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잘 써보려고 했는데 설명하는 솜씨가 없어서 대충 씀
<풍요의 바다>는 두 주인공이 '자신들이 직접 겪지 않아 잘 기억나지 않는' 러일 전쟁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2차대전 종전 이전을 다룬 <봄눈(1910년대)>과 <달리는 말(1930년대)>에서는 일본적 미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기요아키와 이사오가 등장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완수하고 죽는다.
종전 이후인 <새벽의 사원>과 <천인오쇠(1960년대)>에서는 미의 화신이 일본이 아닌 태국에서 태어나거나, 아예 가짜가 나타나는 등 법칙이 뒤틀린다.
이는 전쟁 당시에 '자국의 상징인 천황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친, 아름다움을 간직한 일본'이 실재했으나 패전 이후 미 군정이 들어서는 등 변화가 일어나며 일본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 이르러 '일본적 미'가 완전히 소멸했음을 뜻한다. <풍요의 바다>의 도입부가 위령제 사진과 그것에 공명하는 기요아키인 이유는 <풍요의 바다>의 시작점이 '아름다움이 실재했던 시대'이며 '그것을 구현할 인물이 태어날 수 있는' 시대였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미시마적 사고로 생각하자면 사진 속 병사들과 전사자들이 곧 '아름다움의 체현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마 맞을 것이다.
미의 화신 기요아키가 사진을 보며 '비애를 느낀' 데서 알 수 있듯 아름다움이 살아 있던 시대에서는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간직한 누군가가 태어나 그 아름다움을 이어나갈 수 있었으나, 종전 이후 일본의 아름다움이 소멸했고 따라서 미의 화신 또한 탄생할 수 없게 되었다. 태국의 공주 잉 찬이 미의 화신이 되거나 가짜 화신 도루가 나타나는 등의 이상 현상은 그 결과물이다.
마지막 권인 <천인오쇠>의 결말은 사토코가 혼다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혼다는 <풍요의 바다> 전 이야기에 걸쳐 미의 화신을 좇는(보는) 사람이다. 사토코가 이를 부정하는 장면은 아름다움이 단순히 잊어진 것이 아닌(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기록한 사진에서 비애를 느끼는 기요아키로부터 알 수 있듯, 그로부터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중요하다) 소멸했음을 상징한다. 시대가 끝나고 아름다움도 사라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풍요의 바다> 첫 장면은 보여지는 자(추모하는 병사들)와 보는 자(혼다와 기요아키)로 나뉜다.
<풍요의 바다>의 전체 이야기 또한 보여지는 자(기요아키를 비롯한 환생자들)와 보는 자(혼다)로 나뉜다.
<봄눈>의 배경이었던 1910년대는 일본의 정신이 살아 있던 시기였으므로 '당시를 겪지 않더라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이 존재했다. 즉 아름다움에 있어 그 시대를 겪었느냐, 겪지 않았느냐는 문제되지 않는다. 그 시대와 공명할 수 있는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보여지는 자들이 탄생할 수 없는 시대로 넘어간 일본에는 보는 자, 혼다만이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었다.
홀로 남겨진 혼다가 끝내 다다른 곳이 텅 빈 풍경인 것은 당연하다. 그가 지켜봐야 할 보여지는 자들은 이제 없으니까.
'이 정원에는 아무것도 없다. 기억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자기는 와 버렸다고 혼다는 생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