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개인의 대립쌍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둘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파스칼의 문장이 이를 잘 요약해 줍니다. "세계는 나를 포함하지만, 나는 세계를 이해한다" Le monde me comprend, mais je le comprends. 그는 ['이해하다'와 '포함하다'의 뜻을 모두 가진 동사] 'comprendre'를 가지고 말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나를 포함하고 나를 하나의 점으로 사라지게 합니다. 나는 세계에 속하는 하나의 사물입니다. 나는 하나의 신체로 존재합니다. 나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특정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나는 다양한 힘에 복속됩니다. 그러므로 제가 만일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다면, 중력의 법칙 탓에 아래로 떨어지겠지요. 저는 또한 세계를 이해합니다. 달리 말해 저는 세계에 관한 표상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 안에서 제가 차지하는 위치만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가 매우 특이한 사물, 즉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할 때 이런 이중적 실재를 객관성의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죠. 인간은 하나의 사물입니다. 우리는 인간을 계량하고 측정하며 계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성들, 예를 들어 책이 얼마나 있는지, 자동차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것들에 관해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표상을 갖고 있는 데, 이런 사실 자체가 객관성의 일부를 이룹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의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공간에 위치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공간을 바라보게 됩니다. 일단 이렇게만 말해도 양자택일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깨달을 수 있겠죠.
젋은 시절에 저는 운 좋게도 사르트르, 레비-스트로스와 더불어, 그리고 그들에 맞서면서 제 자신의 사유를 구축할 수 있었죠. 사르트르가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주관주의적 위치를 구현한다면, 레비-스트로스는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객관주의적 위치를 구현하고 있죠. 어느 편을 들까요? 어느 한쪽 편만 드는 건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사르트르에 반대하면서 레비-스트로스에 찬성하고, 레비-스트로스에 반대하면서 사르트르에 찬성해야 합니다.
실존 구조 논쟁 얘기 나올 때 누가 누굴 따잇 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쏠리기도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져주는 듯(이라고 생각함)
(책은 <사회학자와 역사학자>)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