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과잉인 건지, 의미부여 과다인 건지, 나는 왜 이렇게 유물론이나 구조주의에 대한 적대심이 강할까?


물론, 그러한 주제를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선입견으로 오판하고, 실존주의를 들이미는 것 같은데 눈과 머리보다는 마음이 힘드네


근데 이러는 내 행동, 반발감 자체가 미셸 푸코가 말하는 하나의 구조주의에 갇혀있는, 육성된, 양성된 행태일 것일 수 있다는 게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네


지금 기분은 마치 사람들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고, 똥을 만드는 기계 같다는 환상이 들 정도야


그리고 현실에서도 더더욱이 실존이니 존엄이니 하는 부분들은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고 침묵 또는 힐난의 대상이 되지


난 아무래도 문제가 있나봐 이게 밥을 먹여주는 게 아닌데, 왜 이렇게 사는 거지? 왜 마로니에 뿌리를 의식하는 거지?


지성인도 아닌 내가... 도대체 왜... 당최 이해가 되질 않는구만



구조주의, 정치학을 부정하려는 이 태도 또한 하나의 구조주의가 아닌가라는 의문 때문에 괴롭다.

나는 마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키치를 비난하며, 反키치로서, 키치에 속할 수 밖에 없는 처지를 안다.

이러한 구조주의 사상이 대세임을 인정한 순간, 우리 사회에서 성립되는 관계들은 모두가 피상적이고 의례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난 그것들을 부정한다. 그렇지만 그것들에 대한 존재를 알았고, 그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두렵다.

시선, 상태, 감각, 욕망 등에 대한 훈육 또는 훈련은, 결국 받지 못한 자와 받은 자로 나뉘는 수준에 그친다.

그렇다. 순수란 것은 분간할 수 없는 오만의 영역이고, 결국 인간 사회는 이 이분법적인 형태에 머물 수 밖에 없는 하나의 게임이다.

그렇기에 눈을 마주치는 그 자체로 게임이 시작된다. 그들이 이 게임을 자각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나란 사람은 당최 왜 이 게임에 죄악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이 일관성 없고 시정잡배인 인간이.

그렇지만, 속이라고 판을 깔아주는 상황에서 속이려드는 게 정녕 인간의 존엄에 근접한 행위는 아니지 않은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를 보라.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보라.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유지나 증대를 꿈꾸는 존재이고,

이 모든 일련의 상호 작용, 행위들은 결국 기쁨과 슬픔에 국한됨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세심하고 세밀한 인간 사회는 그 기쁨과 슬픔에 너무나 과중하고 확대된 해석과 감상을 늘어놓는다.

파스칼이 말한 흔들리는 갈대처럼, 한낱 진자운동과 유행에 불과한 머묾에 불과한 이들이 지향을 말한다.

허나, 푸코가 말했듯, 중세부터 설계되고 짜여진 이 판에서 우리는 자율을 안다는 착각과 자각 속에서 숨쉴 뿐이다.

나는 단지 이것이 의문일 뿐이다. 이건 나 같은 모자란 사람도 아는 사실이다. 헌데 현실의 성인들은 어떻게

이러한 가혹한 문제에 직면하였음에도, 멀쩡히, 정상적으로, 사람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삶을 연명할 수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