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천주교인 입장에서 꽤 거슬렸음. 단순히 성직자나 교회를 비판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이 아니라, 교리를 서술 내부에 배치하는 방식 자체가 불편했음. 특히 교리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작품 속에서 특정 정서 부분만 부분적으로 가져오거나 축소된 교리 인용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작동할 가능성이 있어보임. 다시 말해서 잘 썼기 때문에 부적절함이 더 강조됐음.
자전적 소설도 쓸 때는 일반적인 소설처럼 이미 선택된 결론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그건 정말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선악에 갈등하는 장면에서 악으로 흔들리는 묘사에 비해 선으로 흔들리는 묘사가 상대적으로 옅음. 이미 화자의 마음이 그 부분에서 선이 요구하는 응답 가능성에서 이탈해서 그런 식으로 그려진 것 같음. 균형의 실패라기보다, 이미 화자의 인식이 그 쪽으로 이탈한 상태에서 서술이 조직되어 있기 때문임.
그래서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천주교인 입장에서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설임. 성직자를 나쁘게 묘사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교리의 뜻을 일부러 불결하거나, 조소적인 맥락 속에 재배치한다는 점이 위험해보였음. 아마 조이스는 이것까지 의도했을 수도 있고 심지어 가능성이 높음. 그의 미학에서는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성스러운 것과 비속한 것이 예술 앞에서 윤리적으로 큰 차이를 갖지 않기 때문임.
소설에서, 특히 모더니즘 소설에서 서술의 배치는 서술만큼이나 중요한데, 젊예초는 서술의 배치가 교리를 공격하니 서술 전략 차원에서 충분히 이단적인 소설이라고 보여졌음. 무엇보다 성직자가 되기를 거부하기 이전에도 가끔씩 주인공은 교리를 믿지 않음. 초반에도 그러한데, 독자가 교리를 모르면 눈치채기 힘들게끔 교묘하게 써놓았음.
내 글을 눈팅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항상 소설을 볼 때 문체를 중요하게 여김. 나보다 문체충인 사람은 별로 없는 거 같음.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다양한 문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독서에서 꽤 중요하다고 생각함. 동시에 문체에 확고한 취향이 있는 편은 아니라서, 난잡하게 생각나는 대로 쓰인 글이 아니라 무언가를 선택하고 다른 것을 배제한 흔적만 분명히 보이면 대체로 좋아함. 그래서 베케트를 과하게 빨면서 동시에 일본 유미주의 작가들을 좋아하는 거 같음.
예를 들어 만연체는 물론 호흡을 잘 설계해서 최대한 가독성을 높이겠지만 그럼에도 대부분 단문보다 가독성이 떨어짐. 글에서 주의를 이동시키는 건 동사인데, 문장이 짧을 수록 동사의 힘이 강해지기 때문임. 어떤 작가들은 과도한 만연체를 사용하는데 그 이유가 눈에 보이면 좋은 문체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수식문의 주의의 미세조정, 지각의 흔들림 등등 만연체를 사용한 이유를 계속해서 찾아다니게 됨. 내가 매력을 느끼는 글의 기준이 이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와 비슷함. 그래서 나는 독서를 할 때 항상 글의 내용보다 문체를 먼저 보는 편인데, 물론 이게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음. 그냥 내 취향이 그런 것일 뿐임. 사실 편협한 독서 방법이긴 함.
조이스는 그런 내 취향에 매우 잘 맞았음. 3인칭에다가 독백이 아닌 부분에서도 마치 1인칭처럼 느껴지는 특이한 문체를 읽다보면, 분명 글을 읽고 있는데 내가 화자가 되서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듬. 더블린 사람들에서도 느낀 건데, 조이스는 문장의 인식을 닫기를 두려워하지 않음. 이렇게 생각한다고 그냥 던지는 작가에 가까움. 다만 그럼에도 해석 가능성은 계속해서 열어두고 민감하게 관리함. (몇몇 부분과 후반 미학 파트 제외)다른 작가들도 그런 작가가 많긴 한데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조이스의 글에서 그런 점이 두드러져 보임. (기술적으로 열린 문체는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에 효율적으로 작용하는데, 그런 개쩌는 문체로 신을 예술 아래에 두는 글을 쓰는 조이스)
젊예초는 그런 점은 비슷하지만 더블린 사람들의 문체와 꽤나 다르다고 느꼈음. 뭔가 화자의 지능 수준이 느껴짐. 주인공이 나이가 들 수록 문체 또한 나이를 먹는 느낌이 들었음. 초반부에서는 나도 함께 애기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기분이었고, 그 이후로도 몇몇 순간들은 섹스가 따로 없었음. 어떻게 그렇게 쓴 건지는 모르겠음. 글에서 주의의 미세한 이동을 의식 수준에서 미세하게 파악하고, 그걸 쓴 것 같긴 한데, 그건 모든 작가가 하는 일이라 결국 조이스 글쓰기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없음. 또한 여러가지 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는데, 그것이 유의미한 사후 분석이라 확신할 수 없음.
뭐, 일개 독갤 똥글싸개가 어찌 대문호의 작업에 접근할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재밌다고 생각함. 이 정도로 매력적인 문체를 앞에 두고 그 원리를 유추해보려는 시도를 누가 참을 수 있을까.
근데 솔직히 극후반 미학 파트는 뭘 의도했는진 알겠는데 내 취향은 아녔음. 그 구간에서는 인식이 아니라 개념이 주도권을 가져서 소설 같지가 않음. 그래도 잘 만들어진 작품인 건 확실한듯….
- dc official App
나듀 3부 에피파니부분은 좋았는데 그 이후로는 사족같더라
님 입장에선 당연한 교리의 말씀이 조이스의 세계관에서는 그렇지 않을 뿐인데 이걸 불결하다고 할 것 까지야; 천주교인으로써 불편하다는 말은 그닥 공감이 안되네
싯다르타가 불교로 욕먹는거랑 비슷하다고 보셈 제가 종교충이라… - dc App
갠적으로 4부에서 단테 천국편 장미의 낭만주의가진하게 나오다가 5부 시작하자마 바로 진짜 지저분한 뒷골목 내팽겨 치는 거가 최고의 지적 서스펜스였음ㅇㅇ
각 장 마지막마다 쌌음 - dc App
율리시스 읽으라고!!!!!!
ㅌㅌㅌㅌ - dc App
@책은도끼다 안돼 ㅅㅂ 볼게요 - dc App
ㅁㅈ 율리시스에서 스티븐이 어떻게 되는지 봐줘야지
프루스트나 라슬로의 만연체는 어떻게 생각함?
좆된다고 생각함 - dc App
명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