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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란티어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 대한 소설. 팔란티어에 나오는 가이아라는 가상현실은 비록 아직 실현되지 못했지만 유사한 것들은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는 가상세계의 우리 모습을 대변한다. 넷상에서는 공손한 사람도 현실에선 폭력적이고, 현실에서 공손한 사람도 넷상에서는 폭력적으로 변한다.
개인들은 무의식적 충동을 최대한 현실과 조율하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난 얼마나 많이 홀로 집에서 수음했던가? 남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아픈 손가락을 감싸쥐고 우리는 살아간다. 이러한 손가락을 감싸쥐는 행위는 심할 경우 자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선택받지 못해 슬퍼하고, 성형하고, 운동하는가?
그러나 최근 등장한 트위터, 페이스북 따위의 것들은 이러한 노력의 강도 즉, 아픈손가락을 감싸쥐는 행위의 강도를 현저히 낮추어 버린다. 좋게 본다면 그들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것이지만, 나쁘게 본다면 그들의 현실을 앗아가는 것이다. sns에 빠져 스스로를 자학하는 인간 군상들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타인 혹은 사회를 미워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사랑할줄 아는 사랑받지 못한 이들의 모습이다. sns에 빠져 타인을 혐오하는 인간 군상들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타인 혹은 사회를 미워한다. 그것은 사랑할 줄 모르고,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전자라면 누군가의 따스한 말 한마디가 구원일 것이지만 후자라면 끊임없는 자학으로 스스로가 바뀌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가재의 비유처럼.
그렇다면 인스타그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진은 아날로그 기술의 시절엔 추억을 향유하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이어주던 통로였다. 남에게 보이기보다는 스스로가 소장하려는 목적이었다. 현대의 사진은 이러한 소장보다는 전시에 중점을 둔 물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전시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들 사진의 목적이 아름다움, 환상 따위의 것을 전시하기 위함이므로. 인스타의 사진들은 그들의 베일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인스타는 결국 현실을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페이스북, 트위터와 다르지 않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글로써 이용자들의 못난 자아를 충족시킨다면, 인스타그램은 사진으로 그들의 자아를 충족시키고 있다.
여담
가재는 언제나 겉 껍질을 탈피해서 몸뚬아리를 키운다. 가재는 탈피하기 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면 가재는 죽어버리는 것이고 그것을 극복하면 가재는 새 껍질을 얻고 더욱 거대해지고 단단해진다. sns는 가재에게 탈피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환각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sns는 모두 타인의 좋아요, 하트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가 그만큼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부러움이 글쓴이의 자아를 왜곡시켜 충족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심심해서 읽었던 소설인데 생각보다 내용이 좋아서 글 써봅니다. 제가 SNS는 안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면만 강조한게 없지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걸러서 읽어주세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니카이 도사키// 팔란티어가 가상현실의 자아가 현실의 자아보다 비대해지면서 생기는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해서 sns와 연관지어서 글 끄적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