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일러두겠지만, 나는 철학 전공자도 아니고, 독어 전문가도 아니며, 독어 번역에 관해 어떤 견문을 갖고 있는게 아님.
다만 번역서에서 거슬리는 문장이 있어서 이부분에 대해 알아보다가 오역 의심이 생겼음
문제가 되는 대목이다.
따라서 우리는 제1권에서는 제시한 측면에서만, 즉 세계가 표상인 한에서만 세계를 고찰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이 고찰이 진리를 지니고 있음에도 일면적인 고찰이며, 따라서 어떠한 자의적인 추상에 의해 야기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내적 저항을 알려 주어, 그 내적 저항으로 그는 세계를 자신의 단순한 표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누구나 이 가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고찰의 일면성은 다음 권에 나오는 어떤 진리, 우리가 여기서 출발하는 진리만큼 그렇게 직접적으로 확실하지는 않은 어떤 진리에 의해 보완될 것이다
자의적인 추상에 의해 야기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내적 저항을 알려 주어, 그 내적 저항으로 그는 세계를 자신의 단순한 표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보다가 뭔 소리인가 싶어서 일단 영어 번역본을 참고했다,
Therefore we shall consider the world onl@y from the side in which it is representation.
However true and certain this consideration is, it is nevertheless one-sided and brought about by an arbitrary abstraction, as is shown by the inner resistance of everyone who refuses to regard the world merely as his representation.
On the other hand, no one can escape this presupposition.
Yet this one-sidedness will be supplemented by another truth, not so immediately certain as the one from which we start here.
밑줄친 부분을 한 번 번역했다.
세계를 단지 자신의 표상으로 여기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의 내적 저항에 의해 드러난다.
뭔가 홍광서 역본과는 다른 뉘앙스가 느껴지지만, 중역이기에 독어본을 찾아보기로 했다.
또 그래서 독어 원문을 찾아 GPT한테 번역을 시켰다.
Wir betrachten daher die Welt vorerst nur von der Seite, von welcher sie Vorstellung ist.
Allein so wahr und gewiß diese Betrachtung ist, so ist sie doch einseitig, ja durch eine willkürliche Abstraktion veranlaßt, was sich durch den inneren Widerstand eines jeden kundgibt, der die Welt nicht bloß als seine Vorstellung gelten lassen will.
Andererseits aber kann sich niemand dieser Voraussetzung entziehen.
Allein diese Einseitigkeit wird durch eine andere Wahrheit ergänzt werden, welche zwar nicht so unmittelbar gewiß ist, als die, von welcher wir hier ausgehen.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세계를, 그것이 표상인 바로 그 측면에서만 고찰한다.
그러나 이 고찰이 아무리 참되고 확실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면적이며, 더 나아가 하나의 자의적인 추상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세계를 단지 자신의 표상으로만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의 내적 저항을 통해 드러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도 이러한 전제에서 스스로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면성은 또 하나의 다른 진리에 의해 보완될 것이다. 그 진리는 우리가 여기에서 출발하는 그 진리만큼 그렇게 직접적으로 확실한 것은 아니다
흠… 내가 생각하기에는 번역본과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GPT한테, 문제삼은 문장이 오역이냐고 물었는데,
GPT :
“그렇지만 이 고찰이 진리를 지니고 있음에도 일면적인 고찰이며, 따라서 어떠한 자의적인 추상에 의해 야기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내적 저항을 알려 주어, 그 내적 저항으로 그는 세계를 자신의 단순한 표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번역은 전체 맥락에서는 대체로 맞다. 일면성과 자의적 추상이라는 핵심 개념도 유지되어 있고, ‘내적 저항’이라는 표현도 적절하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누구나 이 가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 역시 “er sich … nicht entziehen kann”을 잘 옮긴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내적 저항으로 그는 세계를 자신의 단순한 표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라는 표현이다. 한국어에서 “~으로”는 대개 원인이나 수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문장은 자연스럽게 “내적 저항 때문에 결국 세계를 표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인과 관계로 읽히기 쉽다. 하지만 원문의 “mit welchem”은 인과가 아니라 동반·양태를 나타낸다. 정확히는 “그 저항을 품은 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즉 저항이 수용을 낳는 것이 아니라, 수용과 저항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세계를 표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그것을 단지 표상으로만 보는 데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 바로 이 긴장이 쇼펜하우어가 다음 권에서 ‘의지’ 개념을 도입하는 철학적 동력이다.
따라서 이 번역은 전체적으로 오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핵심 연결부에서 독일어 문법이 담고 있는 미묘한 양태적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특히 “그 내적 저항으로”라는 표현은 원문의 철학적 구조를 인과관계로 오해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보다 정확하게 옮기자면 “그러한 내적 저항을 품은 채” 또는 “그러한 저항과 함께”가 원문에 가깝다.
본인은 홍광서(을유) 역본 밖에 없어서 이부분에 대한 다른 한국어 역본을 잘 모르겠음.
혹시 세창이나 동서 번역본 갖고 있다면 문제가 되는 그 부분 글을 댓글에 써주시면 감사할 듯 예아
- dc official App
독일어를 아는 사람으로서 말하면, 한국어 번역이 잘못됐고 영어 번역의 뉘앙스가 맞다. 그런데 별개로 지피티는 절대 믿지 마. 원문에 mit welchem이란 표현 자체가 없는데 헛소리를 길게 늘어놓고 있네 ㅋㅋ
영어번역은 누구 번역임? 쏙쏙 읽히네 그냥
번역을 왜저렇게 했대 영어가 더 이해잘되노
1권 1절 뒤에서 두번째 문단, 세창 이서규 역본 따라서 이 1권에서 우리는 단지 앞서 언급된 측면에서만, 즉 오직 세계가 표상인 한에서만 세계를 고찰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를 자신의 단순한 표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내적인 거부감은, 이러한 고찰이 진리를 훼손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일면적이고, 결과적으로 어떤 자의적인willkürlich 추상화를 통해 야기된다는 점을 고지해 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누구도 이러한 가정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찰의 일면성은 다음 권Buch에서 우리가 여기에서 언급하는 진리처럼 그렇게 직접적으로 확실한 것이 아닌 진리를 통해 보완될 것이다.
주의: 오성Verstand, 선험성Apriorität, 선험적transzendentale
가독성 자체만 보면 둘이 비슷한거같은데 그래도 나는 이서규 역본이 나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