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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카레르, <적> 읽은 소감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뫼르소와 엠마뉘엘 카레르 <적>의 장클로드 로망.

세상이 바라는대로 연기를 하지 않은 뫼르소.

세상이 바라는대로 연기한 장클로드 로망.


누가 장클로드 로망으로 하여금 그런 각본을 쓸 수 밖에 없도록 하였나? 

그는 누군가 자신의 손을 빌어 쓴 각본에 따라 연기했다. 

하지만 연기는 결국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의지대로 연기를 끝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러한 결말마저도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오히려 그가 살아났다는 것이야말로 각본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몇 주 전이었다.(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쓴 것은 2015년 1월) 

아침 뉴스에서 엽기적인 사건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한 가장이 자기 아내와 아이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하려다 실패했다. 

그는 지방으로 달아나면서 경찰에 가족들의 죽음을 신고했다. 

몇 시간 후 그는 경찰에 잡혔다. 

그가 살고 있던 곳은 서울에서도 가장 비싼 동네였다. (서초동)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던 그는 몇 년 전 실직을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도저히 가족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부모님에게 돈을 받아 가족들에게 월급인 것처럼 가져다 주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었다. 

그는 가족들이 시나리오의 비극적인 결말을 아는 것보다, 그래서 더 비참해질 현실로 돌아오는 것보다 거기에서 그만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제 손으로 죽였다. 

그 역시 자살하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실패했다. 


오전까지 들었던 뉴스는 한 가장의 엽기적인 가족 살해 소식이었다. 

저녁 무렵 그가 잡히고 나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묘하게도 나는 그에게 동정심이 갔다. 

그가 악마적인 엽기 살인마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살인은 그의 손을 빌어 세상의 어떤 악마적인 존재가 저지른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993년 프랑스에서도 똑같은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장클로드 로망이라는 사람은 스위스에서 일하는 국제기구의 연구원 행세를 했다. 

그는 가족들을 속여 왔다. 

주변 사람들 모두 그가 세계보건기구의 잘 나가는 성실한 연구원으로만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돈을 맡겼다. 

그의 특수한 신분을 이용하여 장기적으로 돈을 투자하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그는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수많은 믿음과 우연들이 그로 하여금 또 다른 삶을 연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극본에 조금씩 균열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미세한 균열들이 결국 이 연기를 파국적 결말로 이끌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아니, 처음부터 파국을 맞도록 쓰여진 결말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가족들이 비극적 결말을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연극의 비극적 결말 끝에는 더 비참한 현실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극이 끝나기 전에 가족들은 눈을 감아야 했다. 

그는 부인과 딸과 아들과 부모를 차례로 살해했다. 

그리고 자살을 했다. 

하지만 그의 자살은 실패로 끝났다.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더 파국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형제도가 없는 프랑스에서 그는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모범적인 수감 생활을 했으므로 올해(2015년) 세상으로 나올 것이다. (지금은 2017년이니까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이다)

같은 시점에 서초동의 한 가장은 감옥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서초동의 그 남성)는 이 소설을 보았을까? 

그에게, 그의 변호사에게, 검사에게, 판사에게 이 소설을 건네고 싶다. 

사법적, 사회적 범죄를 가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어떤 '적'을 가려내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볼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