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백의 그림자>> 구판 초판본이 있고

그것은 곧 내가 고딩 시절에 이 책이 나오자마자 서점에 달려가서(실제로는 알라딘에서 삼) 샀다는 말이 됌

당시 내 꿈은 소설가라서 한국문학의 핫한 신인들 책도 많이 읽었는데

<<백의 그림자>>를 읽고 나서 나도 꼭 이런 책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음

(그로부터 16년 뒤 알바를 전전하는 알코홀릭에 히키코모리가 됌ㅎㅎ;)


그 책의 뭐가 그리 좋았던 걸까? 되짚어보면

결코 과장되지 않은, 오랜 관찰과 자연스러운 습득에서 비롯된 듯한 핍진성과

자칫 핍진성만으로는 지나치게 현실에 매몰될 것 같은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1퍼센트의 판타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따뜻하게 감싸는 연애의 초기 건설 단계... 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냥 내가 맞이할 첫사랑도 이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지극히 낭만적인 감상이 솔직하다면 솔직할 듯합니다..


당시 고딩이었던 내게 <<백의 그림자>> 속 세상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실전' 그 자체인 듯했고

그때문에 피상적인 대상을 맞닥뜨릴 때 간혹 착각하곤 하는 두려움과 심오함, 절망감과 경외심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는데

아마 사랑이란... <<백의 그림자>>의 설정을 빌리자면, 그런 모든 감정의 그림자에 또 다른 그림자의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지


이 책을 처음 읽은 시점으로부터(17짤...) 거의 같은 세월(16년..)을 한 바퀴 더 얻어맞은 내게

<<백의 그림자>>는 그런 감정의 그림자를 모두 소거시킨 자리에 모든 이들이 반복하고 있을 현실에 대한 씁쓸함을 남겼음

특히 옛날에는 이해가 되지 않던 유곤이라는 인물(그 복권 계산 공식은 여전히 진행 중이오?)이라던가

고딩 때는 한참 누나, 형으로 느껴지던 화자와 무재 씨가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생들로 느껴진다는 것(망생 주제에 이해하는 척해서 죄송합니다..)


이 감상은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한 것이

<<백의 그림자>> 속 그림자의 인력은 더 이상 내 삶의 미지를 자극할 만큼 새롭지는 않다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토록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힘 역시 또 다시 삶을 살아갈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백의 그림자>>에서 그림자의 의미라던가 작중 묘사되는 세계관의 원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도 많겠지만

사실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한테는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어

누군가는 그런 현실에 뒹굴며 살아갈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그런 그림자의 문제를 겪으며 살아가겠지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낭만주의자라서 서로가 서로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서로를 호명하는 화자와 무재 씨가 좋았어

황정은 작가의 작품 중 <<디디의 우산>>을 가장 좋아하지만, <<디디의 우산>> 2부에서 책을 남기는 기준처럼 언제가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역시 <<백의 그림자>>인 이유이지

(물론 <<디디의 우산>>도 다시 읽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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