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바람... 조금 울고있어요.... 이런 걸 원하는 거냐 씹덕쉐리들아?"
오늘 이야기할 모더니스트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시인이었지만, 정작 시인이 아니었던 최후의 상징주의자다.
시에 익숙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죽여주는 유명한 시구가 하나 있다.
너무나도 전설의 레전드이기에 패러디도 많이 되고, 인용도 많이되고, 들을 때마다 죽여주는 프랑스 시가 하나 있다.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
"크으...퍽예~! 주모, 여기 국밥 하나 갖다주시오!"
바로 이 죽여주는 구절이 나오는 희대의 명시 <해변의 묘지>를 쓴 '시인'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전설의 레전드 그 자체인 폴 발레리다.
폴 발레리는 1871년에 태어났는데, 태어나면서부터 '바다'와 떼어낼 수 없는 삶을 살았다.
일단 태생부터가 그러했다. 발레리의 아버지는 한때 유럽을 정복하려는 난쟁이 똥자루가 태어난 촌구석 코르시카 섬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이탈리아 항구였던 제노바 출신이었다.
거기에 남부 프랑스, 지중해가 바로 보이는 마을에서 그는 태어났고, 바닷바람과 소금기에 쩔어가며 시간을 보내었다.
물론 큰 도시로 이사를 가긴 했지만, 아무튼 바닷바람으로 세례를 맞았다.
청년이 된 그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대학에 갔고, 파리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공부하라는 법학은 안 하고, 시를 끄적였던 모양인데, 그의 습작시에 관심을 가지는 거물이 나타난 것이다.
"너. 시. 조금 잘 씀. 계속. 써."
스테판 말라르메가 그의 시적 재능을 눈여겨보곤, 자신의 써클에 그를 초대하면서 스승이 된 것이다.
여기서 일단 잠시 프랑스 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태초엔 시인들의 왕이었던 보들레르가 있었다.
보들레르...그는 신이야! 악의 꽃 펀치! 악의 꽃 펀치!
모더니즘 파트에서도 이야기했듯, 샤를 보들레는 현대시의 시작이었고, 현대시의 아버지이자 랭보가 평하듯, '시인들의 왕자'였다.
그를 시작으로 현대 시가 시작되었고, 프랑스에선 상징주의 시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왕은 영원할 수 없고, 리치왕처럼 누군가는 왕좌를 차지해야했다.
이에 보들레르의 왕위를 계승하기 위한 상징주의 시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된다.
"베를렌, 오늘도 그거 하자, 뀽뀽~"
한쪽엔 일명 '저주받은 시인'들인 폴 베를렌과 랭보 같은 부류였다.
물론 이들 하나하나가 천재였고, 자신들의 영역을 개척하고, 오늘날까지도 레전드로 남는다.
하지만 다른 쪽엔 바로 말라르메가 있었다.
삶 자체를 '저주받은 시인'으로 승화한 베를렌과 랭보와 달리,
말라르메는 사진만 봐도 알겠지만, 지루해보이는 마을 이장님 스타일이다.
실제로 말라르메의 삶 자체는 가난했을지언정 평탄했다.
하지만 말라르메도 천재였고, 젊은 발레리가 파리에 갔을 때는 이미 프랑스 시를 지배하는 거물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라르메에게 스카웃된 폴 발레리는 오늘날, 말 그대로 '최후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이 된다.
사실 젊은 발레리의 시는 대중적으론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한다.
다만 그는 뛰어난 문인들과 교류를 시작하였으며 여기엔 그보다 선배였던 앙드레 지드도 있었다. 그의 주변 인들은 적어도 이 최후의 상징주의 시인이 위대한 시인으로 계속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런 젊은 발레리에겐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우선 그는 20대가 된 직후, 폭풍우가 몰아치던 한밤중에 갑자기 일명 '실존적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런 까닭일까?
사실 발레리는 일종의 데카르트 같은 인간이었다. 그는 시인이 되고자 하기 보다는 시 쓰는 것을 자신의 사색의 도구로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가 무엇보다도 원했던 것은 순수하게 생각하는 자아에 대한 고찰이었다.
<그러나, 신이 가장 먼저 한 말은
'나'.......... 정신 나간 창조주는 그
말로 만든 별들 중에서 가장 숭고한 별,
나 존재한다......나는 존재하겠지....>
대중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시들을 발표하고, 또 20대 중반까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방법서설을 출간하거나, 테스트 씨라는 이름의 짧은 산문을 출판한 걸 제외하면, 사실 그는 시집 자체도 출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98년, 그의 스승이었던 말라르메가 죽었다. 그 동안 자아의 방황을 겪으며 끝없이 사색하던 발레리에겐 이것이 결정타였다.
"아....시 던집니다....아니, 글 던집니다, 수고요~"
그리고 그는 20년간 전설적인 '침묵'에 돌입한다. 20년의 세월 동안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출판도 하지 않은 채, 비서일을 하거나, 말단 공무원으로 만족하며 소박한 삶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내 공범 중에서, 가장 오만한,
내 함정 중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태양이여,
'비존재'의 순수성 속에서
우주는 하나의 결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너는 인간들에게 깨우쳐 주려 하지 않는다.>
"이러면....완전히 나가리인데."
앙드레 지드를 비롯한 그의 재능을 알던 이들은 놀라서 끝없이 발레리를 설득시키려고 하지만, 발레니는 계속 침묵을 유지한다.
하지만 지드는 끈질겼다.
발레리의 침묵이 어느 새 15년이 넘었을 무렵, 지드는 발레리를 찾아간다.
"발레리 아우, 이 지드가 이렇게 무릎을 꿇네. 다시 시 좀 쓰자. 좀!! 제발 좀 글 써!!!"
"음...."
"싫어요."
하다못해 앙드레 지드는, 그러면 그가 이제까지 썼던, 10년도 전에 썼던 글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자고 간청한다.
선배가 이렇게까지 비는 것에 양심이 찔렸던 걸까? 마지못해 발레리는 이를 수락한다.
"아무리 옛날에 썼던 똥글들이지만, 그래도 나름 정리는 해야겠지?"
그렇게 자신의 옛 글들을 정리하던 발레리는 흔히 책에 서문을 쓰듯, 새로운 '서시'나 하나 가볍게 써서 앞에 수록할 생각을 했다.
그는 대충 40행 정도 분량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이 정도면 이 시대 기준으로 적당한 시 한 편 정도다.
"어.....?"
<누가 우나 거기서, 그냥 바람이 아닐진대, 이 시간에
혼자 무한한 금강석들과 더불어?..... 한데 누가 우나
이렇듯 내 가까이서, 내가 울 순간에?>
-젊은 운명의 여신 (파르크) 中 , 폴 발레리
그러나 십여년만에 다시 펜을 든 폴 발레리는 기이함을 느낀다.
그렇게 짧게 서문 겪으로 시 하나를 쓰려던 발레리는 그대로 5년 내내, 초고 분량까지 합치면 수만 행을 고치고, 휘갈기며,
끝내 <젊은 파르크>, 혹은 <젊은 운명의 여신>이란 제목의 500 행이 넘는 장시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지드에게 바치는 오늘날 발레리의 대표 걸작 중 하나인 이 시는 발표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그대로 폴 발레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다.
앞서 말했지만, 발레리는 문인이었고, 자신을 시인으로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애당초 그에게 시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며 자아를 성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으니까.
그는 감각적으로 쓰는 시인이라기보단, 모든 걸 철저하게 계획하여 썼으며,
시 자체를 위해 쓰는 것도 아니었기에 실험적인 형식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의 시들은 대개 전통적인 양식을 띄고 있다.
실제로 그는 평생에 걸쳐 쓴 시가 100여 편도 안 된다.
하지만 그는 <젊은 파르크>, <해변의 묘지>, <뱀의 소묘> 등 오늘날 프랑스 시문학의 영원한 걸작들을 썼고, 20세기 가장 대표적이고 위대한 '시인'으로 남게 된다.
그 후 발레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인으로서 계속 삶을 살게 된다.
그는 수많은 철학적 사색이 담긴 <테스트 씨>를 비롯한 걸작 산문들도 계속 출간했고, 강연도 하였으며, 자신의 사색을 끝없이 노트에 적어내려간다.
이러는 과정에서도 도구지만, 시도 꾸준히 쓰긴 썼다. 그리고 그의 걸작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인 <해변의 묘지> 또한 이러한 시기에 발표된다.
<심연 위에 하나의 태양이 쉴 때,
영원의 원인이 낳은 순수한 두 개의 작품,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지혜가 된다.>
<과일의 형태가 무너지는 입속에서
그 존재의 상실이 쾌감으로 바뀔 때,
과실은 향락이 되어 녹아들어 가는 것처럼,
나는 지금 여기서 내 미래의 연기를 마신다.>
<나의 육체여, 파괴하라, 이 생각하는 형태를,
내 가슴이여, 다 마셔라, 바람의 탄생을.
맑고 새로운 대기는, 바다에서 태어나,
내 혼을 나에게 되돌린다..... 아아, 짠 바람의 힘이여.
자, 물에 녹아 활기차게 춤추자.>
<바람이 인다......살아야만 한다.>
- <해변의 묘지> 中, 폴 발레리
발레리의 시를 보고 반한 릴케가 지드에게 편지를 써서 조른 끝에,
발레리와 정모 사진을 찍는 일도 물론 있었다.
노벨상 후보로만 사후 밝혀진 것으로만 12번 거론 될 정도로 그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였고, 2차 대전 중 비시 정부와의 협력 거부로 조금 힘든 시기를 겪기도 하였지만, 평온하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삶을 마감하였고, 드골에 의하여 국장이 치뤄진다.
그의 시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인답게 수많은 산문들 또한 번역되고 있고, 그의 사색들을 적은 수십 권 분량의 노트들은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고 있다.
발레리를 만난다면, 육신 없는 순수한 정신을 향한 불가능한 동경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증오하는 빛나는 대상이여, 너를
미칠 듯이 사랑하는 나,
연인인 나에게 지옥의 제국을
굳이 주어야 했던 너>
<쓰고 떫은 과실을 동경하는 끝없는
소원은, 진흙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허공에서
미치게 만들기에,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 뱀이여, 너를 거인으로 만든 이 갈망,
이것이야말로 '허무'의 불가사의한
'전능'을 '존재'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 <뱀의 소묘>, 발레리
- 인용된 건 윤동주가 사랑한 시인 발레리 시집에서 따왔지만, 사실 시집들 자체는 국내에도 여러 사람들이 조금씩 번역했고, <젊은 파르크>, <해변의 묘지>, <뱀의 소묘>와 시집 <매혹>에 수록된 몇 편 정도만 읽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산문의 경우, 국내에 소개된 게 그다지 많지 않으므로 그냥 다 읽자.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그러니까 쌉빠요엔이었다는거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테스트 씨!
발레리 좋네
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개좋네
혹시 이 글의 발레리 시 번역은 어느 출판, 번역가의 작품인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