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말로써 가르칠 수 없다 했는데 싯다르타가 얻은 깨달음을 책으로써 풀어낸 거 보면 주제 자체가 모순되는 거 아님?'


이거 좀 모순 아니야? 라는 의문이 있길래



흠..



일단 불교도 그 시작부터 헤르만 헤세에게 도달하기 전까지가 같지 않고


비록 많은 책,강의,유튜브 영상팔이들이 그 책 세일즈 포인트를 불교경전처럼 두고 팔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 포인트대로 헤세가 쓴 충실한 불교경전이라면 오히려 더 읽을 이유가 없는게 아닐까 생각은 한다만



암튼


 일단 불교는 힌두의 세상에서 발생했고 


상좌부-대승이라는 맥락으로 달라졌는데  


불교라는 종교자체가 탄생도 그렇고 핵심교리도 맥락에 있다고 봐야해서


그건 하나의 개체의 발전이나 변화라기 보다는 그냥 그게 다 나름의 불교인 거임



다만


깨달음의 대중화가 이뤄진 대승불교는 그 목적대로 퍼져나갔고


그러지 못한 초기불교는 힌두의 세상에 먹혔다는 사실은 있는거지 


물론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힌두의 반동으로 얻은 지위는 거의 다 상실했다는 말임



그리고 "깨달음은 말로서 가르칠 수 없다" 같은 말이 불교가 있게한 핵심교리이면서 동시에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한 중요한 요소니


당연히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기도 함 




대승불교의 핵심은 보살임


원래 보살은 반드시 개구리가 될 올챙이처럼 아직 성불로 완전히 눈을 뜨고 부처가 되기 전의 석가모니만을 칭하여


특별한 존재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의 입장에선 깨닫고자 하는 자 모두 보살이니까 언제든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족되는 보편적인 존재의 의미임

 


그 보살의 불완전한 입지를 활용해서 관세음, 문수, 보현, 지장 같이 전지,지혜,실천,관용등을 


각자 전담해서 상징하여 부처의 가르침이나 기복을 요소별로 각자 맡아 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각 보살이 부처에서 뭐가 빠졌나로


즉 소거로 인한 부존재로도 깨달음을 주기도 함


예를 들면 지장은 본질적으로 나는 부처가 아니 될것이다(물론 지옥이 빌때까지란 조건은 있지만)


쌍(욕아님 보통상임)놈은 쌍놈이 더 잘 알기에 내가 쌍놈들을 영원히 이해하고 품으려면


그동안은(사실상 영원히) 지고의 가치는 깨달을 수 없다라고 깨달음의 부존재에 그 본질이 있는 보살이고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고 반야경을 만든 존재로 모든 부처의 스승의 포지션인데 사자를 타고 칼을 들고 다님


여래의 조건이 깨달음인데 지혜를 상징하고 신성의 증거이자 교리를 전하는 경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걸 만든 보살인데


보살 중에 가장 높은 존경을 받는 존재가 아니고 영원히 안깨닫는 지장보다도 인기가 없음 


그건 의도를 갖고 그렇게 만들어서 그럼



"깨달음은 말로서 가르칠 수 없다" 같은 핵심교리도 그렇고


  이 교리를 설파하기 위한 유마경에서도 유마에게 그걸 배우는 존재로 나오거든



유마는 쌍(욕아님 보통상아님 상업상임)놈이자 흙탕에서 피는 연꽃을 연상케 하는 존재고

그가 문수(경전, 정보의 우위에 있고 사자를 타고 칼을 쥔자)에게 정보의 부재(침묵)의 가치를 증명하면서 불이라는 깨우침을 주고


본디 깨달음은 경전(새겨진 말)에서 온 것이 아니고 거기에 지배를 받지 않음을 말하는 것임


이 개념을 부정하면 상좌부에서 베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고 여기서 더 가면 선불교를 거쳐 그냥 혼자하는 부처놀이까지 가는 것임




그러니 이건 중간에 있는 "맥락"일 뿐 정언이 아니니까 쓸데없이 심각해지고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보면 될 거 같음 


헤세의 말은 거기서 좀 오른쪽에 있다고 보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