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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읽어보지 않았어도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를 학창시절에 읽은 사람이라면 일리아스 이후 트로이 전쟁의 유명한 참여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트로이군의 최고 전력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우스는 아킬레스건에 화살을 맞고 죽었고, 오디세우스는 <오디세이아>에서 나오듯이 개고생 끝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에 나오듯이 목욕하다 아내하고 내연남한테 찔려 죽는다. 그렇다면 트로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좆망했다.
누가 그날 밤의 재앙과 살육을 말로 형언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눈물이 우리의 고통에 합당하겠습니까?
오랜 세월 군림하던 유서 깊은 도시가 무너지고 있었고,
거리들과 집들과 신들의 신성한 문턱들 위에는 생명 없는
수많은 시신들이 곳곳에 뻗어 누워 있었습니다. -68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참가자였던 아이네아스를 주인공으로 트로이 멸망부터 새 국가를 세우게 되는 그의 여정에 대해 다루고 있는 서사시다.
다들 알다시피 오디세우스가 만든 목마에선 푸짐한 선물이 아니라 존나 많은 병사들이 튀어나왔고, 트로이의 멸망이 시작된다. 이때 죽은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도 목마에 타고 있었는데, 프리아모스의 아들을 농락하면서 죽이고 프리아모스는 배꼽에서부터 목까지 갈라 죽이는 등 상당히 잔혹한 면모를 보여준다. 아이네아스는 아버지 안키세스를 업고 아들 아스카니오스와 아내 크레우사를 데리고 트로이를 탈출한다. 그런데 탈출 장소에 와서 보니 아내가 없는 것 아닌가? 대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내는 유령이 되어 있었다. 크레우사는 아이네아스의 '망망대해를 쟁기질할' 운명 때문에 자신은 함께 갈 수 없다며 그와 이별하게 된다.
세 번이나 나는 그곳에서 그녀의 목을 얼싸안으려 했으나, 세 번이나 그녀의 환영은 헛되이 포옹하는 내 두 손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가벼운 바람결처럼, 그 무엇보다도 날개 달린 꿈처럼. -85
아이네아스는 트로이를 떠나 여러 군데에 정착하려 하지만 흉흉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끊임없이 망명하게 된다. 여기서 잠깐 헤라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헤라는 파리스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던 일 때문에 아직도 트로이한테 빡쳐 있다. 즉 트로이 사람인 아이네아스는 존나게 또 고생하고 배는 탔다 하면 개박살이 나게 되는 것이다. 오디세이아 같지 않은가? 실제로 오디세이아에서 나온 요소들(키클롭스나 스퀼라)이 1~6권에 등장한다. 떠돌다 크레타에 정착한 아이네아스는 꿈에서 이탈리아로 가라는 신탁을 듣게 된다.
아이네아스는 이후 디도라는 여자가 살고 있는 카르타고에 도착한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앞서 말했듯이 아이네아스의 운명은 떠도는 것이며 로마를 건국하는 것이다. 결국 무정한 결단으로 디도를 버리고 이탈리아로 간다. 디도는 절망에 빠져 아이네아스를 저주하고 분신자11살한다. 이후 아이네아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시녀 시뷜레와 함께 저승을 여행한다. 이때 미노스나 파시파에 등 유명 그로신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저승의 길을 지나 천국 엘리시온에 도착한 아이네아스는 아버지를 만난다. 안키세스는 아이네아스에게 후손들이 번영할 것이라는 예언을 쏟아내고 그와 시뷜라를 상아 문을 통해 내보낸다.
세 번이나 그는 거기서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으려 했으나, 세 번이나 환영은 헛되이 포옹하는 그의 두 손에서 빠져나갔다, 가벼운 바람결처럼, 그 무엇보다도 날개 달린 꿈처럼. -214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서 아이네아스의 주된 캐릭터성을 '책임'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캐릭터성은 불타는 트로이에서 아버지를 업고 아들의 손을 잡은 채 탈출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으며, 그 책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베르길리우스가 종종 아이네아스를 '아버지 아이네아스'라 부르는 것 또한 아이네아스의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아이네아스의 저승 투어가 끝나고 작품의 분위기는 오디세이아에서 일리아스처럼 변한다. 아이네아스 일행은 이탈리아에 상륙하지만, 헤라가 불화의 여신을 시켜 그곳 사람들과의 전쟁이 대판 벌어지게 된다. 아이네아스의 적수는 투르누스로, 상당히 강인하게 묘사되는 인물이며, 일리아스의 헥토르와 비슷한 포지션의 인물이다.
이후 12권에서는 아이네아스와 투르누스의 최종 결전이 펼쳐진다. 아이네이스는 전투 장면에서 상당히 잔혹한 묘사와 고된 싸움—참11수는 기본이고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전투 외에도 아이네아스가 화살을 맞고 절룩이는 모습과 전세가 기울고 도시가 불타는 것을 보고 절망하는 투르누스의 모습(순식간에 멘탈을 회복하긴 한다만) 등 작중 대사나 묘사로도 등장한다.
또한 420쪽에 나오는 베르길리우스, 즉 서술자의 독백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다.
"어느 신이 지금 내게 그토록 많은 참사를 이야기해줄 수 있으며, 어느 누가 갖가지 살육과 온 평야 위에서 때로는 투르누스에게, 때로는 트로이야의 영웅에게 쫓기던 지도자들의 죽음을 노래로 말해줄 수 있겠는가? 윱피테르시여, 뒷날 영원한 평화 속에서 살게 되어 있는 민족들이 그토록 격렬하게 맞부딪치는 것이 그대의 뜻이었나이까?" -420
팍스 로마나는 두 민족의 피터지는 싸움 끝에 얻어진 것이다.
작품은 투르누스의 죽음과 함께 급작스럽게 막을 내린다.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인 뒤 프리아모스와 공감하며 일리아스를 맺은 것과 달리, 아이네아스는 분노와 복수심 속에 적의 숨통을 끊는다. 나라를 세우는 영광스러운 대단원은 생략되어 있다. 아이네이스가 이렇게 끝나는 이유는 베르길리우스가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끝나는 것도 아이네이스의 분위기에 어울린다.
"지금 그대는 내 전우에게서 벗긴 이 전리품을 두르고서 여기서 벗어나기를 바라는가? 지금 이 가격은 팔라스가 그대를 죽이는 것이며, 팔라스가 살해자인 그대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 것이다." -438
상당히 재밌는 작품이다. 트로이 멸망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일리아스를 읽은 다음에 읽기 좋고, 한 2군 정도의 캐릭터였던 아이네아스에게 새 캐릭터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의의도 있다. 아까부터 계속 언급하고 있지만 아이네이스의 최고 장점은 로마 건국이라는 사명을 업은 아이네아스의 무거운 책임감, 그 책임감에서 오는 비애와 고단함, 그것이 여러 요소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일리아스와 다르게 신들의 회의 장면은 한 차례밖에 등장하지 않아 인간과 인간이 싸운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또한 인간병기들인 아킬레우스, 헥토르, 디오메데스, 아이아스(대짜) 등의 캐릭터들이 없어 더 치열하고 잔혹한 전투 장면이 나오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곧 읽어보고 싶은 작품인데 리뷰 감사합니다ㅎㅎ 로마인들이 추구했던 덕을 표현하는 작품인것같네용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군요
뭔가 제갈량 사후 급격히 마무리지은 삼국지연의느낌이네 아이네이아스라는 캐릭터의 매력도는 일리아스를 이끌어간 헥토르/아킬레우스와 오디세이아를 이끌어간 오디세우스에 비하면 어떤느낌임? 트로이전쟁에서 위기에처한 아이네이아스 아프로디테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구해주려다 디오메데스한테 창에 찔리고 뿌에에엥~~하고 올림포스로런한 걸 재밋게 봤었는데 ㅎㅎ - dc App
로마를 세워야 한다는 막대한 책임감과 고난 뭐 그런 게 좋았음 아킬레우스가 분노/슬픔 오디세우스가 지략이면 아이네아스는 책임
꿀잼과 노잼이 공존하는 신기한 작품...
전투는 일리아스가 훨씬 재밌긴 함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ㅇ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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