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아룁니다.
노리즈키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 전에 편지의 본보기를 찾고자 『밀폐교실』의 '코다(결말)'를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처음 『밀폐교실』을 읽은 것은 고단샤의 '신장판'이었습니다만, 마지막 편지의 의미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무척 애달프다고만 느꼈습니다. 그 후 가타야마 다이치 선생님의 평론을 읽고, 고단샤 BOX의 '노컷판'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편지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애 어드벤처 게임 「White Album 2」의 코다와 토우마 카즈사라는 캐릭터의 설정도 절대적으로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1988년 11월생입니다. 노리즈키 선생님께서 『밀폐교실』로 데뷔하신 지 한 달 뒤입니다. 우연입니다만, 처음으로 일본 출판물에서 저를 언급해 주신 선배 작가님도 노리즈키 선생님이십니다. 『2017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 수록된 '본격 미스터리 작가 클럽 소식'에 제가 제16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토크쇼와 사인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2016년 6월의 일입니다. 그때 저는 두 번째 장편인 『눈이 흴 때, 오직 그때에만(当且当雪是白的)』(하야카와 쇼보 간행 예정)을 집필하고 있었습니다. 이 학원 미스터리 장편은 '신본격' 30주년에 바치기 위해 쓴 작품입니다.
그 소설이 이듬해 4월에 출간되었습니다. 프1로모션을 위해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미스터리 팬의 청춘──「신본격」의 초기 작풍'이라는 강연회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강연회에서 저는 제 나름대로 『십각관의 살인』, 『긴 집의 살인』, 『밀폐교실』, 『월광 게임 Y의 비극 '88』, 『8의 살인』, 『살인 희극의 13인』 등 선배님들의 데뷔작을 논하며 '신본격'의 초기 작풍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작품군에는 네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주인공이 미스터리 팬이다.
* 추리 대결이나 다중 해결이 있다.
* 어느 정도의 반(反)리얼리즘.
* 명작에 대한 오마주.
그리고 중국의 본격 미스터리 신간과 비교해 보면 비슷한 경향이 꽤 있다고 느낍니다. 제 데뷔작 『원년 봄의 제사(元年春之祭)』는 고대 중국을 무대로 한 괴작입니다만, '신본격' 초기의 작풍이 강렬하게 피어오른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우리 중국의 후배들은 일본의 선배님들이 걸었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의 선배님들도, 갓 데뷔한 저희들도 처음에는 소설가의 입장이 아니라 한 명의 미스터리 팬으로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런 본격 미스터리를 향한 열정으로 쓴 작품은 같은 열정을 가진 독자라면 절대적으로 공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도 다수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신본격 배싱(비난)' 같은 목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중국의 본격 미스터리 작가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중국 이야기 같지 않다'는 이유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중국은 넓은 나라이고 도시와 지방의 격차도 큽니다. 애초에 모든 독자가 인정할 수 있는 리얼리티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죄송하지만, 불합리한 비난도 꽤 있습니다. 특히, 아마 라이트 노벨을 단 한 권도 읽어본 적 없을 사람에게 "라노벨 같은 문장은 최악"이라는 말을 들을 때나, 아마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 없을 사람에게 "이야기의 무대가 일본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네, 정말 싫어"라는 말을 들을 때는 역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중국의 독자들은 영미권이나 일본 미스터리의 반(反)리얼리즘은 쉽게 용인하면서도, 중국 작가가 쓴 작품에는 엄격합니다. 특히 제 작품에 유독 엄격한 기분이 듭니다. 아마 제 반리얼리즘이 어중간해서, 현실적인 묘사를 잔뜩 쓰면서도 약간의 반리얼리즘적인 내용도 섞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 점이 가장 큰 위화감을 주겠지요. 만약 처음부터 리얼리티를 포기하거나, 아예 리얼리티를 고집했다면 괜찮았을 것입니다. 어중간한 것이 가장 안 좋을지도 모릅니다.
제멋대로 괴로움을 털어놓아 죄송합니다. 물론 모든 독자에게 이해받고 칭찬받는 등, 불가능한 것을 조르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중국에는 미스터리 평론가라는 직업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터넷에 올라오는 평론 중에는 수준 높은 것도 있고, 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학생들도 독서회를 하며 평론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과 비교하면 중국의 미스터리 평론은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며,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 평론을 씁니다. 친구 신간의 해설이라든가, 해외 작가 작품의 소개라든가, 의뢰가 들어오면 씁니다. 언젠가 노리즈키 선생님처럼 평론가로서의 얼굴도 가진 미스터리 작가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제가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신본격'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다른 동세대 본격 미스터리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중국에서는 본격 미스터리만 써서는 팔리지 않아 먹고살 수 없는 상황입니다. 동세대 소설가들은 모두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솔직히 헤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른 장르를 쓰게 되더라도 본격 미스터리는 계속 쓸 것입니다. 물론 미스터리 평론도 계속 쓰겠습니다.
그리고 노리즈키 선생님은 『녹스 머신』 등 SF 소설도 쓰신 적이 있는데, 저도 최근 어떻게든 참여하고 싶은 SF 소설 기획이 있습니다. 아직 경험은 없지만 한번 도전해 보려 합니다.
노리즈키 선생님의 신작을 언제나 고대하고 있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를 무척 좋아해서, 저와 같은 이름의 고뇌하는 탐정역 '루추차(陸秋槎)'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몇 편의 단편에 등장시킨 적이 있는데, 내년에 묶어서 단편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서두의 단편은 노리즈키 선생님의 '초기 퀸론'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총총.
루추차 올림
노리즈키 린타로 선생님
프로필
루추차 (陸秋槎)
1988년 중국 베이징 출생. 푸단대학 고적연구소 재학 중인 2014년에 단편 미스터리 「전주곡」을 발표하여, 제2회 화문추리대상(華文推理大奨賽)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 2016년에 『원년 봄의 제사(元年春之祭)』로 장편 데뷔.
삼가 답장 올립니다.
마음이 담긴 편지,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2016년 6월, 야에스 북센터 도쿄 본점 사인회에서 『원년 봄의 제사』 원서를 받았을 때의 일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격 미스터리 작가 클럽 소식'에서는 루 작가님을 '중국 미스터리의 준재'라고 소개해 놓고서, 모처럼 수중에 책이 있는데도 중국어를 읽지 못하는 제 자신이 한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나, 드디어 일본어판 완독 보고와 감사의 인사를 전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원년 봄의 제사』가 '하야카와 미스터리 창간 65주년 기념 작품'으로 출간된 것은 쾌거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 '신본격' 작가들에게도 수많은 해외 본격 명작들과 친숙해진 마음의 고향 같은 레이블이기에, 그곳에 이름을 올린 루 작가님에게 부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돌이켜보면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폴 알테르의 『제4의 문』이 번역된 곳도 '하야카와 미스터리'였습니다. '본격 미스터리 신작은 이제 일본에서밖에 쓰이지 않는다'라는 고정관념을 뒤집은 대사건이라, '우리는 고독하지 않다'며 든든하게 느꼈더랬습니다. 한동안 번역이 멈춰 있던 알테르의 장편이 올해 싱저우 문화(『원년 봄의 제사』 원서 띠지에 추천 코멘트를 쓴 장저우 씨가 설립한 출판사)에서 새롭게 번역 출간된 것도 신기한 싱크로니시티(공시성)처럼 느껴집니다.
각1설하고, 『원년 봄의 제사』를 읽으며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가사이 기요시 씨의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와의 유사성이었습니다. 위링아오와 관루신의 관계는 가케루와 나디아 모가르의 전생 같기도 하고, 종반의 사상적 대화는 『바이바이, 엔젤』, 『서머 아포칼립스』를 연상시킵니다. 가나자와에 거주하시는 루 작가님과 파리 체류 중에 본격 미스터리를 쓰기 시작한 가사이 씨를 겹쳐 보는 것은 집필 시기적으로 어긋나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원년 봄의 제사』 속 소녀들의 수난과 방축('자립'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도 가혹하고 참혹한)에는 가케루 시리즈의 여성들이 직면하는 운명과 통하는 비극성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놀랐던 것은, 루 작가님의 '고대 중국을 무대로 한 괴작'이 넓은 의미에서의 '이세계(異世界) 본격'이며, 이 무대가 아니면 성립할 수 없는 범행 동기를 그리기 위해 특수한 세계관 구축에 온 힘을 쏟은 작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특수한 세계관'이란 우리 현대 일본인 독자 입장에서 본 것으로, SF적인 특수 룰 설정과는 다르지만, 마치 그런 것처럼 읽어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놀라움을 느낀 것은, 루 작가님의 작풍이 단순한 '신본격'의 모방이나 에피고넨(아류)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것은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신본격' 이후 일본의 현대 본격은 갈라파고스적인 진화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 특히 금세기 들어 나타난 '이세계(특수 설정) 본격'의 유행은 그러한 막다른 골목의 극치가 아닐까 하는 위구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갈라파고스화를 거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바다 건너에서 온 '고대 중국을 무대로 한 괴작'의 진가를 읽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기묘한 비유가 되겠습니다만, '신본격' 30년의 궤적이 클라인의 병처럼 뒤집혀서, 닫힌 내부와 열린 외부를 잇는 통로를 찾아낸 듯한 느낌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번역이라는 필터를 거친 후의 감상이라 본국 독자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새삼 그 시차(視差)를 강조해 두고 싶습니다.
편지 내용 중 흥미로웠던 것은, 중국에서도 '신본격 배싱(비난)' 같은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적어주신 부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는 독자의 세대교체가 진행된 결과, '신본격 배싱'의 기억 자체가 잊혀가고 있으며, 자칫하면 '노해(老害, 꼰대)' 작가의 피해망상으로 취급받는 일조차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이나 시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도 동일한 비판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그곳에 공통적인 네거티브 사고 패턴이 존재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에서의 반응을 통해 '신본격 배싱'의 정체를 재검토할 수 있고, 루 작가님 등도 '신본격'이 걸어온 길에서 비판에 대처할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곤 해도, 본격 미스터리에 있어서 리얼리티의 문제는 어렵습니다. 어중간한 반리얼리즘이 안 되느냐 하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현대 본격 씬에서도 작중 리얼리티의 수준이 복수화되어 패치워크 같은 양상을 띠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그러한 복수화·다층화가 논리나 페어플레이, 혹은 진상의 일의화(一義化) 같은 고전적인 본격 룰에 저촉됨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보기엔, 현대 본격의 프런티어는 그러한 어중간함, 불투명하고 얼룩진 이야기 세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길어 올리려 하는 듯 보입니다.
어중간함의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면, 순수한 퀴즈나 퍼즐이 아니라 왜 굳이 수백 페이지나 할애하여 소설을 쓸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물음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초기의 '신본격'이 그랬듯, 본격 미스터리가 '청춘'을 그리려 할 때는 (아마도 이중의 의미에서) 어중간함을 감수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야기가 그것을 요구한다면, 어중간하다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포스트 트루스(탈진실) 시대에는 오히려 그러한 어중간함 쪽이 더 '리얼'할지도 모릅니다──유동화하는 세계 속에서, 논리나 페어플레이 같은 종래의 본격 미스터리 조건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형태의 룰이 필요한가 하는 물음을 놓아버려서는 안 되겠지만요.
물론 이러한 물음은 그리 쉽게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미스터리 평론은 일본에서도 결코 좋은 상황에 있지 않습니다. 출판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점점 축소되고 있는 것이 실상입니다. 평론에 관해서는 눈앞의 공로에 조급해하지 말고, 끈기 있게 느긋하게 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경계의 마음도 담아서). 루 작가님도 아시다시피, 뛰어난 미스터리 평론은 세월이 흘러도 신선한 매력을 잃지 않는 법입니다. 센가이 아키유키 씨가 「끝나지 않는 전언 게임──고딕 미스터리의 계보」로 소겐 추리 평론상을 수상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사반세기 이상 전의 일입니다만, 그곳에서 제창된 '전언 게임'이라는 말의 무게를 지금만큼 실감할 수 있는 시대도 없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지금으로부터 30년 후, 루 작가님으로부터 미래의 후배 작가에게 이 왕복 서간과 같은 자리에서 '전언 게임'의 바통이 건네지기를.
답장이라는 이름뿐, 길게 제멋대로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말았습니다. 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본격 미스터리의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지요. 학원 미스터리 『눈이 흴 때, 오직 그때에만』은 물론이고, 명탐정 '루추차'가 등장하는 단편집이 묶여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삼가 답합니다.
노리즈키 린타로
루추차 님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