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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는 평생 지식을 탐구했지만 결국 허무했다.
그래서 더 큰 충만을 찾아 쾌락과 권력을 좇는다.
하지만 그 끝은 만족이 아니라 또 다른 갈증이다.
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통달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고,
최고의 권력을 누렸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파우스트를 통해
괴테는 인간이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비록 나는 파우스트만큼의 욕망을 성취해본 적은 없지만
항상 “더”를 갈망하며 허무 속을 떠도는 내 모습은
마치 현실 속의 파우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무언가를 얻어도 그 만족은 오래 가지 않고,
곧 다음 목표, 다음 자극, 다음 성취를 바라본다.
내 인생은 끝없는 ‘다음 편 예고’ 같다.
괴테는 삶의 의미가 지식이나 쾌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부딪히며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음을 강조한다.
늘 과정을 미루고 결과만 바라보는 내 입장에서는,
그 말이 뜨끔하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왔다.
솔직히 현실 속 부딪힘은 피곤하다. 이상은 멋있지만,
아침 출근길만으로도 인생의 의욕이 절반쯤 사라진다.
괴테가 말하는 ‘현실 속 충만’은 때로 이상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남았다.
“충만은 언젠가 올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곧 내 삶의 의미라는 사실이다.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
소설 속 천사들의 말처럼,
갈망하며 애쓰는 자가 구.원 받는다.
갈망하는 자가 아니다.
고도를 향해 내가 나아가야지,
고도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거창한 구.원도, 악마와의 계약도 필요 없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내 인생의 유일한 무대다.
물론 지금도, 나는 여전히 파우스트처럼
더 큰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 재산, 지식, 명예, 권력...
끝없는 욕심이다. 책을 덮고 다짐해도,
현실로 돌아오면 또 허무해지고, 다시 “다음”을 찾아 헤맨다.
어쩌면 나는 평생 파우스트일지도 모른다.
악마와 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욕망에 묶여 살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나도 모르게 계약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파우스트가 보여주듯, 인간은 끝없는 욕망 속에서도
선택과 책임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괴테의 말처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고,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심판" 받는 것이 아닌
"구.원" 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이다.
“더”를 바라되, 그 “더”를 쫓는 과정 속에서
나의 삶과 도덕을 놓치지 않는 것.
욕망과 책임이 함께할 때,
비로소 나는 파우스트처럼 살아가면서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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