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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제한 열받네 핵심만 적음 요약 부분은 챗지피티 돌렸는데 엉성함 도덕이 뭘까 궁금함
선의지 : 조건 없이 그 자체로 선한 의지 (결과가 아니라 의지 자체에 있는 것)
의무 :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 때문에 행위 하는 것 (행위는 ① 거짓 ② 이익 ③ 정직 세 가지로 구분됨)
준칙 : 개인이 행동할 때 따르는 주관적 원리
법칙 :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적용되는 객관적 원리
정언명령 : 조건 없이 따라야 하는 보편적 도덕법칙
가언명령 : 어떤 목적이 있을 때에만 유효한 명령 (돈 벌고 싶으면 열심히 일해라)
도덕명령 : 조건 없이 따르는 명령
당위 : 이성이 의지를 명령하는 형식
의욕 : 의지가 실제로 선택하는 능력
자율 : 의지가 이성에 의해 스스로 세우는 보편적 도덕법칙
타율 : 의지가 외부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 (사회규칙 등…)
경향성 : 욕망, 감정, 쾌락을 향하는 자연적 충동
동기 : 행위를 하게 만드는 주관적 이유
동인 : 의지를 실제로 움직이는 내적 추진력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
존경 : 도덕법칙이 이성에 미치는 감정 (이성이 만드는 감정)
감성세계 : 감각과 경험을 통해 인식되는 세계
예지세계 : 이성이 사유하는 세계
2. 요약
조건 없이 선한 것은 오직 선의지뿐이다.
재능, 성격, 행복 같은 것들은 상황에 따라 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선이 아니다.
선의지는 결과 때문이 아니라 의지의 원리 자체 때문에 선하다.
도덕적 가치는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의 동기에 있다.
따라서 진정한 도덕적 행위는 의무에서 나온 행위이다.
의무는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다.
인간은 욕망과 경향성 때문에 도덕 법칙을 자동적으로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당위성으로 나타난다.
이런 명령은 가언명령과 정언명령 두 가지로 나뉜다.
가언명령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적 명령이다.
도덕 법칙은 어떤 목적에도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정언명령이어야 한다.
정언명령은 내 행동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원리이다.
어떤 준칙이 보편화될 때 모순이 발생하면 그 행위는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 대해야 한다.
모든 이성적 존재는 스스로 도덕 법칙을 세우는 존재이다.
이것이 바로 의지가 스스로 법칙을 세우는 자율이다.
욕망, 행복, 신의 명령 같은 외부 원리에 의존하는 윤리는 타율이다.
도덕은 오직 자율적 의지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도덕은 자율적 이성이 스스로 보편적 법칙을 세우고 따르는 구조이다.
이성인식을 질료적인 것(물리학)과 형식적인 것(논리학, 윤리학)으로 나누었다. 또, 형식적인 것들은
경험할 수 없기에 선험적 원리에 의한 순수철학으로 보았고, 지성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에 형이상학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이를 근거로, 도덕법칙은 인간 사회의 경험적인 결과와 연결되지 않는,
필연적이며,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때문에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말하는 도덕은 ‘인간 경험중심의 윤리 분석’을 거치지 않아 조금 넘겨짚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 경향성, 감정에 대한 사유를 면밀히 분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순수한, 형이상학으로서의 윤리와 대비되는 자연적인 인간들.
인간의 경험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것이 도덕이라면, 인간 개개인의 행복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것이 도덕이라면
그것은 과연 도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것은 늘 감성세계의 예속에 시달리는 도덕일 것이고,
선의지로 행해진 행동조차 자율적 행동이 아닌 당위적 행동이라는 시선에 놓이게 될 것이다.
칸트는 도덕법칙이 환상이 아닌, 이성 스스로가 발견하는, 감성세계에 예속되지 않는 것임을 세운 것이다.
조건 없이 따라야 할 도덕법칙인 정언명령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줄까?
혹자는 이것이 현실성 없는 공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구조주의와 같이 인간 현세의 영향을 한 티끌조차
받지 않은 순수한 기준이 없다면, 도덕은 과연 도덕으로서 온전할 수 있을까? 인간이 부품이 아닌,
존엄적 존재로서 존립할 수 있는 근거가 있을까?
칸트의 정언명령은 누군가에게 절대적 명령을 따르는 위선적 하수인 정도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그가 말하는 ‘자율’과 ‘감성세계/예지세계’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주객전도의 문제도,
순환논리의 문제도 해결이 된다. 욕망, 경향성, 자연인과성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감성세계에서
도덕의지는 의욕이 아닌 당위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그러나, 자체로서 존재하는 선의지가 세워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명령을 강제하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법칙을 세울 수 있는 동인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를 확인하였음에도, 경향적인 인과 법칙에 의한 보상이 없는 그것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것은 자율의 문제이다.)
4. 나서며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 결말을 이와 같이 마무리한다.
우리는 도덕법칙이 왜 우리를 움직이는지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그러나 그것을 의식하며 실제로 경험한다고.
니체가 비판한 것처럼, 도덕이 약자들의 유산일까? 칸트도, 나도, 그런 놀음에 놀아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나는, 칸트의 철학을 부정할 때에 인간 모두가 존엄한 존재라고 볼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해있다고 생각한다.
대세를 따르면 인간은 그저 신체에 귀속된 부품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동기 없이 선을 실천한다.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꿈꾸거나, 막대한 부를 꿈꾸며
가짜 희생에 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개중에는 그러한 동기와 무관한, 이해관계 없는 순수한 희생이 존재한다.
그들의 지닌 선이 사회의 선동일까? 인간 의지가 본래 추악하다면, 그 추악함을 뛰어넘는 가언명령이 존재하는 것일까?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니다. 인간에게는 수단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 그 이상한 자유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자유는, 분명 하나의 법칙을 만든다. 법칙을 만든다는 것은 구속처럼 보이지만, 나는 늘 말한다.
우리에게 영생이 약속되어 있었다면 우리에게 자유를 감각하는 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율적 법칙은 분명 내게는 자유라 느껴진다.
아우, 진짜 글자 수 제한 때문에 미치겠네. 여기다가 적음. ① 주요 개념 몇 개 날렸음 ② 실존주의 도서를 상대적으로 많이 경험해서 감상이 편향적일 수 있음 (균형 잡으려고 노력중) ③ 요약은 챗지피티 돌렸는데 좀 엉성함. 그렇지만 시간이 없으니 이해 부탁 ④ 비문학 문외한임 그래서 틀린 부분 알려주면 적극 반영함 근데 문제는 글자 수 제한 때문에 뭘 추가할 수가 없다는 거임... 빼는 건 가능할듯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