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 좋아하는 독갤러라면, \'라캉, 또는, 알튀세르\'라는 제목의 책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난해한 사상 얘기가 아니다. 단지 좆목의 이야기일 뿐이다.
둘의 만남은 1963년에 이루어졌다. 라캉은 60대였고, 알튀세르는 40대였다.
당시 ens(고등사범학교)의 교수로써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알튀세르와 달리, 라캉은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먼저 그는 정신분석계에서 거의 추방된 존재였다. 당시 유럽에는 프로이트를 계승하는 두 개의 학파가 있었다. 클라인파와 안나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학파이다. 라캉은 그중 클라인 학파에 속해 있었다. 클라인은 라캉에게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지만, 라캉이 자기 학파와 프랑스 사이의 가교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 중이었다.
어느 날, 클라인이 쓴 \'어린이 정신분석\'이란 책을 라캉이 번역하게 되었다. 라캉은 귀찮았는지 절반만 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내담자인 디아트킨느에게 맡겼다. 그런데 띠용? 번역본이 사라져버린 거임. 라캉은 계속 시치미만 뗐고, 그렇게 라캉은 정신분석계의 신용을 잃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당시 프랑스 사회에 불고 있던 \'심리학의 대중화\'는 라캉에게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평생을 갈고 닦은 정신분석이 단순한 전문적 기술로 떨어질 위험을 갖고 있었다.
결국 대중의 지지조차 잃게 된 라캉은 다량의 진정제를 삼키며 자살을 기도하는 등, 피폐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고심끝에 그는 ens의 교수로 있는 알튀세르에게 편지를 보낸다.
참으로 기묘한 것은, 둘 다 서로의 사상 그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라캉은 알튀세르의 공산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훗날 자신의 지지자가 되어줄 ens의 학생들 뿐이었다. 쉽게 말해, 키잡을 계획한 것이다!
알튀세르도 마찬가지였다. 라캉이 공산주의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단지 라캉의 학문을 자신이 이용하고자 했을 뿐이다. 라캉의 주체론은 맑스주의 이데올로기를 설명하는 데 꽤나 큰 도움이 됐다.
두 사람의 동맹은 이렇듯, 타산적인 행위였지만, 둘의 화합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거창하게 보면, 당시 사상계를 휩쓸던 맑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의 만남이다.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이른바 바깥의 이론인 맑스주의와 사적이고 정신적인, 내적 이론인 프로이트주의의 만남은 제법 기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알튀세르는 라캉에게 알랭-밀레라는 청년을 주선해주기도 한다. 이 청년은 훗날, 라캉의 신실한 추종자이자, 사위가 된다.
*라캉의 기묘한 좆목 시리즈
1. 라캉, 알튀세르를 만나다.
둘의 만남은 1963년에 이루어졌다. 라캉은 60대였고, 알튀세르는 40대였다.
당시 ens(고등사범학교)의 교수로써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알튀세르와 달리, 라캉은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먼저 그는 정신분석계에서 거의 추방된 존재였다. 당시 유럽에는 프로이트를 계승하는 두 개의 학파가 있었다. 클라인파와 안나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학파이다. 라캉은 그중 클라인 학파에 속해 있었다. 클라인은 라캉에게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지만, 라캉이 자기 학파와 프랑스 사이의 가교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 중이었다.
어느 날, 클라인이 쓴 \'어린이 정신분석\'이란 책을 라캉이 번역하게 되었다. 라캉은 귀찮았는지 절반만 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내담자인 디아트킨느에게 맡겼다. 그런데 띠용? 번역본이 사라져버린 거임. 라캉은 계속 시치미만 뗐고, 그렇게 라캉은 정신분석계의 신용을 잃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당시 프랑스 사회에 불고 있던 \'심리학의 대중화\'는 라캉에게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평생을 갈고 닦은 정신분석이 단순한 전문적 기술로 떨어질 위험을 갖고 있었다.
결국 대중의 지지조차 잃게 된 라캉은 다량의 진정제를 삼키며 자살을 기도하는 등, 피폐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고심끝에 그는 ens의 교수로 있는 알튀세르에게 편지를 보낸다.
참으로 기묘한 것은, 둘 다 서로의 사상 그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라캉은 알튀세르의 공산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훗날 자신의 지지자가 되어줄 ens의 학생들 뿐이었다. 쉽게 말해, 키잡을 계획한 것이다!
알튀세르도 마찬가지였다. 라캉이 공산주의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단지 라캉의 학문을 자신이 이용하고자 했을 뿐이다. 라캉의 주체론은 맑스주의 이데올로기를 설명하는 데 꽤나 큰 도움이 됐다.
두 사람의 동맹은 이렇듯, 타산적인 행위였지만, 둘의 화합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거창하게 보면, 당시 사상계를 휩쓸던 맑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의 만남이다.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이른바 바깥의 이론인 맑스주의와 사적이고 정신적인, 내적 이론인 프로이트주의의 만남은 제법 기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알튀세르는 라캉에게 알랭-밀레라는 청년을 주선해주기도 한다. 이 청년은 훗날, 라캉의 신실한 추종자이자, 사위가 된다.
*라캉의 기묘한 좆목 시리즈
1. 라캉, 알튀세르를 만나다.
좆목만이 살길이다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래서 아싸는 살기 힘듦 ㅠㅠ
요즘 재밌는글 많이올라오네
독갤에 컨텐츠가 늘어서 좋다
다들 ㄱㅅㄱㅅ 다음편 라캉과 하이데거의 엇갈림도 많은 관심 부탁!!
후기구조주의가 ENS 기점으로한 철학좆목의 끝판왕이지 - dc App
조금은 이상하지 않나? 메를로퐁티나 레비나스는 말하자면 아싸 아니었나?
메를로퐁티도 레비-스트로스나 사르트르, 라캉과 친목 있었고 레비나스도 모리스 블랑쇼나 바타유랑은 친구관계였음. 물론 레비나스는 다른 애들에 비하면 조금 덜한 편이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