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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 응가할 시간이야, 크롱!》 서평 - 그대는 배설할 준비가 되었는가
네버랜드에 펭귄을 투하합니다
문자 그대로의 금세기에 태어난 이들에게 있어 이 거대 조류의 의미란 유별나기 그지없다.
그들은 뽀로로와 노래했고, 뽀로로와 춤췄다.
그들 중 간악한 이들은 여우를 보며 공부의 중요성을 깨우쳤고, 우직한 이들은 백곰을 보며 근손실의 위험성을 인지했다.
심지어는 루피가 정실이냐 패티가 정실이냐를 두고 유치원에 삼삼오오 모여 토론의 장을 열어본 기억은 다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이나 이것은 백색에 가까운 아이들의 세계에 강습하기 위한 회백색 하늘의 발로가 되어주기에도 적절했다.
말하자면 뽀로로는 이미 아이들에게 그만큼 '내부 세계의 것'이 되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회의 존재 이유를 꼽으라고 하면 여러가지 논박이 오가지만 근원적이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지점은 그것의 자기정합성에 있다.
사회는 사회 스스로를 존속시키고자 작동하며, 핑곗거리로 인용되곤 하는 나머지는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결합의 차례다. 눈치 좋은 독자들이라면 벌써 내가 펼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눈치챘으리라 믿는다.
그렇다. 아이들과 눈덮인 숲속마을 친구들을 연결해주었던 주선자들은, 이제는 그것을 무기로 아이들을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훌륭한 태엽장치로 탈바꿈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의대에 간 거니?
이야기는 뽀로로와 크롱의 기상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시작이지만, 그런 일상적인 측면이야말로 붕괴의 대비를 극명히 알11리는 서사적 장치가 되어준다.
뽀로로는 이윽고 내장을 뒤집어 흔드는 듯한 불쾌감을 체감한다.
이것은 단지 뽀로로의 심상에 그치지 않고, '꾸르륵'이라는 노골적인 의성어를 통해 그의 절친한 친구 크롱에게까지 전이되는 공간적 불쾌이다.
뽀로로는 화장실로 달려가 옷을 벗어던진 후 볼일을 보고, 크롱은 문 너머로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재미있는 지점은 뽀로로가 느낀 불쾌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그가 '배설'을 한다는 점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그의 소설 속에서, 로캉탱이 겪는 실존적 위기가 고조에 이를 때 그에게 '구토'를 부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구토는 차마 '소화할 수 없어서' 되먹이는 것인데, '꾸르륵'이란 '과소화'를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배설 장면에서 뽀로로가 일시적으로 전라가 된다는 점 또한 주목해 볼만한 요소이다.
혹자는 뽀로로의 옷이 상하의 일체형이라 어쩔 수 없는 연출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만, 이면의 가능성도 적잖이 흥미로울 테다.
직전의 과소화 모티프와 연결지어 연구해 보자면, 뽀로로의 불쾌는 근원적으로 세상에 대한 병적인 수준의 이해에 있다.
하지만 그가 배설이라는 작업을 통해 '소화대상 나'를 '소화주체 나'와 일시적으로나마 격리할 때, 그는 그제서야 비로소 태어날 때와 같은 전라의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가 처음 대중 앞에 섰던 뽀롱뽀롱 뽀로로 1기에서는 뽀로로가 항상 전라였던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당대의 그는 아직 세계관을 병적으로 탐구하기 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뒷정리, 물 내리기, 손 씻기가 빠른 리듬과 함께 넘어가고, 크롱 역시 좀 전의 뽀로로와 같은 불쾌를 겪지만 그는 볼일을 보기를 거부한다.
친구들이 찾아오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기로 결정한 뽀로로와 친구들.
하지만 사건은 벌어진다. 놀이터의 회전무대 위에서 포비가 방귀를 뀐 것.
비자발적 전파자
좌우간 주목할 만한 지점은 이후 포비가 놀이터 화장실로 달려가고, 용변을 보고, 크롱이 엿보고, 다시 리듬감 있는 뒷정리 - 물 내리기 - 손 씻기의 연쇄가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에 있어서 그 누구도 방귀에 불만을 품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물론 뽀로로와 친구들은 냄새에 고역을 겪는다. 눈이 빙글빙글 도는 만화적 표현이 발생하고, 이리저리 도망치기 바쁜 것에서 극명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우선 작품 내적 모티프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그렇게 된다면 아무래도 '꾸르륵' 소리와의 병치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세계에 대한 과한 수준의 이해에서 유래되었다고 추론한, 그 어떤 내면적 불안의 과포화가 비자발적인 외재화를 겪으며 공간 자체를 침식하고 공동체 정서의 층위를 침강케 하는 현상이라는 점에 있어 복명과 방귀는 대응된다.
이것의 요지는 불안의 표출이 결코 '자발적'이 될 수 없다는 이상론이 아니라, 많은 경우에 표출된 불안의 출처가 그 비의도성을 소리치기도 전에 던져진 계란에 맞고 쓰러진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풍자라 보아 마땅하다.
그러니까 저자는 일종의, 사람들이 실존적 불안을 느끼면 '실제로' 구토를 하는 세계 같은 것을 구상한 것이다. 방향은 달라도 뒤집으면 같지 않은가.
부차적이지만 작품 외적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지는 않다. 에프록토필리아(Eproctophilia)이다.
에프록토필리아라고 하는 것은 방귀에 대해 성적 흥분을 느끼는 부류를 지칭하는 단어로 일반적으로 이상 성욕으로 분류된다.
필자는 이 부류의 사람들과 실제로 접촉해 총 3인과의 개별 인터뷰 및 자문을 요청하였으나, 3인 중 2인이 거절하였고, 특히 D군은 '포비 방귀는 안 꼴림'이라는 이유를 대며 거부 의사를 표했다.
이렇다면 표본의 객관성을 보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자료로 활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 되어 버렸다. 이 이야기는 아쉽지만 다음에 다뤄야 할 듯 하다.
말문이 트였네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한껏 놀이를 즐긴 친구들은 루피의 집에 식사를 위해 모이고, 루피는 식사 자리에서 방귀를 뀌는 결례를 범한다.
여지껏 그래왔듯 변을 보고, 뒷정리를 하고, 물을 내리고, 손을 씻는다.
이 부분은 사실상 직후에 이어지는 크롱 파트를 위한 서사적 희생에 가깝지만, 이전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변주를 주려고 한 흔적은 보인다.
가령 뽀로로의 배설 장면에선 전라가 되었던 것을, 포비의 배설 장면에서는 뽀로로와 친구들 중 유일하게 상하의가 구분된 포비가 바지만 내리고 용변을 보는 것으로 비틀어 교육상 적합한 연출로 변주한 영리함이 돋보이고, 루피의 경우 치마를 착의했다는 극단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야기로 돌아와, 루피가 자리로 돌아오기 무섭게 복명을 울리는 크롱.
그러나 뽀로로는 회의적인 눈초리로 '크롱은 아마 화장실에 안 갈거야'라고 말한다.
이때, 크롱은 〈뽀롱뽀롱 뽀로로〉 시리즈 내에서 크롱은 "크롱크롱!"이라는 대사만 말할 수 있다는 기존 설정을 깨부수는 충격적인 모습을 내비친다.
"나도 화장실에 갈 거야!"
크롱은 씩씩하게 화장실로 갔어요.
크롱이 말할 수 있게 된 이유란 자명하다. 그가 화장실에 갈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배설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세계를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크롱이 말하게 된 것은 크롱이 세계를 이해했음의 암시이다.
마치며
《뽀로로 응가할 시간이야, 크롱!》이 그렇게 대단한 작품인가 하면 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이 유아들에게 제기했을 물음들, '나는 배설할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그 고찰의 값어치는 결코 가벼이 매길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세상을 살다 보면 배설할 준비가 안 되었는데 변기에 줄창 앉아 있는 사람도 많이 보이고, 배설만 하루종일 하느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보인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씩 이 책을 권해 보길 바란다. 분명 소중한 경험을 선사할 테다.
한 줄 평
크롱크롱, 크롱! ★★★(3/5)
뽀로로와 크롱이 제기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의 한 모습은 우리가 좀처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이지만, 혈연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심지어 서로 천적 관계임에도 서로 친밀한 가족적인 관계(또는 이웃)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뽀로로 응가할 시간이야 크롱’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생각함 그런 의미에서 ‘뽀로로 응가할 시간이야 크롱’은 21세기 신자연주의 계통 혁신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반모더니즘 고전회귀 정신의 문학사적 걸작이라고 생각함 서평 인상 깊게 잘 읽었다 - dc App
공룡이랑 펭귄이 엮이는 일은 드무니까 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종을 뛰어넘는 가족애였구나. 그러고 보니 뽀로로 1기 1화에서는 반대로 크롱이 들어있던 알을 뽀로로가 프라이해 먹으려 했었지.
@ark0212 뽀롱뽀롱섬은 에덴동산이나 다름없는 곳 - dc App
정실은 패티임 - dc App
패티견은 ㅅㅂ 좀 꺼져라
정실은 크롱인데 - dc App
@데이빗집단린치 루피견 아웃 - dc App
이건 사람이 쓸 글이 아니다. 제발 ai가 썻다고 고백해다오
이상해?
@ark0212 진짜로 ai임?
@유스티티아 AI는 일말의 개입도 없었음.. 평소에도 누구는 그냥저냥 괜찮게 봐주고 누구는 AI 같다고 해서 신경쓰여서 물어봄
아 말이 좀 이상하네 왜 AI 같다고 하냐고 따지는 거 절대 아님
@ark0212 걍 사드 후작님이 소돔120일 쓸때 이건 악마가 쓴 글이다라고 매도된것처럼 인간이라면 똥ㅋㅋ에 대한 탐구를 진지하게 고찰 못할것이다란 생각에서 나온 경악이라서 ㅇㅇ;잘 쓴 서평은 맞음.
님아.
개씨발ㅋㅋ글잘쓰노
어쩌다가 이런 글을 쓸 생각을 한거임
@모르는게상책 대중적 평가랑 내 평가랑 자꾸만 엇갈리던 게 고민이던 차에 충동적으로 그만
님 정체가 뭐예요???
와
당신은 독갤의 프로이트인 것입니까!?!
최고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