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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는 집에 들여놓은건 제작년쯤 시공사 블프 행사가있을때였는데 도저히 읽을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무려 1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고전 소설을 대체 언제쯤 읽을까? 당장 대학교 고학년 신분으로 취준이든 뭐든 졸업후 인생의 방향을 진지하게 정해야만 하는 나에게 당연히 그런 질문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그렇게 책장에 묵혀두고만 있었다.
그러다 작년 초, 일년넘게 준비하던 전문직시험을 결국 포기하고 인간관계, 건강이 전부 한꺼번에 망가진 나는, 어찌보면 아무 목표없이 회피형으로 살았던 것에 대한 예정된 업보를 제대로 맞고 정신과에서 adhd와 우울증 진단을 받게되었음. 도저히 마음을 잡지 못한 채 이래저래 휴학했던 학교도 도저히 복학할 상태가 아니라 집에 시체처럼 늘어져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 어느날 방에 똑같이 밥먹고 우울증 약먹고 누워서 뭘 하며 또 하루를 넘겨야하나 하고있을때, 문득 책장에 꽂혀있는 돈키호테가 눈에 들어와서, 그날따라 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도 그냥 홧김에 그 책을 꺼내들고는 가방에 챙겨넣고 바로 잠옷을 갈아입고 스터디카페로 가서 책상에 올려놓고 펼쳤음.
앞에 온갖 추천사나 서문이 버거운 문턱처럼 느껴져서 그냥 바로 본문으로 넘어가서 1장 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때가 작년 6월 초. 스터디카페에는 편한 옷차림으로 주로 고시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이에서 혼자 벽돌같은 돈키호테 책을 집어들고 다니면서 읽는 건 좀 소소하게 특별하다 생각했다. 여하튼 그런 고전을 읽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스스로 유별나보이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 아닐까.
한가지 스스로에게 약속한건, 절대 눈으로 훑듯이 지나가지 말자고 다짐했었음. 난 책을 읽을 때 문장을 읽어도 맥락과 의미를 못 얻어내고 그냥 단어의 나열로 인식할 때가 많았는데, 그래서 이 돈키호테 만큼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나 맥락을 다 이해 못하더라도 그냥 넘어가지 말고, 최소한 읽기 전과 후 스스로 그것을 ‘소화했다’라고 느낄 만큼을 독서의 기준으로 삼았음.
난 책을 절대 하루에 많이 못읽어서, 정말 잘 읽히는 날에는 최대 50페이지정도였고, 어쩔때는 3페이지만 읽을 때도 많았다. 한 장을 막힘없이 읽을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해서 각 장의 대목대목을 끊어서 읽을때가 많았음. 인물의 긴대화가 끝나거나, 장소가 달라지거나, 인물이 방에 들어오거나, 시간대가 달라지는 등…장 내에서 글이 이렇게 세분되는 구간을 정해서 끊어 읽었음.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소화해가며 긴 글을 읽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유독 안 읽힌다싶으면 한번훑으면서 구간을 스스로 정하고 연습장에 구간을 미리 다 옮겨적었음.
그리고 그 구간을 읽고, 스스로 소화된 느낌이 들면 동그라미를 검은색으로 칠하며 읽음. 이런 식으로 끝까지 읽어나감. 가끔 내용이 머리에 안들어오면 정리하기도하고.
1권은 다 읽는데 81일이 걸림. 6월초에 시작해서 8월 말에 막장을 덮었음. 2권은 다 읽는데 180일 걸림. 무려 반년. 하루종일 붙잡고 있지는 않고 다른 것들도 했다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일과에 돈키호테 읽기에 중요성을 꽤 부여했던 걸 감안하면 정말 느려터진 속도. 스스로 소화해냈다는 생각이 안들면 다시 장의 첫페이지로 돌아가서 여러번 읽을 때도 많았고, 중간중간 고비가와서 길면 몇주간 책을 안 펼칠때도 있었음. 그래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읽어나갔음. 다행히 돈키호테가 내용이 어렵지 않은 편이고, 모험을 다니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의 나열느낌이라 아예 놓지만 않는다면 다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돈키호테 1권은 시골 마을의 한 노인 귀족이 기사도 책을 읽고 정신이 이상해져서 실제로 모험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 모험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액자식 소설의 형식으로 중간중간 배치되어있어서 전체적으로 옴니버스 형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권은 1권에서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돈키호테와 산초가 다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긴데, 이렇게 보면 그냥 1편이랑 똑같은 컨셉아닌가 싶지만, 전혀 다른 플롯과 주제라는 걸 다 읽고 체감할수 있었다. 2권을 읽으면서 정말 후세대의 소설들이 하고있는 것들을 이미 옜날에 돈키호테에서 세르반테스가 다해놨다는 말을 체감하게됨. 실제로 내가 있었던 소설중에서 가장 오래전에 쓰여진 책인데도 가장 독특하다 생각한게 돈키호테 2권이었음.
고비가 꽤나 많이 왔었는데, 가장 크고 험난한 고비는 역시 1권의 포로썰이었음. 작가 본인의 5년간의 포로생활을 반영해서 그런지 확실히 압도적으로 정보가 세밀했고, 지금의 내가 잘 모르는 그 당시 스페인의 역사적 배경, 종교적 관계, 다른 국가와의 상황이 다른 에피소드보다 더 깊게 다뤄져서, 이 에피소드를 읽을 때 가장 지쳤던거같음. 1권의 후반부에 있어서 망정이지 초반에 있었으면 돈키호테 읽는 걸 때려쳤을수도.
아 정말 그냥 넘기고 싶다는 생각. 어짜피 에피소드라 전체 서사엔 별 영향없을테니 넘겨도 돼지않을까, 그런 유혹의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지만 스스로의 약속을 계속 상기하며 꾸역꾸역 읽었음.
그래서 이 포로썰만큼은 이렇게 정리하면서 읽음. 종교, 지역, 타임라인, 탈출작전할때 각 인물들의 주장의 근거 등등.. 국어 비문학 공부도 이렇게 정성들여 하진 않았던거같은데…ㅎ
챗지피티의 도움을 이때 많이 받았음. 저놈의 ‘개종자’라는 게 무어인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건지 그리스도교에서 무어인으로 개종한건지 헷갈리고 배경지식도 없는지라 그런 것들을 이해하는데 요긴하게 써먹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를 꼽으라하면, 역시 최고는 2권에서 산초판사의 바라타리아 섬 총독 통치 장면을 꼽고 싶음. 그중에서도 정점은 교수형을 당하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 남자의 딜레마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장면이라 생각함. 완전히 팽팽하게 대립하는 모순을 돈키호테의 충고대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는 쪽’을 선택하며 판결하는 산초를 보면서 2차원으로 복잡한 퍼즐을 3차원에서 올려다보면서 쉽게 해결하는 어떤 통달한 현자의 모습을 본거같았다. 그 판결을 끝으로 총독직을 내려놓으며 산초가 섬의 사람들과 포옹하는 장면은 나도 그 사람들 사이에서 산초를 배웅하고 있다싶을만큼 뭉클했었음.
산초판사와 돈키호테가 나누는 셀수없는 대화, 혹은 다른 주변인물들의 대사에서 지금 내가 처해진 상황에 맞닿아있어 위로를 받을 때가 몇번 있었는데,
몇가지 꼽아보자면,
*용감한 기사여, 너무 억울해하지도 마시고 지금의 처지를 불운이라 여기지도 마십시오. 이 과오 속에서 그대의 비틀린 운명이 곧게 펴질 수도 있으니 말이오. 하늘은 인간이 한 번도 상상해본 일이 없고 본 적도 없는 이상한 우여곡절을 통해 넘어진 자를 일으키고 가난한 자를 부자로 만들지요.
*아름다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혼의 아름다움이고 또 하나는 육체의 아름다움이지.
영혼의 아름다움은 지성과 정결함, 훌륭한 행동, 관대함, 좋은 예절을 보여주고 또 드러내는데, 이 모든 요소들은 못생긴 남자들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보통은 육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런 영혼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돌릴 때, 격렬하고 바람직한 사랑이 싹 트는 것이지.
산초야, 내가 잘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 흉할 만큼 못생기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영혼의 아름다움만 갖고 있다면, 선한 사람은 괴물만 아니면 사랑받기엔 충분한 것이야.
*다른 사람의 팔에 수난을 당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승리를 하여 돌아왔도다. 그분이 해주신 말씀에 따르면, 자기 자신에게 승리한 것이야말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승리라네. 많은 매질을 당하고도 당당했기에 나는 돈을 벌어왔네.
와; 이거 보니까 불타오르네 고생 많이 했음 챗지피티 활용하니까 내용 훨씬 풍성하네 나도 돈키호테 미루고 있었는데 질러야겠다
나도 도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