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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의 글은 하이데거의 단 한마디로 정리된다.

"이 정신과 의사(라캉)야말로, 정신과 의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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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지식인들 사이의 뜨거운 감자가 하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마르틴 하이데거, 그 난해하기 그지없는 '존재와 시간'을 쓴 작자다.

당시 그는 나치에게 빌붙었다는 명목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하이데거는 대학을 새롭게 개편하기를 원했고, 자신이 나치의 힘을 얻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그는 나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나 보다. 그는 순식간에 감옥에 들어갈 위기에 처했다.

의외로, 그를 감싸고 나선 것은 프랑스 지식인들이었다. 물론 블랑쇼나 레비나스처럼 하이데거를 알게모르게 까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하이데거를 변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그 변호의 이유가 하이데거의 무고성에 있다기보다는 단지 '그의 저작이 무척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사르트르가 있다. 그는 하이데거의 존재철학을 많이 이용했다. 대표적으로 '실존은 존재에 앞선다' 이 유명한 문장도 사실은 존재와 시간에 먼저 제시되어 있던 것이다.
쨌든, 사르트르는 하이데거를 이렇게 평한다.
"인간은 자기 저술의 수준에도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이데거가 그렇다."
한마디로, 인성은 안 좋아도 능력은 있으니까 봐주자... 정도가 되겠다.

라캉 역시 하이데거의 광팬이었다. 다만 그를 사랑했다기보단 그의 이론을 사랑한 거 같다. 라캉과 하이데거, 두 남자의 엇갈림은 제법 기묘한 광경이다.

먼저 위키피셜로, 독일 바덴 지방을 점령한 프랑스군은 탈나치화 작업에 들어갔다. 피에르 펜느 군정 사령관은 하이데거의 나치부역 전력에 대한 평가를 독일어 교수였던 라캉에게 맡긴다. 라캉은 일축한다. "그는 자신이 수동적 방관자였단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라캉도 차마 그의 인성을 커버칠 수는 없었나 보다.

그런데 이후, 하이데거의 사상은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 제멋대로 가공되기 시작한다. 나중에 하이데거가 나와서 "그건 내 사상을 잘못 이해한거다!"라 반박하긴 하지만, 그전까지 하이데거의 사상은 상당히 와전된 상태였다. 예로 들어, 사르트르는 하이데거의 사상이 궁극적으로 휴머니즘을 목표로 한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하이데거가 궁극적으로 목표한 바는 "단지 이성으로부터 떨어지는 것" 소크라테스에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그리고 비본래적 삶을 부추기는 현대 기술문명에서 벗어나 예술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첨언하자면, 라캉은 하이데거의 책을 번역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번역이 완전히 라캉 자기멋대로였다.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 최신 버전을 번역하지 않고 옛날 버전을 번역했다. 덕분에 하이데거의 궁극적 사상이 담긴 윗문단의 내용은 누락됐다.

훗날 라캉은 하이데거에게 자신의 책 '에크리'를 선물한다. 그 책을 받고 하이데거의 소감이 바로, 위에 말했던
"얘는 정신병원이나 가야겠다!" 이거다.

과연 하이데거의 이 말이 라캉을 향한 앙심이 담겨 있었는지, 아니면 정말 난해해서 이해를 못했던건지는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사실 후자의 경우도 설득력 있다. 라캉의 욕망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다.

덤으로, 하이데거는 프랑스 지식인들 덕분에 깜방생활을 면했음에도, 공식적으로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적은 없다. 단지 사후 발표된 인터뷰에 이렇게 적혀 있을 뿐이다.

"프랑스 철학자들은 생각하기 시작하면 독일어로 말한다!"

*라캉의 기묘한 좆목 이야기
1. 라캉, 알튀세르를 만나다
2. 라캉과 하이데거, 두 사람의 거리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