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운동의 선구자였던 루이 아라공은, 1927년 동료들과 함께 공산당 입당 이후 점차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자연히 다루는 문학 주제 또한 리얼리즘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 지적 전향에 쐐기를 박은 일은 1932년, 소련 방문 당시 쓴 장시인 <붉은 전선(Front Rouge)>인데, 내용의 과격성과 경관 살해, 명령 불복종 등을 부추긴단 이유로 공안당국에 의해 기소당할 위기를 맞는다.
당시 사이가 서먹헤져 가던 앙드레 브르통 등의 변호와 문인들의 탄원으로 아라공은 겨우 위기를 벗어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완전히 초현실주의와 관계를 끊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전향한다. 이 일련의 사건을 '아라공 사건(L'Affaire d'Aragon)'이라 부를 정도다.
초현실주의적 이미지와 선두적 묘사로 가득찬 시집 <영구 운동(Le mouvement perpétuel) 뒤로, 낯선 이름의 <우랄 만세(Hourra l'Oural)>가 뒤를 잇는다. 그는 시뿐이 아니라 소설을 통해 세계의 변혁성을 드러내고자 했는데, 이 일련의 시리즈는 1935년 <바젤의 종(Les Cloches de Bâle)>, <아름다운 거리(Les Beaux Quartiers)>, <승합차 위의 여행자들(Les Voyageurs l'Impériale)>, <오렐리앵(Aurelien)>, <공산주의자들(Les Communistes)>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현실 세계(Le monde réel)>의 시작이었다.
이 <현실 세계> 의 의도는, 세계란 혼돈에 가득 찬 공간이며, 이러한 무정부적인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 필연적으로 일어나고, 이 사실을 독자는 터득, 성찰하여 현실에 대한 예리한 칼날을 겨누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칼날을 벼리는 방법은 아라공에게 있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었으며, 결국은 문학은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라공은 결코 불문학이 쌓아온 교훈과 유산을 결코 경원시하지 않는다. 그는 위고, 스탕달, 발자크 등의 대가들이 다뤄온 개인과 사회, 인간의 심리에 대한 예리한 묘사를 물려받아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행적을 통한 사회변혁의 움직임과 당위를 묘사하고자 하였다. 즉, 현실의 재현과 그러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무모해 보일 정도(초현실적?)로 잡고자 한 대담한 실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초반의 세 권은 제1차 세계대전에 휘말린 사회를, 뒤의 두 권은 1차대전 이후인 전간기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2차 대전으로 빨려들어가는 사회와 개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전쟁을 낀 사회적이며 심리적인 두 번의 패턴은 이란성 쌍둥이마냥 동일하게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철과 피의 시대는 아름다울 정도로 미치거나, 미치도록 아름다운 시대를 거쳐 '우리 시대의 평화'에 이를 것만 같은 헛된 경험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시 빠트려 버린다. 두 방향으로 제시되는 파괴와 혼란의 묘사는 반대급부로 극복의 서사인 혁명을 요구하게 된다. 이 역사의 반복적인 흐름은 각권의 작중 등장인물들이 속편에서 다시 등장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의 시도는 문학적인 성과로만 봐도 나쁘지 않았다. <아름다운 거리>로 1936년 르노도상을 수상받고, <오렐리앵>이 작가 사후 르몽드 20세기 100대 소설에 실린 것만 봐도. 그러나 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파도에서 그 또한 벗어날 수 없었고, 이 위기를 왕성한 지적 레지스탕스 활동을 통해 극복한 아라공은 1951년 집필 중이던 마지막 소설 <공산주의자들>의 6권에서 갑자기 집필을 멈추는 것으로 그가 묘사한 현실을 중단한다. 1940년 5월 작중 '전란의 색'의 시간 직전에서.
20세기의 발자크를 꿈꾼 그가 왜 20세기의 위고를 꿈꾼 작품에서 마무리지은 것일까? 혹자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뒤 바빠진 정치적 일정, 16년이나 이어진 집필에 의한 개인적 피로, 묘사에 있어 리얼리즘의 한계, 그리고 자신의 결과에 대한 세간의 반응과 비판 등등이 한 몫 하였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확하고도 근원적인 원인은 이 모두와는 거리가 있다. 어떻게 보면 현실을 마무리짓지 않는 초현실적 방식 또한 그 무엇보다도 현실에 부합하는 아라공의 대처일지도 모른다.
여담: 국내 번역된 현실세계 연작은 2023년 나온 <오렐리앵> 밖에 없다. 일본은 이미 70년대 즈음에 전부 다 번역된 것으로 안다. 놀라운 사실은 마지막 권 <공산주의자들> 이 1957년 북한에서 완역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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