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뒷북치는 감이 있지만 나도 시류에 편승해서 내가 읽었던 책 중 개인적인 Top 9을 꼽아봤다. 아직 내 독서량이 150권을 채 넘기지 않아서 그런지 라인업이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나 그냥 내 사심대로 책 아홉 권을 꼽아봤다. 그냥 생각 나는대로 책을 나열했을 뿐 딱히 순위를 매겨두지는 않았다.

1. 돈키호테 (Don Quixote) - 미겔 데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

내가 읽어본 최고의 소설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이 책을 꼽을 것이다. 재미, 서사, 문학으로써의 주제의식, 실험적인 문학기법까지 뭐하나 빠짐이 없는 걸작이다. 400년 전에 씌여진 책임에도 지금까지 많은 문사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문학계의 화수분이다.

2. 안나 카레니나 (Анна Каренина) - 레프 톨스토이 (Лев Толстой)

내 식견이 아직 많이 짧지만 근대 소설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제정 러시아 시대 귀족들의 생활상과 농촌 풍경을 단순히 세세하게 묘사한 수준이 아니라 다큐라도 한 편 보는 것 마냥 한 시대를 활자로 옮겨놓은 책이다. 작품의 분위기가 잔잔하고 스토리라인도 평이한 데 반해 모든 주조연 등장인물들이 잊히질 않을 정도로 뇌리에 남는다.

3. 픽션들 (Ficciones)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성인이 들어서 책이랑 담을 쌓던 나에게 문학의 재미와 심오함을 일깨워준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작품 자체는 많이 난해한 편이지만 작중 수록된 단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에도 적혀 있듯이 모호함은 풍성함을 의미하기도 해서 이 책의 주제의식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면서 사고의 재미를 새삼 깨닫게 된 것 같다. 한 인간의 상상력만으로 단편소설 정도의 분량만으로 한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책이기도 해서 보르헤스를 보노라면 경이감과 경외심이 절로 나온다.

4.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 -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어렸을 때 뭔가 있어보이는 제목 때문에 사왔는데, 초반부만 읽고 높은 난이도에 질려서 한동안 책장 한 구석에다가 쳐박아뒀던 책이었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이야기에 홀린듯이 빠져들어 끝까지 읽게 되었다. 자칫 지루하고 현학적으로 보일 수만 있는 소재를 가지고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에 실로 감탄이 나왔다.

5. 백년의 고독 (Cien años de soledad)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ía Márquez)

어린 시절부터 질기도록 이어졌던 독서 권태기를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독서에 재미를 붙이면서 읽어본 책이다. 마콘도라는 가상의 마을에 자리잡은 부엔디아 가족사를 과거, 현재, 미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풀어낸 신기한 책이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전래 동화 같으면서도 라틴아메리카의 암울한 현실이 녹아 들어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에는 왜 가르시아 마르케스 같은 작가가 없는지 한탄하며 콜롬비아에 시샘아닌 시샘을 품기도 했다.

6. 소송 (Der Prozess) -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어렸을 때 프란츠 카프카 단편집을 읽었다가 특유의 난해하고 기괴한 분위기가 질려서 몇 년 동안 책읽기에 손을 놨다가 머리가 좀 굵어지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서 카프카의 작품에 푹 빠지게 되었다. 카프카의 작품을 더 파보다가 이 책을 읽어봤는데, 작가의 다른 단편이나 장편 소설보다도 이 작품에 내 마음이 더 끌리는 편이다. 미완성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의 매무새가 깔끔해서 내 마음에 더 들었다. 카프카의 허무맹랑하며서도 매우 현실적인 작품 세계는 멋모르던 어린 시절 보다는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내 마음에 더 통렬히 와닿는 것 같다.

7. 코 · 초상화 (Нос · Портрет) - 니콜라이 고골 (Николай Гоголь)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통해 노문학에 흥미가 생기면서 읽어본 책이다. 표트르 대제의 개혁 이후 본격적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러시아 도회지에 자리잡은 속물 근성과 허영심을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한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도스토옙스키만큼 장황하면서도 글맛이 있는 문장에 톨스토이 만큼 예리한 현실 의식을 겸비한 걸작이다. 여러모로 고골의 1세대 노문학 거장으로서의 품격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8.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 - 토마스 만 (Thomas Mann)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모의 추천으로 읽어봤던 책이자 내가 처음으로 토마스 만을 접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도 토마스 만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을 두 편 더 읽어봤는데, 두 편 모두 명작이었지만 이 중단편집 만큼 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바그너의 선율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트리스탄, 토마스 만의 예술관이 잘 드러나면서도 마음이 아련해지는 감수성이 담긴 토니오 크뢰거, 환상적이면서도 병적인 분위기가 일품인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까지 이 책에 수록된 중편 소설은 내게 더없이 훌륭한 작품이었다.

9.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The Picture of Dorian Gray) -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앞서 소개한 다른 책들과 비교하면 다소 고개가 갸우뚱해질만한 선택이지만, 이 책은 내게 정말 뜻깊은 책이다. 이 책의 영어 원서를 읽으면서 내겐 마냥 딱딱하기만 했던 영어 문장의 글맛과 영어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책이기도 하다. 통속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지만 감질맛 나는 문장과 위트있는 대사, 몰입감 넘치는 서사까지 갖춰서 영어 원서에 이제 막 발을 들였던 내게는 선물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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