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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비평이란 뭘까? 이게 단순히 좋은 비평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는 작법 문제 이상이라는 건 비평을 조금 읽어보다보면 느낄 수 있다. 비평이라는 것이 어떤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 방식은 분명 천차만별이다. 감상과 비평이 서로 구분되듯-나는 대체로 감상만을 쓴다-비평은 단순한 감상 이상의 무언가를 분명 담고 있어야 하는데, 보통 이 무언가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이론'이라고 부른다. 이론의 목록은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데, 문학 비평 수업으로 으레 쓰는 로이스 타이슨의 <비평이론의 모든 것>만 참고해봐도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 신비평, 독자반응, 구조주의, 해체, 신역사주의, 퀴어, 아프리카계 미국인, 탈식민주의 등 열 개가 넘는다. 정신분석보다 이전으로 돌아가면 낭만주의, 인본주의, 역사주의, 그리고 고전적 의미에서의-아리스토텔레스를 참조하며 형식과 규칙을 강조하는-비평까지 참 다양하기 짝이 없다. <비평이론의>가 수십 년쯤 지난 책이라는 점과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비평들만 생각해도 현대의 비평 이론은 그 이상으로 무궁무진하다면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여기서 원래 질문은 어디로 갔는가?


문제는 좋은 비평이라는 것이 시대적으로 자주 급변했었다는 점에 있다. 문학 수업에서 다루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비평은 낭만주의 시대에 파국을 맞이했고 철저한 규칙성은 불규칙한 감정의 폭발로 대체되었다. 또한 비평을 위해서는 비평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 제작자의 삶과 시대에 집중해야 한다는 역사주의 비평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고, 문학이 시민의 교양을 채우는 도덕적 교훈을 줘야 한다고 강권하는 도덕주의 비평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반발로 텍스트 그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신비평이 나오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각각의 비평의 관점에서 봤을 때 서로 다른 비평이 방향성이 다르다고 돌려말할 수는 있지만, 그 다른 방향의 비평을 서로 좋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한 공통된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신비평이 역사주의 비평에서 장점을 찾지 못하듯, 역사주의 비평 역시 좋은 신비평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리고 비평 대상을 그 대상이 탄생한 시대를 통해 바라보되 그 시대에 대한 역사적 서술을 텍스트로서만 바라보며 이 텍스트를 신비평적으로 접근한다는, 기이한 혼종 신역사주의 비평이 후대에 탄생한 것을 생각하면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이다......)1)


그러나 어쨌든, 이 모든 비평은 무언가가 '좋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평은 반드시 가치평가를 위한 논증일 수밖에 없다. <비평철학>에서 노엘 캐럴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비평의 방법론이 어떤 방식이든간에 비평은 반드시, 자신이 다루는 대상이 '좋다는' 근거를 다루는 글이든, 혹은 '나쁘다는' 근거를 다루는 글이든, 최소한 그 대상이 좋은지 나쁜지를 반드시 염두하고 있는 글이어야 한다. 그 근거는 최대한 자신의 주관에 의존하지 않은 객관적인 토대를 기초로 해야 하며, 사람들이 비평에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것, 무언가가 좋다고 느끼지만 왜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바로 그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니 말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엘은 좀 더 강도 높은 주장을 하는데, 좋은 비평은 바로 이 핵심을 잃지 않은 비평, 곧 비평 대상을 분석하는 방식이 비평 대상에 내재하는 어떤 탁월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비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평 이론에는 적합하지만 정작 그 비평 대상의 탁월함에는 어떤 설명도 되지 못하는 분석을 선보이는 비평은, 노엘의 관점에서는 그리 좋은 비평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노엘은 비평에서 찾아야 하는 탁월함을 설명하기도 하고-제작자가 '의도적'으로 일궈낸 예술적 성취여야 하니 비의도적 예술은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탁월함을 설명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별 장르를 분석하기도 하는 등-어떤 작품은 이 장르에서 기대되는 특정 요건들을 잘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등등-주장과 근거가 뚜렷한 명제로 정리될 수 있는 분석철학적 논증을 통해 주장을 개진한다. 대체로 급진적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동의를 구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을 뚜렷하게 정리하는 것에 가깝고, 그래서 사실 <비평철학>이라는 거창한 이름치고는 건질 만한 것이 그리 많지는 않다.2) 사실 <비평철학>을 읽으며 건질만한 건 오히려 따로 있었는데, 왜 <비평철학>이 나름대로 읽을 만한 재밌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제목에는 그리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느냐였다. 돌고 돌아서, 다시 분석철학에 대한 불평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너무 뻔한 이야기를 위해 거창한 논증 형식을 취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인데, 작품 A가 좋은 이유가 A가 속한 장르 a에서 만족해야 할 요소들을 A가 만족하기에 A가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작품 B는 장르 a의 요소들을 만족하지 못해 좋은 작품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B는 a가 아니라 장르 b에 속하는 작품이기에 이 장르의 요소들을 만족하여 좋은 작품이 된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B가 사실은 b에 속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이 때 B가 좋은 작품으로서 품고 있는 탁월성이 어떻게 B에 내재적인 것이 되고, 애초에 b가 원래 존재했던 장르가 아니었다면 이 초창기 작품 B의 속성이 먼저 나오고 거기에서 장르 b의 속성이 파생된 것이 아닌가? 이런 이야기들을 <비평철학>에서는 좀 더 정교하게 표현해, 존재자 B가 만족하는 속성 x이라는 명제를 B가 x의 외연에 속하는 개체라고 봐야 하는지, B에 우연적으로 존재하게 된 속성 x가 장르 b의 탄생이라는 조건 하에만 존재하게 된 우연적인(필연의 반대말로서) 속성이라고 봐야 하는지를 논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비평철학>을 그 스스로 반박하는듯 싶은데, 비평에 대한 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글은 그러나 비평 대상이 되는 일반적인 비평이 갖는 탁월성-혹은 매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며, 그런데도 그 자체로 꽤나 매력적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비평철학>이 가장 매력적이지 않게 되는 곳은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 법한 당연한 이야기들을, 바로 그 당연함을 무기 삼아 온갖 반례와 반박을 무화하려는 순간들이다. 좋은 비평은 무엇이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글에 대한 비평을 생각해보면 자명한데, 어떤 좋은 글이 있을 때 이 글보다 짧은 글로 그 글의 탁월함을 설명하고만 있다면, 바로 그런 글이야말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글이다. 음악과 미술에 대한 비평이 단순히 탁월함에 대한 '설명'으로도 충분한 이유는, 사실 그것이 작품의 탁월함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되 그 비평가 스스로가 작품을 재료 삼아 하나의 탁월함의 의미를 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엘이 퀼트를 예시로 들듯 탁월함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예술도 존재하겠지만, 사실 그런 작품조차 으레 비평 대상이 될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 적합하다. 수전 손택이 리펜슈탈의 사진집에서 파시즘 미학을 논하는 방식은 그런 맥락에 있으니까.) 그러니, 좋은 비평은 결국 비평 대상의 탁월함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것이 좋은 비평이라면, 비평 자체가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장르로 남을 것이다. (사실 그것도 맞긴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감상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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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고 이 혼종은 실제로 꽤나 좋다. 셰익스피어 연구로 유명한 스티븐 그린블랫은 이 신역사주의 비평의 대표로서 여러 글을 썼는데, 개중 <Hamlet in Purgatory>는 근세 기독교와 연옥의 문제를 중심으로 당대 괴담, 신학자들의 논쟁 등의 텍스트를 재료삼아 <햄릿>을 다루는 동시에, 실제로 이 시대에서 무대에 옮겨지며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신학적 기대와 불안이 반영되어 수정되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햄릿>이 서서히 완성되는 식으로 <햄릿> 정본을 역사화한다. 그린블랫의 여러 책이 번역되었지만 아직도 이 책이 번역되지 않은 게 아쉬운 일이다.


2) 원제는 <On Criticism>으로, 루틀리지 출판사에서 다양한 일상적 주제에 여러 석학이 철학적인 설명을 짧게 간추려 해주는 <Thinking in Action> 시리즈의 일환으로 발매된 책이다. 그러니 비평에 대한 철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한 것이 아닌가 뭐라 하기도 애매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구석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