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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전락의 줄거리는 간단히 설명해서 정의감과 선의로 살아오던 변호사가
파리 예술의 다리에서 투신한 여인을 목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했던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면서부터
무너지는 과정을 주점에서 만난 사람에게 고백하는 내용임
보통은 어떤 뜻을 내포하는지 해석하는 데에 집중하겠지만, 전락은 뭔가 자기 고백 같은 측면에서 감상을 남기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또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글을 남겨봄
일기 형식으로 쓴 독후감을 그대로 따온 거라서 말투가 좀 거북할 수 있음 양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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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부터 나를 괴롭혀왔던 하나의 주제를 꼽자면 그건 아마 위선이었을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여 뒤늦게 자각하기 시작한 이 문제는,
내게 선의라는 것이 존엄의 태도로 존재하는 문제인지, 생존방식으로써 존재하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당면할 때에면 정신병과 비슷한 듯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는 타인의 조소이다. 실제로 남들은 전혀 그것에 대해 비아냥 거리지 않고 있으나,
자승자박하여 나를 심문하고 나를 못살게 군다.
어떤 심도 깊은 고민을 거친 것은 아니고, 이십대 후반에 들어서 자연스레 결정을 내린 것 같다.
내게는 남에게 오지랖을 부리고, 알려주고 싶은, 자기 만족의 욕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말이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타인의 조소로 인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냉소하고 도망쳐왔던 과거의 무수한 나날들을
청산하기로 결심했다. ‘그래. 너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것이다.’
‘개별 사건으로 일관을 보아서는 안 된다. 일관이란 더 나아지려는 삶 전체에 대한 태도와 성질이다.’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대목에서 내게 추천된 책이 바로 카뮈의 전락이다. 양심, 죄의식 속에서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상 깊었던 문단과 함께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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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을 접하는 많은 이들이 클로망스의 고백을 어떻게 느낄지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전락을 읽으며, 정말 많은 부분에 있어 나와 닮은 주인공을 보았다고 공감을 느꼈다.
이미 밝힌 것처럼, 나는 나의 선의, 나의 양보, 나의 희생에서 희열을 느낀다.
이러한 마음, 이러한 행동이 순수한 선의의 마음에서 기인한 것인지, 교육에 의한 수동적 행태인지, 인정욕인지,
우위에 서려는 행태인지는 분명치 않다.
적어도 그게 남보다는 나를 위해서 실행될 지분이 높은 행동이란 것은 현재에 분명해진 것 같다.
작중 클로망스는 보이지 않는 정의로운 자신을 먼저 말하고, 뭍한 여성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란 인물의 정의로움을 되짚는다. 그리고 센강에서 투신한 여인의 이야기를 언급한다. 자신이 외면한 그 순간을.
클로망스는 그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급작스레 붕괴하기 시작한다. 작품 중후반부에 서술되는 위 이미지들이
그러한 과정이다.
내가 볼 때엔 클로망스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다. 그는 끝내 양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조소를 만들어냈다.
(나도 이 조소에 다년간 시달려왔다.) 비록 그가, 끝내 센강에서 투신한 여인의 문제에 있어 말로는
무관한 듯 표현하지만,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그가 암스테르담 항구에서 오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이와 같은 고백을 토로한다는 점은, 그가 현재에도 그 충격적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적어도 인간 이기심과 정의의
저울 속에 갇혀, 타인에게 토로하고 싶고, 확인 받고 싶은 심리에 갇혀있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해가 된다. 머리보다 몸이 움직여야 할 상황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것을 합리화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 정의니, 용맹이니 하는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든 그랬을 거야...’라고 합리화하며,
더 나아가 냉소로 돌변하기도 한다. 클로망스는 어쩌면 완전한 냉소에 들어선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모습은 내게는 흡사,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같은 모습처럼 비춰진다.
(물론, 클로망스는 타인의 위선을 폭로하여 자신을 정당화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문제가 있다.)
중요한 건 고백을 해야 하는 많은 이들이, 고백을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선의와 정의를 느끼던 당신!
어느 날, 불의와 비극 앞에서 자신의 정의감을 불태우지 못하고 얼어붙은 자신의 신체를 보았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는 다수의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문신을 두른 거구 앞에서 겁먹어 약한 상대를 골라 대적하기도 했고,
권력 관계 앞에서 불의를 눈 감을 수 밖에 없는 나를 마주하였다. 그야말로 나의 선택적, 편향적 정의를 직면하였다.
나도 클로망스처럼 나의 세계가 무너졌었다. 혼자 있음에도 끊임 없는 조소가 나를 괴롭혔다.
그러한 일들이 있은 직후에는 쓰레기를 줍고, 자리를 양보하고, 수레를 밀어드리고, 무거운 물건을
옮겨드리는 내 선행들이 의미를 상실하는 듯했다. 그렇지만, 당최 포기가 되질 않았다.
클로망스가 말한 “한 사람의 거짓이 뭐 그리 대수롭겠어요. 바다에 던전 소금 한 줌처럼…”처럼이
나는 당최 되질 않았다. 로캉탱이 잡은 돌맹이처럼, 보았던 마로니에 뿌리처럼 무언가가 자꾸 느껴졌다.
내 안의 양심이 가책이 나를 누르는 것이든, 그것이 타인의 조소를 만들었든 간에,
나는 내 이기심의 원리에 의해 누군가에게 오지랖을 부리고, 정의로운 척하며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클로망스는 모든 사람을 끌어내리지 않아도 된다. 그냥 조금 더 자신으로서
이기적이면 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센강에 투신하는 여인을 아예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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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전락 읽고 어떤 감상이었음?
난 아직도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거 같음 클로망스를 비난할 수도 없음 그렇지만서도 클로망스와 달리 계속
내 할 일을 하겠다는 객기를 부리고 있다는 게,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의 마음일지, 카뮈빠의 실현성 없는 낭만인지는 모르겠음
아래는 내가 클로망스가 되어 남기는 글임 (좀 오글거리지만) 이렇게 26년 3월 첫 번째 책 완독~!
지금도 내게는 파리 퐁 데자르 다리에서 투신하는 무수한 여인들이 목격되고 있어요.
다년간 떠들어왔던 내 주둥이와는 달리 여전히 몸은 움직이질 않네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외면하지는 않을 수 있었고, 적어도 외칠 수는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자책감에 내가 선택했던 것은, 표적으로 내세웠던 것은, 여인이 투신하건 말건 무신경한 모든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이 무신경하기에 나 또한......
그렇지만 그녀가 센강을 따라 흘러내려 가고 나면 귀신 같이 내 몸은 다시금 움직여졌고,
난 노인의 수레를 밀고, 자리를 양보하며, 이웃에게 미소를 띄기 시작했어요. 혐오하던 사람들에게요.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난 센강에 투신한 여인의 존재를 알고, 이제는 조소 따윈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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