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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같았던 설날 연휴가 지나고 어느덧 봄을 앞두고 있다. 2월이 다른 달에 비해 유독 짧은데도 불구하고 지난 달 보다 다양하고 조금 더 많은 책을 읽어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한 달을 보냈다. 이 기세를 이어가 다음 달에도 많은 책을 읽어볼 것을 다짐하며 한달 간 읽었던 책들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원래는 말일에 결산을 했었지만 이날에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하고 이번 달 책은 다 읽은 듯해 조금 더 일찍 결산하는 시간을 가지겠다.

1. 캔터빌의 유령 · 행복한 왕자 (The Canterville Ghost, The Happy Prince and Other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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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식민지 시절 아일랜드 더블린 태생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이자 화려한 언변으로 동시대 사람은 물론 현대인들도 사로잡고 있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 - 1900)의 단편집인 캔터빌의 유령 · 행복한 왕자를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영국의 작가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와일드는 나한텐 특별한 작가다. 한때 내게 있어서 영어는 유용해서 배워야 할 외국어였지만 그렇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꾸역꾸역 배워야만 하는 숙제같은 분야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와일드가 썼던 유일한 장편소설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을 영어 원서로 읽어봤는데, 문장 하나 하나가 아름답고 등장인물들의 대사도 감질 맛이 나서 재밌게 읽었었다. 과장일 수도 있지만 그 책을 통해 마냥 딱딱하기만 했던 영어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어 그 이후로도 많은 영어 원서 책에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을 얻었다. 이만큼 와일드가 내게 특별한 작가라서 그가 썼던 동화도 읽어보고, 희곡도 읽어봤지만 그의 남은 단편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점을 둘러보다 내가 못 읽었던 단편이 수록된 책이 보여서 그 자리에서 값을 치르고 사왔다. 내용을 살펴보니 내가 못읽었던 단편 소설뿐만 아니라 이미 읽었던 동화집도 수록이 되어 있었지만 좋은 작품을 재독해서 나쁠 것도 없었기에 이번 기회에 다 읽어봤다.

거의 3년만에 다시 읽어본 와일드의 동화는 예전에 내가 읽고 느꼈던 전율을 고스란히 전달해주었다. 아이들을 독자로 삼은 동화라 할지라도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형식미와 감수성은 절대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과 비교해 절대 뒤지지도 않고 오히려 더 탁월한 점이 있었다. 비교적 간단한 어휘를 사용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운율까지 느껴지는 문장도 그렇고, 어느 작품이던 간에 3번에 걸쳐 서사가 반복되는 형식을 갖춰서 시적인 동화라는 수식이 잘 어울린다는 감상이 들었다. 오랜만에 와일드표 동화를 읽으면서 가장 눈길이 끌렸던 점은 와일드의 참으로 아이러니한 미학관이 동화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어떤 주제의식이나 도덕적인 교훈을 전달하는 것 보다도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을 중시했던 유미주의자였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아름다움도 포함되어 있다. 가난한 이를 동정하며 자기 몸에 붙어 있는 보석과 금을 떼어 이들에게 나눠주려하는 왕자 동상의 이야기인 행복한 왕자(The Happy Prince), 대관식을 앞두고 입게 될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장신구와 의복이 사실은 누군가를 혹독하게 착취하면서 만들어진 산물을 깨닫고 몸소 초라한 옷을 입고 왕위에 오르려는 어린 왕의 이야기인 젊은 왕 (The Young King)과 원래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녀서 오만하기 그지없고 약자들에게 가혹했던 미소년이 갑자기 두꺼비와 살모사를 닮은 추레한 외모로 변해서 주변 사람들의 괴롭힘을 받으며 지난날을 후회하는 이야기인 별 아이 (The Star-Child)를 읽어보면 작품의 테마가 아름다움을 좇으면서도 동시에 도덕주의적인 가치를 좇기도 하는 아이러니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작가가 생전 공공연한 사회주의자였던 만큼 근대 유럽 사회에 관한 문제의식도 은은하게 녹아들어 있다. 상술하였던 행복한 왕자와 젊은 왕은 환상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지금도 사회에 만연한 빈부격차와 쇼맨십에 환장하는 정치인, 착취의 굴레를 향한 풍자가 담겨 있다. 우정은 모름지기 순수함을 담보로 한 거라면서 말은 번지르르 하게 하지만 실상은 가난한 형편의 친구인 한스를 부려먹기만하는 방앗간 주인 휴의 이야기를 다룬 헌신적인 친구(The Devoted Friend)에서도 문명화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아일랜드를 비롯한 식민지 착취에 여념이 없었던 식민제국 영국을 향한 신랄한 비판이 들어있다. 여러모로 와일드의 동화는 아이가 읽을 때보다 성인이 읽을 때 작품 속의 함의가 더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단편소설들에는 작가 특유의 블랙 코미디적인 작풍이 한층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수록된 단편 중 하나인 아서 새빌 경의 범죄(Lord Arthur Savile's Crime)는 결혼을 앞둔 아서 새빌이라는 인물이 연회에 나갔다가 우연히 손금 점을 보다 미래에 누군가를 살인하게 된다는 예언을 받자 결혼 이후에 살인하게 될 경우 신부에게도 씌워질 불명예를 걱정해 결혼식을 치르기 전 몰래 살인을 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아서 경이 사회적 명예가 실추될 것만을 염려하면서 황당한 예언을 의무로 삼아 악행을 저지르려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한없이 인위적이면서도 시대에 따라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절대적인 규범으로써 사회에 군림하는 도덕관을 향해 아낌없이 조소를 쏟아 붓는다.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단편인 캔터빌의 유령(The Canterville Ghost)는 당대에 유행했던 고딕 소설과 작가 특유의 블랙 코미디를 섞어놓으면서 장르적 혁신을 이뤘다. 본작은 캔터빌 저택에 깃든 귀신이 300년간 저택에 살던 사람들을 겁주면서 쫓아내거나 소스라치게 놀래켜 죽게 만들었지만 새롭게 집에 입주한 미국 공사 일가가 귀신을 겁내기는 커녕 기행을 벌이며 귀신을 골탕먹이며 오히려 귀신이 겁내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자체가 지금 읽어도 꽤나 재밌는 편입니다. 그외에도 짤막하게  수록된 단편도 있다. 비밀 없는 스핑크스(The Sphinx Without a Secret)는 비밀스러움으로 가득한 미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아름다움에는 얄팍한 이유를 들먹이기 보다는 아름다움 자체가 중요하다는 와일드의 미학관이 드러나 있다. 거지꼴로 그림 모델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어마어마한 백만장자인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모범적인 백만장자(The Model Millionaire)에서는 동화에서도 테마로 썼던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토대로 아이러니를 연출한 짤막한 소설이었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을 남기자면, 내 사심이 좀 듬뿍 들어가긴 했지만 와일드의 문장은 언제 읽어도 음미하는 맛이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문장은 아름다우면서도 일견 가벼워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면에 날카로운 의중이 숨어 있는 뼈가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물론 나쁘게 말하면 줏대가 없이 이중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저에게는 이런 아이러니함이 와일드라는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과 동화는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답고 완성도를 갖춘 만큼, 고전 영문학을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저없이 입문작으로 추천을 하고 싶다. 어느 정도 영어에 자신이 있다면 원서로 읽어보는 것을 권장하고,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로 와일드 단편전집을 번역한 캔터빌의 유령이 있으니 그걸로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2.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Parerga und Paralipom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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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독일인 상인들의 터전이였던 폴란드의 무역도시 단치히 태생의 철학자이자 생전에는 철학계의 아웃사이더였지만 현재는 독일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당당히 자리잡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 - 1860)의 철학 에세이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을 읽어봤다. 독서에 관심이 있는 사랍들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지금 한국 출판계에서 가장 핫한 철학자라고 하면 단연 쇼펜하우어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어록을 발췌해서 책을 내는 게 출판계 트렌드라고 볼 수 있는데 나는 2차 가공된 것 보다 실제 원전의 내용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하나인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 - 1955)도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실제로도 소설에서도 그 흔적이 확연히 남아 있다. 마침 쇼펜하우어의 철학 서적이 다른 철학자들의 저작과 비교해서는 훨씬 읽기 쉽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이 책을 읽어봤다.

쇼펜하우어는 잘 알려진대로 염세주의자로서 세상을 바라보았던 철학가였다. 그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형편이 여이치 않은 사람들은 궁핍과 결핍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을 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은 가난에서 오는 고통은 겪지 않겠지만, 곧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삶에서 권태감과 지루함을 느끼며 괴로워하게 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인생이란 고통과 지루함 사이를 오고 가는 시계추에 빗대었다. 이러한 인생관을 바탕으로 그는 행복한 삶을 산다는 건 최고조의 환락을 경험하고자 하는 허무맹랑한 희망을 좇기보다도 구체적이고 현실에 와닿는 고통을 가능한 많이 피하고, 현실에서 간혹 맞닥뜨리는 명랑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향유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앞서 말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저자는 인생을 이루는 세가지 요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인간을 이루는 것으로 건강, 인격, 정신력과 같은 인간에게 내재한 품성이고, 둘째로는 인간이 지닌 것으로 바로 재산과 같은 물질적 소유물이고, 마지막으로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사람이 살면서 가지게 되는 지위, 명예, 명성을 일컫는 개념이다. 그는 행복한 삶을 위해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인간을 이루는 것이라고 피력한다. 작가가 나머지 두가지의 중요성을 절대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사람이 일단 건강해야 삶을 살아가면서 문득 찾아오는 명랑함을 기쁘게 누릴 수 있고, 건강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도 비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또 그는 고통스럽거나 권태로운 삶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인격을 수양하며 정신력을 기르고 정신적으로 향유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보았기에 사람을 이루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여겼다. 정신적으로 향유하지 못하며 내적 가치가 결여된 사람은 삶의 기쁨을 향락과 사치, 남이 가져다 주는 평판과 같은 외적인 요소에서만 찾으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은 언제든 있다 없어질 수 있고, 익숙해지면 권태감을 안겨주는 무상한 것들이다. 그래서 외적인 것이 주는 즐거움 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향락을 좇다 건강과 재산을 잃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남의 시선에 얽매여서 마치 노예와 같은 삶을 살면서 고통받을 수 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 책에는 행복한 삶을 위한 지침 외에도 형이상학, 종교, 우화, 문예, 화술, 동물권, 교육과 같이 다양한 주제에 관한 쇼펜하우어의 단상을 담고 있다.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촌철살인이라고 할만한 저자의 냉철하면서도 깊은 통찰이 잘 드러나는데, 여기 적힌 어록들은 그가 즉흥적으로 떠올린 단편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가 철학자로서 평생을 견지해 온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원제는 소품과 부록인데 바로 쇼펜하우어의 주저이자 역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의 내용을 보충하는 책이라서 그의 철학척 이론을 떼어 놓고 보기는 어렵다. 독일을 넘어 서양 세계를 대표하는 지성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일찍이 우리가 보고 느끼는 사물을 두가지 요소로 나누었다. 하나는 인식을 통해서 인지하는 ‘현상’으로 이는 우리가 오감을 통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딱 감각에 지나지 않는 요소이다. 나머지 하나는 존재에 내재한 ‘사물 자체’로 한 존재 안에 깊숙히 자리잡아 그 존재를 규정해주지만 현상과 달리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인식론에 공감을 표하며 칸트의 계승자를 자처했지만, 여기에다 자신만의 사고를 덧붙여 재해석하였다. 그는 인식할 수 있는 현상의 세계를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표상’이라고 정의하였고, 표상은 끝없이 변화하기에 한없이 무상하다고 주장하였다. 당대 서양 철학자들이 인간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요소로 추앙했던 이성과 지성도 딱 표상으로서만 드러나기에 얼마든지 외적 요소에 휘둘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모든 만물에 ‘사물 자체’로 깃들어 부단히 움직이게 만드는 삶을 향한 ‘의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의지라고 하면 막연히 극기를 통해 얻는 덕목이라고만 볼 수 있지만 쇼펜하우어가 얘기하는 의지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강렬하면서도 맹목적인 충동에 가깝다. 이 의지가 현상의 세계에 들어오면서 드러내는 형태가 바로 생존욕구, 식욕, 성욕이라고 볼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이 의지를 제압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성이 의지에 휘둘리기만 하고, 의지의 수행을 위해 철저히 봉사하기만 한다고 봤다. 그렇지만 매우 드문 사례지만 천재나 성현들은 이성으로 의지를 억제하여 제어 할 줄 알았고, 작가도 의지를 극복하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라고 견지해왔다. 쇼펜하우어의 사고에는 이렇게 탄탄한 이론이 뒷받침되어 있기에, 그의 어록은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확실히 일관성을 갖췄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내 개인적인 감상을 남기자면, 실로 오랜만에 내 정신의 나침반으로 삼을만한 책을 만나게 된 것 같다. 책에는 우리가 흔히 철학하면 막연히 생각나는 고리타분하고 사변적이만한 이론이 아니라 재치 있으면서도 간명한 삶의 지혜가 적혀 있었다. 또 책에 적힌 내용은 간단하지만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 만큼 풍부하고 깊은 사고도 담겨 있었다. 그덕에 저도 페이지를 휘리릭 넘기기 보다는 내용을 반추하고 사유하면서 나름의 정신적 향유를 누렸던 것 같다. 다만 노파심에서 말을 좀 더 보태면 쇼펜하우어도 사람인 만큼 이 책의 내용이 결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흑인을 향한 인종 차별의식과 반유대주의도 그렇고, 저자가 거의 한 챕터를 할애해서 여성혐오적 발언을 쏟아내는데다 철학적으로 이견이 있었던 독일 관념론자 철학자인 피히테, 셸링, 헤겔을 향해 인신공격에 가깝게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대목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고 풍부한 통찰이 담긴 책인만큼 살면서 한 번 정도는 읽어보는 게 좋은 명저라 볼 수 있다. 혹시라도 쇼펜하우어에게 관심이 생긴 사람들이 있다면 쇼펜하우어의 독설가로서의 피상적인 이미지에만 기생하는 요즘의 에세이나 짜집기 어록집을 읽기 보다는 두꺼워도 이 책에 도전해 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3. 감정의 혼란 (Verwirrung der Gefüh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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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 태생의 소설가, 극작가, 언론인이자 단순 유대계였단 이유만으로 나치즘의 광풍이 몰아닥친 고국에서 탄압받으며 망명길에 올라 나중에는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며 객사한 비운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 - 1942)의 중편소설집 감정의 혼란을 읽어봤다. 내가 츠바이크를 처음으로 접했던 작품은 1년 전에 읽었었던 그의 중편소설 체스 이야기(Schachnovelle)와 낯선 여인의 편지(Brief einer Unbekannten)이었다. 이야기 자체는 평이한 편이었지만 작가의 현란한 글솜씨에 매료되어 굉장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읽어볼지 곰곰히 생각하다 그가 생전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 초조한 마음(Ungeduld des Herzens)과 그가 쓴 다른 중편소설들 중 하나를 읽어보는 것으로 후보군을 압축했다. 그렇게 고심하던 내게 해답이라도 주듯 작년에 츠바이크의 중편선 번역본이 새롭게 출간되어서 이번 기회에 이 책을 구해서 한 번 읽어봤다.

이 책에는 츠바이크가 활발히 작가로 활동하면서 출간한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중편소설 4편이 수록되어 있다. 먼저 바람둥이 귀족 남작과 아리따운 부르주아 유대인 부인의 불륜 행각을 부인의 어린 아들 시선에서 지켜보며, 소년의 정신적 성숙을 조명하는 소설인 불타는 비밀(Brennendes Geheimnis)이 있으며, 불륜 로맨스와 독문학 특유의 장르라 볼 수 있는 성장소설(Bildungsroman)의 절묘한 조합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로 수록된 작품이자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인도네시아 정글 오지에 파견되었던 독일인 의사가 자기에게 진료를 받으러 왔던 도도한 영국인 귀부인에게 광기에 가깝도록 집착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아모크 광인(Die Amokläufer)은 정말 정신착란에 빠진 인간의 심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심리묘사에 감탄했었다. 그 다음으로 수록된 작품인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Vierundzwanzig Stunden aus dem Leben einer Frau)은 평탄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던 귀부인이 먼저 사별한 남편과 추억을 회상하러 모나코의 카지노에 왔다가 열광에 젖은 채 생돟하는 감정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한 도박 중독자 청년에게 묘한 이끌림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이 아홉차례에 걸쳐 영화화되었단 점이 증명하듯이 고전 소설답지 않게 로맨틱하면서도 꽤나 재밌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작품인 감정의 혼란(Verwirrung der Gefühle)은 한때 방탕하게 살았던 대학생이 우연히 기묘한 인상의 교수로부터 격정적인 감정으로 들어찬 강의에 큰 감명을 받아 학문을 향한 열정을 느끼게 되고 더 나아가 교수에게도 애정에 가까운 존경을 품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야말로 휘몰아치는 감정 묘사가 일품이었다. 네 작품 모두 소재만 보면 흥미롭긴 하지만 이야기를 뜯어보면 그렇게 특별하진 않고 은근 통속적인 구석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속속들이 묘사하면서도 격렬하게 분출되는 감정을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옮겨놓았다. 평범한 치정극에 그칠 만한 이야기를 천부적인 언어감각으로 매혹적인 작품으로 탈바꿈시킨 걸 보면 츠바이크의 천재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또 네 작품이 각양각색을 뽐내고 있는 가운데 모든 작품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등장인물들의 성애를 향한 충동적이면서도 지독한 집착이다. 츠바이크는 무의식의 영역을 탐구하며 정신분석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열었던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던 사람이었는데 그의 작품에서도 프로이트의 영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프로이트는 인격을 식욕, 성욕과 같은 원초적인 욕망인 리비도(Libido)를 좇는 이드(Es, Id)와 도덕적인 규범과 이상향을 좇는 초자아(Über-Ich),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자아(Ich)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츠바이크의 작품 속에서는 철저히 이성적으로 행동하거나 고결한 이상을 좇는 영웅적인 인물보다는 바로 이 리비도에 휩쓸리는 이드가 두드러지는 인물상에 보다 주목한다. 작품 속에서도 여러번 직접적으로 언급되듯이 그의 작품은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강렬한 욕망과 충동을 탐구하는 데 천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이 책이 최근 읽었던 책들 중에서는 가장 재밌었던 것 같다. 재미가 없다는 인상이 따라붙는 독문학과는 다르게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스토리텔링을 자랑해 재담꾼으로서의 츠바이크의 재능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츠바이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 그가 썼던 다른 장편소설, 에세이, 전기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사적인 재미와 미려한 문장, 깊은 사유까지 놓치지 않은 명작인 만큼 혹시라도 이 책에 관심있는 사람에게는 일독을 적극 권장한다. 또 아직 많은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흔히 독문학 입문용으로 권장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같은 책보다는 이 책을 독문학 입문작으로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4. 야성의 부름 (The Call of the W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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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글렌 엘렌 태생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잭 런던(Jack London, 1876 - 1916)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중편소설 야성의 부름을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한국에서 런던이라는 작가는 그의 작품 보다는 작품 외적인 요소로 유명한데, 그가 1904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을 취재하고자 기자 신분으로 방한을 한 뒤 집필한 회고록에서 인종차별주의에 기반하여 당시 조선인들을 향해 온갖 악담을 쏟아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점 때문에 그의 작품을 읽어보기는 꺼려졌었는데 영문학을 파고들면서 잭 런던이라는 이름이 영문학사에서 한 번씩은 언급되고 있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대표작을 맛이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이 책을 거의 3년 전에 구매를 했었다가 줄곧 책꽂이에만 모셔두었다. 그러다 2월 말을 앞두고 이 책이 적당히 짧으면서도 재밌어서 한 달을 마무리하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봤다.

이 책은 캘리포니아의 부잣집 애완견으로 태어난 대형견인 벅이 어쩌다 도박빚에 쪼들린 하인의 농간으로 썰매견으로 팔려갔지만 야생의 냉엄한 규칙을 빠르게 습득하여 능숙하게 썰매를 끌고 캐나다 유콘과 미국 알래스카를 누비는 모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잭 런던이 미국의 자연주의(Naturalism)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만큼, 이 작품도 허구의 이야기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환경을 고스란히 옮겨내어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작중 주인공인 벅이 얼떨결에 썰매견으로 팔려가게 되는 계기는 1890년대 말 금광을 찾아 무수한 사람들이 알래스카로 몰려 들었던 클론다이크 골드러시라는 시대적 현상에 기반한다. 전대미문의 인파가 오지 한복판으로 우글우글 몰려들면서 이에 따른 운송과 우편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눈밭이었던 유콘과 알래스카를 그나마 용이하게 누빌 수 있는 수단이 썰매 밖에 없다보니 썰매견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올라가게 되고 주인공이 겪게 되는 생고생의 밑바탕이 된다. 골드러쉬 속에서 모여든 사람들 중에서도 능숙한 썰매꾼에서 금광의 미혹에 빠져 어설프게 준비한 얼치기까지 다양한 성격의 인물상도 길지 않은 이야기에 빠짐없이 묘사된다. 또 작가가 캐나다 유콘의 별장을 얻어 지낸 적이 있었다보니 동토의 땅인 알래스카와 유콘의 자연환경도 상당히 실감나게 작품 속에서 구현되어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백야와 극야 현상, 황량한 겨울의 풍광 뿐만 아니라 해빙기에는 약동하는 생명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자연을 세밀하게 옮겨내어서, 분명 제 눈으로는 활자만 보고 있는데도 눈이 즐겁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 작품의 디테일은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상술하였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개다. 원래는 인간들에게 길들여진 개였던 벅이 얼떨결에 혹독한 환경에 떨어졌지만 작중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빠르게 습득하여 야생에 적응하고 살아가면서, 아주 먼 옛날 개의 조상격이 되는 진화 전 늑대의 야성을 회복하여 퇴화아닌 퇴화를 한다는 것이 본작의 핵심 스토리라인이다. 이 서사 자체에서 런던이 작가로서 한창 활발히 활동하던 1900년대 초 본격적으로 학술적인 논의가 이뤄지던 진화론의 영향이 많이 느껴졌다. 단순히 동물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기만 하였다면 이야기가 조금 지루해졌을 수도 있었다. 능숙한 이야기꾼인 런던은 그런 우를 범하진 않았는데, 주인공이 가혹한 환경을 버티면서 생존의 의미에 대해서 재고하고, 자신이 애완동물인지 야생동물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하고, 야생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깨우치는 사냥꾼으로서의 본능과 자유를 향한 갈망까지 동물의 심경을 건조하면서도 자세한 필치로 그려내었다. 그렇다고 인간이 생각하는 수준이 아니라 딱 동물이 살아가면서 피부로 느끼는 수준으로 완급조절이 되어 있다보니 핍진성까지 챙겼다. 그덕에 다른 리얼리즘이나 자연주의 작품과는 차별화되는 개성을 본작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앞서 이야기하엿듯이 작가의 외적 논란 때문에 나는 꽤 심드렁한 기분으로 이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러나 책장을 계속 넘길수록 작가가 내뱉은 망언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 자체의 재미와 완성도에 감탄하며 이 책에 푹 빠졌던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에 런던이 썼던 다른 작품도 나중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용 자체가 어렵지도 않고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기회가 된다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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