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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김동인 염상섭 현진건은 조선문단의 큰별로 고평가받고있었다

오늘은 염상섭에 대해서 알아보자

1900년대쯤에 대다수의 근대작가들은 다 각기 태어났는데 염상섭은 1897년생이었다
그리고 부자집에서 태어났다
다시말하지만 최서해는 특이케이스였다
그당시의 부잣집특은 일본유학이 패시브였고
염상섭도 그 패시브로 유학에갔다

염상섭은 민족주의 운동을 하고 옥살이를 했다
이 민족주의 운동부터 이인간은 좀 특이했다
당시의 민족주의운동은 그당시의 사람들끼리 일단 뭉치고 해야하는게 맞았다
그리고 염상섭은 일인시위의 형식으로 하다가 끌려갔다
웃긴것은 퇴학안당함

그럼 현진건이나 심훈같은 항일운동식으로 문학을 한거임??한거면 전혀 아니다
일단 문학공부를 하다가 동인식으로 폐허라는 잡지사를 창간하고 김동인하고 키배로 조선문단에 이름을 알린다

아마 이때의 키배로 더 빨리 등단한건지 모른다
왜인지모르겠는데 다들 염상섭 처녀작은 기억하고있다
물론 구리고 소설적인 완성도도 구리다
보지말자

만세전이라는 조선 최초의 중편소설의 개념을 도입해가며 평을 다시 뒤엎는다
그리고 염상섭은 다시는 넘을 수 없는 그리고 지금날에도 꿀리지않은 삼대라는 장편을 써내며 평을 최고조로 올린다
그리고 이때부터 염상섭의 발표작들은 삼대하나를 못 뛰어넘었다
대표작인 이유가 다 있었다 제일 문학적으로 완성되었고 제일 괜찮았고 천명관같은 케이스였다
이후의 염상섭은 소설가보다는 기자와 후배를 발굴하는 역할만 맡았다

염상섭은 친일에대해서 말이없는 작간데
그 이유는 이인간이 소설가보다는 언론인의 일을 했고 친일의 냄새가 나는 작품도 글도 거의 없어서다

사실 염상섭이 상당히 잘피했기때문이다
친일파=개새끼 이런 작품성을 띄지않았고
공산주의=우리의 희망 이러지도 않았고
서민=돈에 환장하는 서민 이런 형식이었기때문이었다

소설들이 민족주의도 경향주의도 아닌 중립적이었다
어디가 선이지 않은 피카레스크적인 작품관과 인물들의 갈등을 현실적이게 잘그려서다

해방이후 종군기자로도 해군소령으로도 일하다가
중국 만주로 사업하다가 암으로 죽었다
어째 무지 이상하게 갔는데 나름 평화주의적으로 간거다
월북코인도 우익코인도 어디도 아니게 죽은거다
일제시대에서도 중립을 지킨것처럼

염상섭은 고집하고 술이 무지쎗다
호가 횡보인데 저거 늘 술 쳐먹고 헤롱거리면서 걸어서 지은호냐고 다들 물었다

혹탱이는 늙어서 난거다
저 인간 젊은시절에 저거 없었는데 한 50됐을때보니까 다 저렇게 혹나있다
그리고 탈모인이기도하고

게다가 의처증이었다
죽기직전에도 마누라 나버리고 딴데가지시마소서 하고 계속 붙들었다고한다
김동인뇌피셜로는 지가 지은죄가 많아서라고 하기도한다

이게 좀 특이한게 김동인이 인성탑이지만 이 인간 성격도 인성도 좋은편은 절대 아니었다
신여성이라던가 여자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그러면서 여자한테 꽤 추군거렸다
성격도 좋게말하면 호탕하고 보수적 지금말로는 꼰대였고 개저씨였다

사실 김동인좌는 다크나이트였다
여러가지로

최서해
나도향
박태원
이태준
현진건
백석
김동인
채만식

현대문학 믿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