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 4 (1974–1976)
[4:1] 『유빅(Ubik)』에서는 전진하는 시간의 힘(혹은 '에르그 장[ergic field]'으로 표현되는 시간력)이 멈추었다. 모든 변화는 그로부터 기인한다. 형태들은 퇴행한다. 기질(substrate)이 드러난다. 냉각(엔트로피)이 방해받지 않고 시작되도록 허용된다. 전진하는 시간 역장(force-field)이 사라짐으로써 평형 상태는 영향을 받는다. 말하자면, 세계의, 우리 세계의 앙상한 뼈대가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살아있는 개체들에게 말을 거는 '로고스(Logos)'를 본다.* 그들을 돕고 조언하는 모습을.† 우리는 이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아트만(Atman)'을 인지한다. 모든 것을 짓누르던 시간의 압력이 폐지됨으로써, 우리 현상의 기저에 있는 많은 요소가 드러난다.
시간이 멈추면 일어나는 일, 즉 이러한 변화들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동결됨이 아니라, 계시(revelation)이다.
여전히 작동 중인 역행하는 힘(retrograde forces)들이 남아 있다. 또한 시간 이외의 긍정적인 힘들도 기저에 존재한다. 우리가 시간이라 부르는 역장의 소멸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드러낸다. 즉, 코칭을 하는 존재들(로고스인 런시터), 아트만(유빅), 엘라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은 정적인 세계가 아니지만,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누락된 것은 열의 한 형태인 '아톤(Aton)'이다. 로고스(런시터)는 당신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줄 수 있지만, 당신에게는 그것을 행할 에너지—열, 힘—가 부족하다. (즉, 시간이 부족하다.)
로고스는 역행하는 에너지를 가진 생명체가 아니지만, 성령(The Holy Spirit), 즉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그렇다. 로고스가 시간 밖에서 각인(imprinting)하는 존재라면, 성령은 역장(시간의 흐름)이 향해가는 시간의 오른쪽 끝, 혹은 먼 끝, 즉 완료된 끝에 서 있다. 성령은 시간을 수신한다. 말하자면 음극 단자(negative terminal)인 셈이다. 성령은 말씀의 지령과 세계를 조직하는 권능을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로고스와 관련이 있지만, 매우 약한 수준이며, 점진적으로 더 큰 수준까지 시간의 장(field)을 극복하고 그것을 거슬러 흐르며, 시간 속으로 침투하고 충돌할 수 있다. 성령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반(反)시간(anti-time)이다. 따라서 소위 영원 혹은 실재 우주로부터 시간의 흐름 밖에서 아래로 손을 뻗는 로고스와 성령을 구별하는 것은 옳다. 성령은 시간 안에 있으며, 움직이고 있다. 역행적으로 말이다. 타키온(tachyons)1처럼, 성령의 움직임은 시간적인 움직임이다. 다만 우리의 움직임이나 우주적 인과의 정상적인 방향과는 반대일 뿐이다.
평형은 로고스가 세 방향에서 작동함으로써 달성된다. 우리 뒤에서 인과적인—시간적—압력으로서, 위에서, 그리고 마지막 형태인 아주 미약한 성령이 각 형태를 완벽함으로 이끌어당기는 것으로서.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평형은 증가하는 '역행적 목적론(retrograde teleology)'의 비율에 밀려 상실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독특한 시기에 진입하고 있거나 이미 진입했음을 암시한다. 다양한 형태들이 완성에 가까워지는 시기 말이다. 마지막 조각들이 전체적인 패턴 안에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성령의 과업 혹은 양식(mode)은 완성하는 것이다. 시작하는 것도, 갱신하거나 유지하는 것도 아니라, 끝으로, 종결로 가져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한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는 운송 수단과 같다. 첫 단계는 출발지 행성의 중력이고, 그 다음은 두 행성의 인력이 균형을 이루는 단계이며, 그 후에는 목적지의 중력장이 점차 주도권을 잡고 여정을 완료시키며 끌어당기는 힘이 커지는 단계다. 시작, 중간, 끝. 마침내 우리는 수신하는 장(field)이 맞물리고 수정되는 것을 감지한다.
내가 『유빅』을 썼을 때, 나는 우리 세계와 딱 한 가지 면에서만 다른 세계(우주)를 구축했다. 그것은 시간을 앞으로 추진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실제 우주에서 시간이 약해지거나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은 당시에는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시점에서 나는 시간을 힘(force)으로 전혀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소비에트 천체물리학자의 이론2 참조). 나는 칸트적인 관점에서 시간을 생각했다. 주관적 인식의 양식으로서 말이다. 이제 나는 우주 팽창의 현 시점에서(혹은 다른 어떤 이유들로 인해), 시간이 실제로, 적어도 다른 특정 장(field)들과의 비율 면에서 약해지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유빅-경험'의 일부분이 예견될 수 있었다. 나는 실제로 그런 경험, 혹은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즉, 시간은 여전히 전진하지만, 반대 세력들이 표면으로 올라와 충돌하며 유빅의 풍경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주 잠깐 동안만, 즉 일시적으로 말이다. 그러고 나면 시간은 다시 주권(sovereignty)을 회복한다.
예상되는 현상은 두 가지다.
(1) 미래로부터 온 물질(예: 정보, 이미지, 약한 에너지 장 등)이 우리가 계속 나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새어 들어오거나 흘러 들어오는 것.
(2) 레코드판의 바늘이 안티스케이팅(anti-skating) 되어 이미 재생된 이전의 홈(groove)으로 튀어 돌아간 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재생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최근의 과거 시점으로 갑작스럽게 쏠려 돌아가는 것.
후자의 경우 우리는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피질하 반응이나 아마도 막연한 기억 상실, 꿈 등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로 미래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누출, 우리는 그것을 인지할 것이며(ESP 등으로 부르며), 그러면서도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3월에, "거룩한 타자(Holy Other)"가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초기 절정기에, 내가 우주를 있는 그대로 보았을 때, 나는 능동적인 행위자로서 미래에서 온, 금색과 붉은색의 채색된 글자(illuminated-letter) 같은 플라스마 존재가 여기저기서 조각들을 배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점이다. 시간이 앞으로 몰고 가는 것들을 배열하고 있었다. 나중에 나는 내가 로고스를 보았다고 결론지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나에게 지적인 추론이나 존재할법한 것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지각적인(perceptual) 경험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미래에서 이곳으로 왔다. 그것은 살아 있었고/살아 있다. 그것은 어떤 작은 힘이나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고, 위대한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거룩했다/거룩하다. 그것은 내 주위에서 보였을 뿐만 아니라, 명백히 내 안에 들어온 것과 동일한 에너지였다. 그것은 안에도 있었고 밖에도 있었다. 따라서 로고스, 혹은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내가 본 미래에서 온 이 플라스마 생명체는 내가 헤아릴 수 있는 한, 위의 이론적 기준들 대부분을 충족시킨다.†
또한, 성령에 대한 공식적인 가톨릭/기독교 이론들도 성령을 그렇게 묘사한다. 시간의 끝에서 거꾸로 움직여 사람들에게 쏟아붓는 것으로. 하지만 만약 성령이 사람 안에만 들어올 수 있고 내부에만 있는 것이라면, 내가 본 밖에서 액체 불처럼 흐르던 금색과 붉은색의 존재는 성령이 아니라 로고스였을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내부에서 발견되고, 하나는 외부에서 발견되는 것일 뿐. 그게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건 의미론적인 논쟁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미래에서 여기로 다시(BACK HERE) 온다는 것이며, 정전기적이고 살아 있지만, 약한 장(field)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방사선과 유사한 형태임에 틀림없다. [...]
하지만 나를 다르게 보게 하고 다르게 만든 것은, 내가 보고 내가 된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생체 플라스마 오르곤(bioplasmic orgone) 같은 에너지가 내 안에 들어오거나 내 안에서 솟아올라 내 안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기적이다... 그러나 고조된 인식은 나로 하여금 다른 우주를 보게 했다. 바깥세상의 붉고 금빛인 살아있는 활동의 실(threads)들을 포함하고 있는 우주, 『유빅』의 세계와 매우 흡사하게 엄청나게 변화된 세계를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변화시킨 그 힘과 내가 보았던 붉고 금빛인 에너지 사이의 일체감을 느낀다. 내 안에서, 나의 일부로서, 그것은 밖을 내다보았고 자기 자신을 보았다.
<주해서> 中
뭐라는거야시발
이 새끼 후기 소설은 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냐
지 혼자 보려고 쓴 글이라 그런가 용어가 뭔소린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