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맨살에 대한 마지막 감상//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정서를 정화한다고 정의하고




그런 힘을 갖는 근거를 모방에 대한 이해에서 찾았고




그 모방의 성질에 대한 요소로 지목한 것이 시간, 행동의 일치일 뿐이지 




그 수단이 앞서가진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 고전주의에선 그 당연한 것들이 뒤집힌다




시간,행동이 일치한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쉬운 장소의 일치까지 묶어 철의 3원칙으로 삼고




그건 반드시 지켜져야하는 윤리적 규율이 되는 '올바른 극의 정의'를 만든다




또한 그 앞서가는 수단은 단순히 정서의 발생이라는 성질에 대한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올바른 세계와 그것을 위한 질서 정립이란 벗어나선 안되는 목표까지 제시한다






그리고 그 정의에 가장 맞지 않는 극작가가 셰익스피어인 것이다




물론 애초에 고전주의자들이 정의한 "올바른 세계와 그 질서"에 속하지 않으며




다른 시간감각과 다른 행동의 논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체계에 들어갈 이유가 애초에 없었을 뿐




그 법칙을 몰라서 안 지킨게 아니고 그의 극에 공감과 정화나 심지어 올바른 세계에 대한 열망도 없는 건 아니다 




(comedy of errors 같은 초기극이 그 3원칙에 입각해 있지 않았다면 그의 평가는 고전주의자들에 의해


상당히 훼손됐을 것이 명백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참 아이러니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재밌는 건




프랑스 고전주의자들이 집착하는 원칙과 방법론이




하스미가 제시한 영화가 지켜야할 원칙과 방법론이란 언어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영화의 맨살에 대한 감상이자 그 미학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몇 번 썼다가


그가 불문학자였음을 상기하는 댓글을 읽고 문득 생각이 난건데






말하자면


 




피사체와의 적절한(올바른) 거리라는 것은 




그 각도 그 거리에 있는 보는이가 얼마나 이 움직임을 현실감 있게 느끼게 할 것인가를 고려한 올바름이고




그 각도 그 거리에서 물리적 실체감을 만들어 내야하는 shot이




그 올바름을 반복적으로 지켜내면서 리듬을 만들기에




그 리듬은 그 자체로 규칙을 통과한 유일한 정당성이 되며




그 밖의 것들 즉 불순해서 걸러지는 것들이 샷의 연결이 만드는 의미,맥락,서사,사유가 되는 것이다





이 구조는


요소들의 규칙성이란 일치를 통해


극의 세계를 폐쇄하려 했던


고전주의의 방식과 똑.같.다.




그런 닫힌 곳을 향한 이성이자 폐쇄성에도 일리가 있다든지 하는 말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그 폐쇄성은


작위적으로 생산한 의미에 대한 태도는 표면론과 고전주의가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시학의 모방은 단지 타자의 행위를 이해함으로써


타자가 겪는 정화를 함께 겪게 하는 통로였기에 셰익스피어를 품는데 문제가 없지만




고전주의에서 3원칙은


질서 있는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무대 위에 증명하는 장치므로 셰익스피어의 원칙파괴는 천박한 작위에 불과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고



3원칙 안에서 도달한 올바른 세계를 고전주의자들이 스스로는 작위라고 혹은 최소한 천박한 작위라곤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신성하다는 증거로서 필요한게 아리스토텔레스도 인정한 자연스러움을 보증하는 원칙이고 말이다




또한 표면론에서 쇼트의 덕목은


리듬 그 자체를


의미보다 상위에 두기 위한 윤리기에 판별과 배제의 기준이 되는 심판자가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고전주의에 대한 소비와 표면론에 대한 소비가 대개 배타적이고 알맹이 없는 엘리티즘이라는 상당히 유사한 형태로 이루어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해석이 불가능한 혹은 필요없다는 그 물질성의 순간 역시 결벽증 혹은 오해 불가능하며 미쳐 아직 알지 못하는 진리에 대한 환상일 뿐이다


또한 소통에 대한 과대망상이 기반이 되고 있는게 아닌가?


애초에 소통은 환상이며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기에 애초에 목표가 될 수 없다해도 


소통은 그 자체로 목적이기도 한 인간의 욕구며 그것을 수단으로 도착한 환상은 문제가 아니다 


그 수단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인간의 세계의 모든 곳이며 애초에 그런 전제엔 인간의 세계가 환상에 기반한다는것도 자연히 따라온다


그 소통이란 것의 목적지의 가치를 따질 마땅한 자격은 오직 열려있고 평등한 이성을 지향하는 태도에서 나와야만 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 판단의 결과가 영원할 수 없어 환상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이미 했고 하고 있고 그 결과에 나의 감각과 언어는 묶인다


그것을 거부할때


설명처럼 시작해서 규범으로 끝나는 특별한 자들의 특별한 언어가 빚은 그 세계는 물질성도 신성한 의미도 영원히 가두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