 자체의 끊임없는 단련을 통해 문화의 핵심이 되어야 할 하나의 이념에 필적하는, 참으로 구체적인 어떤 것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그의 단편인 우국을 떠올렸다. 참으로 역겨운 내용이지만 그것이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미시마는 미의 이념화, 행위로 수렴하기까지에 이르는 형상으로서의 미를 추구한 건 아닐까 싶다. 그는 인식의 차가움과 행위의 뜨거움 사이에 예술이 위치할 것이라 예견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할복으로 진정한 예술과의 합일을 추구한 게 아닐까. 어쩌면 가련하기까지 해 보이는 그의 미련한 죽음은 일뽕 사상이 아닌, 미학으로 인한 죽음이 아니었을까. 미시마는 자신의 미학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었을까. 정확한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책을 마저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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