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하니 비가 오고 있었음.
비를 병적으로 좋아하기에 참을 수가 없어
차를 몰고 가까운 서해안가 해수욕장으로 향했음
기대했던 바와 같이 해변은 황량했는데
황량한 바다에 비내리는 정경은 너무나 좋았음.
내가 비내리는 바다를 좋아하게 된 건
역시나 하루키 때문인거 같음.
하루키는 어떤 감정 상태나 상황을 묘사할때
특정한 바다의 풍경에 많은 빚을 지고있음.
예컨데 절망적인 고립무원의 상황은
한밤중에 배에서 떨어져 어두운 바다에서 멀어지는 배를
보는 장면으로 자주 비유하지.
노르웨이 숲에서나 친구들의 그룹에서 방출된
다자키 스꾸르를 통해 본 바 있을것이고.
깊고 고요한 슬픔은
고요한 바다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정경으로 묘사되고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나 남쪽의 국경 태양의 서쪽에서
확인할 수 있음. 물론 약간의 변주는 있는데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는 비내리는 바다의 정경대신
강과 바다가 만나는 연안가에서 흘러가는 물을
보는것이 고독의 상징처럼 사용되었고
그 도시와 불확실한 벽에서는
기존 작품에서와는 다르게
비내리는 바다를 영원성의 상징처럼 사용하지.
(바닷물이 증발해 구름이 되고, 구름에서 비가 내리고
그 비가 다시 바다가 되는 순환고리에서 영원성을 읽는식)
따라서 하루키에게는 바다의 풍경은 재즈화성처럼
큰 줄기는 있지만 표현과 감각을 달리하는 것이고
심각한 하루키 빠돌이인 나는
나의 감정과도 맞닿아 있는
다양한 바다의 풍경을 좋아하게 되었음.
그중 고요하게 비오는 날의 바다는 백미여서
긴 연휴의 마지막 날에 비까지 내리니
튀어나가지 않을 수 없었음
하지만 들고 간 책은 오에 겐자부로 단편집인데
이 글을 읽는 사람은 하루키 책을 예상했겠지만
하루키가 말한 바다 정경의 감성은 차고 넘칠 정도로
내안에 있기에 더 반복할 필요가 없는 데다가
음울한 날씨에 잘 어울리기로는
오에 겐자부로의 문장만한 것이 없어서
그의 단편집을 선택했음.
한 두어 시간쯤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고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는데 정오쯤 되니
긴 연휴의 끝이 아쉬웠는지 핵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삼삼오오 모여들며 바다를 거닐기 시작했음
내 옆에서 한 아저씨가 새우깡 투척을 시작하자
괭이 갈매기가 모여들어서 아귀 다툼을 했는데
비둘기가 모이를 먹는 풍경과는 다르게
건장한 괭이 갈매기가 새우깡을 두고
다투는 광경은 제법 으스스했음.
나는 마침 산속에 사는 화전민들이
비행기에서 추락한 미군 포로를 사육하는 내용의
단편을 읽고 있어서 모종의 기시감을 느끼며
그 모습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음.
헤드셋의 노이즈켄슬 기능이
모여든 가족의 소음을 막는데 힘겨워지는 지점에
이르러 자리를 정리하다가
세상 갈매기는 새우깡 하나 먹어보겠다고 다 모여있는데
혼자 뚱 하게 떨어져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놈이 있길래
독서갤러 같은 녀석일세 하고 피식 웃고 말았음.
와 글 좋다 - dc App
헐퀴.. 감사여ㅜ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