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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에 대한 말 by 하스미 시게히코그의 소설에 대해서gall.dcinside.com




전에도 이 인터뷰를 까는 글을 쓰긴 했었지만




나의 부족한 언어능력도 근본적인 이유가 되겠지만




어쨌든 많은 걸 미리 전제하고 말을 한 부분도 있어 발생하는 오해도 있어 그걸 정리해보겠음



(글 후반부에 나쓰메 소세키 소설 "마음" 강스포 있으니 주의 요망)



일단 기본적으로 확인해야하는 전제들을 좀 확인을 하자면 






하스미의 표면론은




결국 관점이 "자의적인 틀"이 될 수 있는 걸 경계해야한다는 맥락 위에 있고


자의적인 틀에 구애받지 않고 세계의 물성이 그것 자체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말임




그리고 그 언어를 수사적 전략이라고 하는 이유는




결정적으로 "자의적인 틀"인 관점을 통하지 않는 인간의 세계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모방,정화 역시도 타자의 관점이 주체로의 전이됨이다라는 걸 부정하지 않고 하는 말이고


그러기에 발생하는 모순이 있더라도 그 언어에서 얻는 베네핏이 있다는 거지






마치 경제학 이념은 수학적인 설계로 도달하는 관념이지만 




그 이념은 "항상 합리적인 인간"이라거나 그 외에도 다소 불합리해 보이는 조건들을 자주 전제로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구조인 것임






이런 전제를 공유하고 인터뷰를 보면




표면론이 취하는 수사적 전략과 맥을 같이하는 형용모순을 이용해서 미시마의 문학을 비판하고자 하는 걸 알 수 있음






말하자면




인간의 세계는 거기 있을 뿐이지만




미시마는 그 세계를 "자신의 연출"에 끼워 맞춘다




모든 작가는 스스로의 연출로 작품을 생산하기에 




이 강조는 세계가 오직 미시마의 관점으로 통하는 관념이 되어 그 세계가 가진 고유의 물성은 뺏긴다는 말이고




"관념은 추상적개념이자 폭 넓고 다양한 관점의 다양한 이해고 창작자의 관념을 통하지 않는 문학작품이란 건 있을 수 없다"




라고 미리 합의하고 있는 전제에서 "자의적인 틀"로 수렴하는 관념을 분리하고 관념이 막이 되어 세계를 보는 것을 방해한다는 의미고 




관념이 표면을 덮어 세계의 물성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막이 되어선 안된다는 소위 표면론이라는 지론에 입각한 비판으로 유효해 지는 것임










그런데 말이 거기서 끝나지 않음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에는 언어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짜증'이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의 언어는 미리 세워진 미학적 설계도에 따라 완벽하게 제어되어 있으며, 그것은 마치 잘 닦인 가짜 금도금과 같습니다"




라고 부연을 하며 설계도가 미학적 설계도고 "표면의 물성을 가렸던 미시마가 연출해 놓은 이데올로기자 두꺼운 막"은 가짜 금도금이라고 말하는 것임




이건 완전히 같은 말이 아님 




물론 따로 저 문장만 떼어내면 얇은 금막은 지각을 흐려 가치를 속이려는 의도가 본질이고 그걸 적발하는 비유로는 하스미의 지론 그대로임





그러나 왜 문제를 제기하냐면




일단 미시마의 문학이 실제로 하스미의 말대로 그러한가의 이슈로 넘어가게 되면




미시마가 그리는 관념은 미시마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일본의 것"이고 "스스로 선택한 아름다움,죽음"이라는 관념이 관철되고 있는 곳이며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허무가 팽배한 곳이 일본이다




미시마는 그것을 일본이라는 관념이 개인을 짓누르는 "일본의 물질성"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걸 그린 것이다 




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는데 그걸 원천 봉쇄하고자 하는 의도의 수사적 설계도로 읽힐 수 있다는 거지




하스미가 1절만 순수하게 했다면 어 그래 죽음, 더구나 의지를 갖고 선택한 자--살이란 형태의 죽음




이건 관념적인 주제고 거기에 집착하여 도달하는 것이 표면론에서 추구하는 글쓰기 즉 세상을 보고 서술하는 방식과 멀리 있다 




ㅇㅋ




근데  "일본" <- 얘 자체가 관념인 건 부정할 수 없고




하스미 본인 역시 "일본적인 것"에 대한 애착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그의 문학,영화 비평의 미학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음






물론 일본인이 일본문화에 가장 가혹하여 저평가됨을 탄식하고 그 가치를 밝히는데도 상당히 주력하는 편이라 했으니




"일본" 이란 관념에 의해 가치가 손상된 것을 회복한다는 핑계는 가졌지만 그게 0도를 지향하고 있다는 어필은 될지라도 0도에 머물러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보는거지






그럼 미시마에게만 일본이란 관념을 말하는 것에 그렇게 엄격해야하나?




라는 근본적인 의문과 의심이 안 들 수가 없잖아






다시 돌아가서 유효했던 수사적 전략의 구조를 좀 간략히 하자면






세계=두꺼움




그 두꺼움을 미시마가 자의적으로 거세함= 관념화함




그 관념은 다시 두꺼운 막이 되고(두꺼운 세계를 다 덮어야 하니까)




두꺼움(세계)를 보지 못하게 하는 두꺼움(막)




 이지만 그게 동시에 세계의 두꺼움을 쳐내는 연출 즉 얇게 하는 정형이다라는 의미를 내포해  "거짓된 진실"같은 형용모순을 적절하게 이용을 하는게 수사적 전략의 구조인데






여기서 끝나면 문제가 없지만




거기에 사족이 붙잖아






"미학적 설계도에 따라 완벽하게 제어되어 있으며, 그것은 마치 잘 닦인 가짜 금도금"






앞의 형용모순이 완성이 되었는데 다시 역으로 가는 형용모순을 중언하면서 그 자체로는 표면론에 대한 이해지만 그것들이 중간에서 만날때 




전혀 다른 맥락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임




말하자면




두꺼운 막=미시마가 두꺼운 세계를 가렸던 관념 =미학적 설계도에 완벽히 제어된 미시마의 관념= 금도금(얇은 막)






의 흐름이 생기고 얇고,두꺼운이라는 형용사를 같은 대상에 대해서 혼용하는 의도를 볼 기회가 오고




그건 단지 도금이 상태의 얇다는 속성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표면론까지 갈 필요없이 그냥 그 자체의 가치 부여의 맥락이 되어 버리는 것임




미시마의 관념이 두껍든지 얇든지 상관없이 알 필요도 없이 그냥 쓰레기라는 소리가 하고 싶은 거였나란 생각이 든다는 거지 






거기에




미시마의 저작이 책임은 무겁고 허무는 팽배하고 남은 선택은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움뿐임을 강요하는 일본을 발견해서




그 책임에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밀려나는 인간에서 "일본이란 관념의 물성"을 보는 것을 거부하는 심리가 보이는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거임 






평소의 지론인 표면론을 유지하고도 그 소망을 관철하여 어떻게 미시마를 정의해 가둬 둘 것인가의 설계도를 그린다면 






"일본(두꺼운 또 풍부하고 아름다운 세계)에서 미시마의 자의적인 연출로 도달한 이해를 분리해야 한다"




어떻게? 세계를 관점 없이 그러니까 인간의 이해 이전에 이미 두껍게 묘사해야한다




미시마를 둘러싼 세계에서 미시마가 도달한 이해는 당연히 세계의 관념화다만




 그 관념! 그 이해! 그것을 도금으로 밀어낼 수면아래의 심연이 두꺼워야 하는 것이지




그러니 그걸 철저하게 가려 줘야하는 순간에선 완고하고 두꺼운 관념이 되고 거기선




"우리는 미시마라는 개인의 두꺼운 관념을 이해하기 위해 주의를 뺏겨 세계의 두꺼움(풍부함)을 지나쳐서는 안되니 두껍고"




동시에




"미시마의 관념은 미학적 설계도를 통해서 세계가 완벽하게 제어되어 도달한 명료하게 식별가능한 미학이라서 그 표면은 가볍고 하찮은 도금이란 질적 위계가 되는 것임"






물론 나의 이해는 하스미가  "일본적인 것"을 추켜 세우려한다는 동기에 대한 의심 위에 있는 것임은 인정하는 바인데






하스미의 언어는 그 의심이 부당하다고 말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음




그의 표면론은 결국 세상의 물성을 보자는 것이고 




미시마의 작품에 드러난 일본에 대한 물성이 있는가




그렇게 하스미가 규정한 "미시마 개인의 자의적인 연출" 한마디로 묵살할만큼 그의 작품의 성질이 일본의 물성에 그렇게 무관하며 멀리 있는가에 대한 판단도 



고려해줘야 공정하다는 거지






미시마의 솔직한 의도가 어떠했냐는 나도 모르고 딱히 뭐라 할 말도 없는데 




명예롭고 아름답게 배 가르는 무사도의 나라가 일본인게 일단 미시마 때문은 아닌게 확실하달까




그렇게 결벽적인 태도로 혐오를 보이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싶은 유혹은 나도 미시마에서 느끼긴 하지만 진짜 그게 다라고만 생각하진 않거든




그리고 하스미가 추켜세우는 나쓰메 소세키의 일본내 대표작인 마음에서도 죽음에 대해서 말하잖아




그건 다르다고?



우연히 만난 인간 불신에 빠져 죽기 직전의 영감이 


자신이 죽는 이유를 밝히는 편지를 보내오고 나의 세계에선 아버지의 죽음과 천황의 죽음이 드리우고 있고


그 영감이 죽는 이유는 자신의 배신(죄질은 너무 무겁지 않도록 정교하게 계산되었지만) 자--살하게 만든 옛 친구 때문인데 


그 배신으로 깨우친건 자신을 배신(정교하게 계산된 죄질2)한 가족에 대해 품은 증오를 상기하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살아왔고


천황의 죽음이 마침내 도래하고 노기의 죽음으로 전이되면서 집에서 앓고 있던 아버지랑 대칭을 이루고 있고 선생과 나 사이를 연결하고


선생이 그 전이되는 죽음에 동참하면서 그 죽음에 의무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의 결과로 당신에게 생명을 깃들길 바란다고 말하고 끝나는 구조가


하스미가 칭하듯 그렇게 살아 움직이며 예측 불가능해서 소세키의 관념은 도무지 볼 수 없을 정도임?


그렇다고 우기면 멍청한 거지


지금 말한 구조가 대부분 드러나는 것은 선생의 편지 즉 유서라는 예언적 본질 위에서 논리적으로 자신의 죽음으로 도달하도록 깎아놓은 인생을 표현하는 문장들이고


이 설계된 구조는 그 예언적 본질의 실현됨이 딱 그 선생의 고립된 세계에서 벗어나서 다른 죽음과 공명하고 그게 새로운 생명에게도 전해지는 순간 완성이 되잖아 





소세키가 속죄를 한다면


일본인이라서 다행이다(한국 중국에서 안태어나서)라는 국뽕의 신조를 만든 소세키의 사설 같은 관념이나 할 것이지


굳이 왜 남을 죽여서 생명을 주니 속죄를 하니 거기서 왜 일본인이 유독 더 그 정서를 이해하고 감동받고 하는지는 "일본"이란 관념에 대한 이해가 전제가 된다는 말이잖아


소세키가 남을 위한다며 떠는 의뭉이 미시마가 빠지는 자기애의 연쇄보다 더 일본인에게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고 말이지



뭐 생각은 다를 수 있겠고



설령 뭐 그냥 연쇄된 죽음이 속죄의 의미로 관념화 된게 마음에 든다는 일본의 미학자라도 이해할 수 있음



  

근데 그거를 꼭 표면론을 들먹이면서 하는 거라면 본말을 뒤집고 싶다는 욕구가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거지





그냥 다 떠나서 수사적 기교는 상쾌해야하는데




가벼운 도금에 불과한 것이 어떻게 그토록 완고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당신을 역겹게 만들 수 있는가? 생각하면 웃기잖아



어쨌든 그 관념이 실제로 일본사람을 아름다운 죽음으로 밀어내는 물리력이 된 역사는 부정할 수 없는데 말이지 그게 관념이라서 "우리는 그걸 무시해야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말이야



절대 다수의 일본인이 국민 작가의 대표작으로 납득하는 그 자발적 죽음의 연쇄의 이유에는 관대한데...




이게 안 이상하면 뭐.. 더 할 말은 없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