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긴 읽었는데, 뭔말 인가 싶었다.
당시 나의 지적 수준과, 내용의 깊이 때문도 있겠지만, 번역문제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가, 지난해 우연히 박찬국 님이 번역한 니체 저서 7권 정도를 연거푸 읽다 보니,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 알게 되었다.
번역도 충분히 읽을 만한 수준이었고, 가독성도 좋았다.
이번에 꽂힌 것이 니체가 젊은 시절 칭송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다. 그런데 좋은 번역본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어느 출판사의 판본으로 2020년에 한 번 읽고, 작년에 1회, 올해 1회 읽고 있는데,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책에서 비문들이 계속 보인다.
번역가가 직역을 추구해서 생기는 어색한 한국어나 만연체의 문장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비문이 이렇게 상당수가 나오는 건 의아하다.
비문이란 것은 한국어 문법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문장을 일컫는데, 편집이 완료되어 시장에서 유료로 판매되는 책에 이렇게 많은 비문이 있다는 게 의아스럽다.
비문으로 인쇄된 문장의 독일어 원문이 지닌 참뜻이 뭘까 꼴똘히 생각하면서 읽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 자꾸 '난해한 번역 때문이야'라고 자의적으로 여기면서 책을 읽다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수바 겉핥기'식 이해를 해버리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시대에 제미나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더불어서 무료로 공개된 잘 빠진 영문본을 구하지 못했더라면,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이해에 큰 차이가 있었으리라고 본다.
정말 '한 권을 독파했다'고 떳떳이 말하려고 하면 세월이 엄청 걸릴 듯하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어려워서라기보다 명쾌한 번역본을 한국에서 찾기 힘든 듯한 이유 때문이다.
이 책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2019년 무렵 만난,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중국인 여성 친구 때문인데, 그 친구가 영화를 전공했다. 책을 좋아하는 그가 졸업작품으로 만든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데이비드 린치풍 느낌이 좀 나면서, 비선형적으로 내용을 전개하는데,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런 작품을 만드는 애가 자기 인생 책으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꼽았기에 끌렸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같은 동양권인 중국어나 일본어 역본은 서양철학을 이해하기에 좀 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중국어와 일본어는 기본적으로 한자로 쓰기 때문에, 한국어와 달리, 단어를 보면 직관적으로 뜻을 추정할 수가 있다. 그 차이는 크다고 본다. 한글로 표기되는 한국어의 단어들은 사실 그 알맹이가 한자이지 않나. 이런 깊은 내용을 담은 책을 읽을 때 한자가 담긴 글을 눈으로 보면서 바로 낯선 단어의 뜻을 뇌에서 추정할 수 있는 중국어나 일본어가 이런 칸트나,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의 서양 철학서를 이해하기에는 유리하지 않을까 때때로 생각해 본다.
요지는 쇼펜하우어의 책은 그의 사상이 난해해서라기보다 괜찮은 한국어 번역본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독파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세창에서도 하나 나왔던데 - dc App
그래서 형 어느 출판사를 추천해? - dc App
칸트를 읽었어야 의표세를 마음놓고 읽을 텐데 칸트를 어떻게 읽나? ^^ 원 저작 자체의 까다로움을 번역 탓으로 몰지 말자.
원저작도 까다롭긴 한데, 칸트에 비하면 그리 어렵진 않지. 더불어서 칸트 입문서하나 읽고 물자체 개념 마스터 하면, 쇼펜하우어 읽는데 무리없음. 다만 발번역이라는거임 - dc App
하이데거도 그래 워낙 난해해서, 혼자만 아는 논리 혼자만 주절거리거나 중얼거리는 존재와시간 같은 걸 이해 못 하니까 칭송이나 해댄다는 거 그게 현실이며 인간 모양새라는 거
제가 아는 한에서 쇼펜하우어는 그 문체의 명쾌함으로 유명해요. 독일어 자체가 관계대명사를 계속 나열하는 식의 만연체가 통상적이라고 하던데, 쇼펜하우어 글에도 몇 줄을 차지하는 장문이 많더라구요. 그럼에도 칸트나 헤겔 책보다 훨씬 명료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