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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칙어 때문에 글이 자꾸 삭제되는 걸 인지했음. 금칙어를 얍얍으로 대체하겠음 **
h. 신앙
카뮈는 “단 한 가지 진정한 해결책은 바로 인간의 판단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데 있다.”라고 말한다.
앞서 세계를 보았다. 의미를 부여하기 이전에 탄생한 세계의 존재에 우린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불가능하기에 신을 찾는 것이라 말하였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스스로 이해할 수 있었다면 신은 필요치 않았으리라.
카뮈는 신앙을 믿는 것을 부조리의 회피라고 설명한다.
부조리한 세계,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규명할 수 없다면, 반항을 거두고 열광적인 동의를 하는 것이,
비합리를 신격화하고 부조리를 무시하는 것이 그들에게 방법일 것이라. 그렇지만 앞서 긍정과 부정에서 얘기한 것처럼
고난은, 삶은 반드시 치유되거나 파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i. 철학적 얍얍
카뮈는 부조리를 인간의 합리성, 이성으로 극복하려 하는 것. 초월하려는 태도를 철학적 얍얍이라고 불렀다.
“실존파의 사람들에게는 부정이 곧 그들의 신”이라는 구절은 정말 명문이다. 맞다. 신은 다양하다. 우린 우리의 언어,
이성으로 비이성적인 세계의 문을 재차 두드린다. 세계의 비이성, 무의미 앞에서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j. 부조리의 자유, 사형수의 자유
g. 삼위일체에서 언급한 것처럼 삶은 인간, 세계, 부조리이다.
카뮈의 말처럼 우리가 만일 한 그루의 나무, 한 마리의 고양이라면 이러한 것들은 문제 자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세계와 자꾸 대립되는 것은 부여된, 보잘것없는 이성 때문이며, 그렇게 태어난 존재이기에 이러한 의식들을
견지하고, 관철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카뮈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은 없다고. 그러나 모든 모습이 달라져있다고 말이다.
인간에게 남은 것은 육체적 얍얍, 이성의 비약, 분수에 맞는 신, 또는 반항 뿐이라고.
카뮈는 인생에 의미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훌륭히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긴다.
우리가 무언가의 과업을 꼭 하나 수행하기 위한 종으로 태어났다면, 의미가 부여됐다면 인간은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고, 이득이 아닌 손해를 선택하는 비합리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을까?
죽지 않는 영생이 약속되어 있었다면 삶에서 오히려 의미를 느꼈을까? 삶을 온전히 느꼈을까? 먹어치울 수 있었을까?
k. 직시
신앙, 철학적 얍얍을 통한 부조리의 회피는 희망을 갖는 것이다.
희망을 갖고, 나만의 진리를 만들고, 존재하는 방식, 창조하는 방식에 집착하는 행위는
삶의 질서를 부여하고, 그런 삶에 의미가 있다 당장에 입증하는 행위가 될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울타리에 가두는 행동이다.
자유로운 것이라 착각하지만, 자유를 속인다. (물론, 이건 카뮈의 입장입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저는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2. 나서며
부조리한 인간에서의 여운은 너무나도 강력하다.
일생 동안 사랑에 있어 순수와 영원이라는 관념을 떨쳐내지 못한 내게, 영원한 것은 부조리를 극복하고자 만든 인간의 질서일 뿐이며,
순간에 진심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준 돈 후안의 일화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임종의 자리에서 자신의 천한 직업인, 배우로 인정 받기 위해 고해성사를 거부한 프랑스의 여배우 아드리엔 르쿠브뢰르의 선택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영원할 수 있다는 믿음, 신의 뜻에 몰입하지 않고, 자신을 선택한, 그녀의 마지막 배역은 비로소 그녀를 자유로
이끌었다. 자신의 주체적 인생이 아닌, 누군가를 순간순간 묘사하며 살아가는 배우의 삶을 나는 은연중 경멸하였다.
그러나, 시간의 유한함 속에서 순간을 사는 인간과 배우의 삶이 무엇이 다른가. 자신을 찾기 위해 자신을 잃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 바치는 그들의 삶은 도리어 동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들의 형벌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올리는 형벌을 받게 된 시지프.
그 끝없는 고통과 형벌에서 카뮈는 산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그 잠깐의 휴지의 순간을 말하였다.
그 순간만큼은 의식의 시간이며,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고, 그 순간만큼은 그가 바위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통해 다년간 나를 괴롭혀오던 허무주의를,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끓어오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는 독백의 정체를 깨닫는다.
모든 것들이 재배치된다. 사물도, 관계도, 나의 마음도. 이 형언할 수 없는 자유의 맛을 여러분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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