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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나가 다케히코-<풀꽃>, 박성민 옮김, 시와서를 다시 읽었다. 나는 문학 작품에서 이토록 서정적이면서도, 읽고 있으면 아련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아직 알지 못한다. 이 작품은 시오미 시게시라는 주인공과 16살의 소년(후지키)과 24살의 여성(지에코)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다. 같은 학교를 다니며 궁도부에서 활동하는 시오미는 후지키를 깊이 사랑한다. 그리고 성인이 돼서는 후지키의 동생인 지에코에게서 후지키를 엿보기도 하면서, 그녀를 열렬히 사랑한다. 하지만 그 둘은 시오미의 꿈, 열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전자는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후자는 자신만큼 기독교를 믿지 못하는 시오미를 사랑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시오미에게서 떠나 버린다.
사진 2, 3, 4에서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오미가 30대가 돼서 자신만의 예술론을 주장하는 모습이다. 이 예술론에 맞게 시오미가 살아가는 삶은 2장 후지키 편과 3장 지에코 편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이 작품을 읽으며 시오미의 열렬한 두 번의 사랑과 그의 고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둘을 사랑했지만 그들에게 받아 들여지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는 늘 고독을 느낀다. 고독한 심리 상태 속에서 그는 중세의 페트라르카의 시를 번역하기도 하고, 소설 쓰기에 열중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부질 없는 행동이라는 마음을 품게 된다.
2장 후지키 편에서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구절은 이렇다. “우리 자신이 살아 있음으로써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예전에 살았던 이들도 여전히 살아 있는 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은 그가 재가 되고 티끌로 돌아간 후에도, 누군가가 그의 동작, 그의 말투, 그의 버릇, 그의 감정, 그의 생각, 그런 것들을 또렷이 기억하는 한,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죽어가면서, 그가 살고 있는 유명계는 차츰차츰 좁아지다가, 마지막 한 사람의 죽음과 동시에 그는 마침내 두 번째의, 결정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이 죽음과 함께 그는 더 이상 산 자들 사이에서 되살아 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은 자를 기억하고 그에 대해 써야 할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는 계속해서 살아 있을 수 있게 될 테니.
3장 지에코 편에서는 작중 배경이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시오미는 머지 않은 미래에 징집될 것을 예감하고, 자신의 삶에 있어 실존적인 의문을 느낀다. ‘전쟁에서 죽고 죽이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가...’, ‘내가 상관에게 누군가를 죽이라고 명령받으면 정말 죽일 수 있을까?’ 같은. 미래에 패전하고 나서, 30대가 된 시오미는 학창 시절에 알고 지냈던 선후배동기가 전쟁으로 인해 많이 죽었음을 느끼고 삶의 허망함을 체감하기도 한다. 이 쯤에서 전쟁이란 것이 청년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들, 이루고 싶었던 꿈도 오롯이 접고 전장으로 나가야 한다니. 그리고 누군가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삶이란. 끔찍하다는 생각뿐이다.
이 작품을 읽고 있을 때마다 왜인지를 모르겠지만, 시오미를 보면서 나를 포개어 보게 된다. 어릴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렸지만, 항상 고독함을 느껴왔고 혼자서 골똘히 생각하고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해왔던 나 자신에 대해 시오미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일까? 그 만큼 시오미에 대해서 충분히 여러 많은 독자들이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작품 네 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정적이고, 만연체까지는 아니지만 문체에서 유미주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도 후지키를 깊이 사랑했다고 하는데, 나도 그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하게 된다. 동시에 시오미를 떠난 지에코도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었다. 후지키, 시오미, 지에코 이 세 캐릭터가 참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매력적이어서 즐겁고 아련한 마음으로 이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리고 역자 박성민 선생님의 번역에 늘 감탄하게 된다. 시와서 출판사의 선생님의 여러 번역 책들을 읽으면서, 일본어 특유의 ‘,’로 문장과 문장 사이를 잇는 느낌을 한국어로 참 잘 살려주신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다른 일본 번역 문학에서는 ‘,’ 처리가 사라지고 일상적인 한국어 문학 표현에 맞게 번역되기도 한다. 2020년대에 읽은 문학 중에서 마음 속 최상위권 반열에 드는 작품이니 이 글을 정성스레 읽어 주시는 분들께도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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