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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교보문고를 구경하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책을 발견했다.
엔젤라 첸의 <에이스>, 표지를 보니까 내가 한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퀴어에 대해서 설명한 책이었고, 그 중에서도 더 생소하게 느껴지는 ‘무성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비문학도 안 읽은지 좀 됐겠다, 식견도 쌓을 겸 해서 바로 사서 읽어보았다.
일반인인 내 입장에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무성애자는 성욕이 없는 사람들인건가?’ 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책에서는 ‘성적 끌림’과 ‘로맨틱 끌림’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성적 끌림은 간단히 말해서 ‘성욕의 방향성’ 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맨틱 끌림은 상대에게 느끼는 연애적 감정이다.
유성애자들은 보통 상대애게 로맨틱 끌림을 느끼면 성적 끌림이 같이 따라오며 육체적 관계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만, 무성애자들은 로맨틱 끌림을 느낀다고 해서 성적 끌림까지 따라오지는 않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해가 쉽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박물관이나 마술관같은 곳에서 정교하게 짜여진 조각상(다비드 상 같은 것들) 을 볼 때 느끼는 느낌과 비슷한 것 같다.
아마 조각상의 육체를 보면서 성욕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쉽게 말해, 성적 끌림보다 대상이 가진 아름다움 (미적 끌림이라고 한다) 에 더 호감을 느껴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무성애자라고 해서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그 성욕의 방향성이 누군가를 향하지 않을 뿐이다.
특정 무성애자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 육체적 관계를 나누거나 욕구를 혼자 해결하기도 하는데, 행위 자체에 재미와 흥미를 느껴 하는 경우도 많다. 요약하자면 ‘무성애자 ≠ 무성욕자가 아니다.’ 라는 것.
일반적으로는 이러한데, 성욕을 아예 느끼지 않는 사람들, 특정 대상 (2D 캐릭터 등) 에만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다 다루기에는 좀 복잡하기도 하고, 또 무성애라는 개념 자체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고, 내가 너무 힘들어지니까 넘어가도록 하자.
서론이 길었다.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보겠다.
이 책은 무성애자인 안젤라 첸이 자신과 같은 무성애자 100여명을 만나며 얻은 경험들을 사회적 측면, 개인적 측면에 깊게 엮어 담아낸 책이다. 읽으면서 느낀 점은, 실제 무성애자들에게도 충분히 좋은 책이겠지만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에게 더 추천하고픈 책이었다. 상술한 무성애의 개념들을 책 속에서 잘 알려주고, 실제 경험까지 덧붙여 이해가 쉬웠던 것 같다.
생소한 개념들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전문 용어까지는 아니라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고, 그냥 잡지에 실리는 글들을 읽는 것처럼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무성애의 대략적인 종류와 개념을 설명한 뒤 작가는 무성애 주위에 존재하는 편견들을 주목한다. 여기에는 내가 책을 읽기 전에 했던 오해인 무성애자와 성욕의 관계부터, 성욕을 느끼지 않고 육체적 관계를 하지 않으면 ‘어딘가 잘못되고 아픈 사람’ 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까지 존재한다.
심리학부터 TV같은 대중매체, 먼 옛날 기독교에까지 이러한 편견은 속속들이 스며들어있다.
예전에 만들어졌던 대다수의 심리학 검사지, 결과에는 무성애라는 항목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있다고 해도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해버렸다.
기독교에서도 누군가에게 성적 욕망을 품는 것을 불결하다고만 하지, 누군가에게 성적 욕망을 아예 품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극히 적긴 하지만 드라마나 만화에서 무성애자 캐릭터가 나오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거나 (초능력자, 이종족 등) 앞서 말했듯이 결함이 있거나 한 인물로 비춰진다.
여기에 더해 ‘흑인 여성은 성욕이 많으니 무성애자라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 ‘남자가 어떻게 무성애자일 수 있냐.’ 등등의 인종과 성별을 막론한 시각까지 더해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정도의 무성애자들은 어릴 적부터 이러한 통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자랐는데, 그들이 겪은 여러 경험들에서 그들은 자신이 무성애자일지 모른다는 마음의 신호를 수차례 받아왔음에도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 휩쓸려 자기 자신마저 아픈 사람, 나이만 먹고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으로 오랜 시간동안 여기며 고통받아왔다는 점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동했던 것 같다.
무성애에 관한 책이지만 사람들 간의 관계와 유대, 애정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루고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더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우정’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성에 대한 연애적 감정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친밀한 우정으로 이루어진 관계보다 더 중요할까?
물론 사랑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감정이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 더 막중한 역할을 하는 건 맞지만, 가벼운 사랑과 깊은 우정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 단지 사랑이 우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작가는 말한다.
우정을 나누는 친구와 로맨틱 파트너. 그 사이의 공간에 위치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욱 더 깊은 우정을 나누는 소울메이트로, 성적 스킨쉽 없이 껴안는 것 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퀴어플라토닉 파트너라고 부른다.
뭐 이름이 심하게 거창한데, 그냥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서로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퀴어플라토닉 파트너는 사람에 따라서 한명이 될 수도, 반대로 여러명의 파트너를 만들수도 있다.
단순히 상대방의 내면을 진정으로 사랑해주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 좋아하는 취미를 찾아서 같이 즐기는 것만으로 관계의 의미는 더욱 깊어지고, 어쩌면 사랑보다 더 무겁고 소중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남들보다 일찍 깨달은 것 같다.
가면 갈수록 서로에 대한 비난과 폄하, 혐오가 가득한 지금, 가벼운 대화로 시작해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서로서로 소중히 여기며, 가벼운 포옹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얻는 그들을 조금씩 닮아가야하지 않을까.
마무리
성이 우리 세상에 닿는 곳에 무성애 또한 존재한다.
무성애는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고,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다양한 편견들에 부딪히며 그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성적 다양성이라는 것이 있다.
이성을 좋아하던, 동성을 좋아하던. 그 대상 자체를 사랑하던. 그것은 자신의 자유이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되는 것이다.
작가 자신도 한 명의 무성애자이기에, 이 책을 통해서 무성애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곳곳에 있는 편견들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고, 더 나아가 자신이 무성애자가 아닐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길을 밝혀주는 걸 목표로 써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한 편의 무성애 개론서처럼 느껴지는 엔젤라 첸의 에이스는, 여러가지 정보와 더불어, 진실한 관계란 무엇인지를 알려 줄 것이다.
아무래도 책 주제가 주제인지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도 약간씩 다뤄지는데, 이 점에 관해서 편향적인 견해가 나오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으나, 무턱대고 성별을 갈라치기하는 게 아니라 인터뷰어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내용이 전개되다 보니, 걱정했던 과격한 내용들은 나오지 않는다.
이와 별개로, 이 책에서 유래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인셀’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비하적 표현이긴 하지만) 이것 또한 단어의 의미정도만 짚고 넘어가지, 특정 대상을 맹목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으니 안심하고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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