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알못이지만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다른 작가의 글을 보며 어떤 생각을 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읽으면서 상당히 오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내가 지금껏 읽어온 3부작에서의 베케트와 달리 프루스트에서는 문체 자체에서 열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가로서의 훅훅 대는 숨소리가 느껴졌다.

아마 프루스트를 썼을 당시 나이가 어리기 때문일 수도 있고, 3부작에서는 항상 자기 자신과 글을 검열해야 하는 까다로운 문체를 사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용을 요약하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평론문이라 그런지 원문 자체가 이미 충분히 요약되어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더 요약한다면 그 내용의 파괴일 것이고, 딱히 내 미천한 대가리로 베케트의 평론문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안한다.

그래도 굳이 시도해보자면 베케트의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타나는 기억과 인식에 대한 분석과 그 나름대로의 정리였다. 잃시찾을 집필한 프루스트 본인의 아이디어와, 베케트가 그걸 보면서 제멋대로 의역하고 생각한 사유들의 연속이다.

글 자체가 맥락이라 한 부분이라도 빼면 애매해진다. 그래도 대충 시도해보자면 먼저, 기억은 습관(우리를 보호하는)이 재구성하는 의지적 기억과 우연한 감각적 충격으로 일어나는 비의지적 기억 두 개로 나뉜다. 주체와 객체, 기억과 습관은 겁나 복잡하게 돌아간다.

시간은 흘러가며 습관을 폐기한다. 습관이 사라지면 우리는 다시 안정되고자 새로운 습관을 찾는다. 하지만 습관은 세계의 진실을 마비시킨다. 반대로 비의지적 기억은 현재를 부수며 마들렌 파트처럼 과거를 재현이 아닌 사건으로 되살린다.

사실주의 예술은 습관을 낮설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강화한다. 그래서 예술을 의미 전달 수단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베케트한테 욕을 ㅈㄴ먹는다.

사랑은 타자와의 만남이 아니라 자기 내부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다. 그래서 사랑조차 습관, 기억, 시간의 파괴 속에서 안정될 수 없는 인식 구조다. 마지막 쇼펜하우어 음악 파트는 정말 읽기 힘들었다. 갑자기 형이상학 풀악셀을 처밟는다. 겨우 한 장 정도라 다행이었다.

읽다보니 문득 생각난 게 있다. 나도 예전에 습관이 깨지고 시간과 현실에 그대로 노출된 적이 있었다. 죽을 뻔 했을 때였는데, 그건 다행히 내 착각이었지만, 그 때 주마등처럼 기억들이 내게 작용한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무튼 읽다 보니 베케트가 책을 지 ㅈ대로 보는 타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렇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독서 행위에서 원작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지만, 그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나만의 새로운 사유로 나아가는 게 딱히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재미있는 여행에 가까울 것이다. 앞으로도 문학을 읽을 때 ㅈ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권까지 보고 내려놓은 잃시찾도 나중에 시간과 돈이 받혀준다면 12권까지 읽어보고 싶다.

베케트의 프루스트는 분명 재독하고 싶은 작품이지만, 다른 평론문은 읽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다시 문학으로 힐링을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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