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게 위로를 베푸소서 여든 살이 되어 내일이 없는 이에게."
엘리엇의 시 구절을 여기에 기록해 둔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어쨌든, 내 책 중 하나의 오프닝으로 쓰려는 건 아니다. 나는 다시는 아무것도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구절들을 적는다면, 나는 이것을 문학으로 여기지 않는다. 전혀 아니다.
나는 60년 동안 오직 문학만을 해왔고, 충분히 썼다. 그러니 이제 끝의 끝자락에서 단 한 순간만이라도 명징해지는 것을 스스로 허락하려 한다. 서른 살 이후에 내가 쓴 모든 것은 고통스러운 기만(imposture)에 불과했다.
나 자신을 넘어서리라는 희망도 없이, 내 그림자를 뛰어넘을 능력도 없이 글을 쓰는 일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어느 지점까지는 나 자신에게 정직했다. 예술가로서 가능한 유일한 방식으로 말이다. 즉, 나 자신에 대해 모든 것,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환상은 얼마나 더 쓰라렸던가. 문학은 당신 자신에 대해 그 어떤 진짜(real) 정보도 말해줄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페이지에 첫 줄을 새기는 순간부터, 펜을 쥔 당신의 손은 마치 장갑 속으로 들어가듯 이질적이고 조롱하는 듯한 손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페이지라는 거울 속 당신의 이미지는 수은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그 무질서한 덩어리들로부터 거미나 벌레, 퇴폐자, 유니콘, 혹은 신이 응고되어 나타난다. 정작 당신이 원했던 건 그저 당신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문학은 기형학(teratology, 괴물 연구)이다.
뭐 나는 잘 모르는 작가지만
듣기로는
이 책을 기다리는, 기대하는 분들이 여기 있다고 그러니
그 책을 시작하는 그의 말에
나의 말을 조금 얹어보면
나는 잘 모르겠음. 문학이 당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인지.
당신이 표현할 수 있는 당신 자신이라는, 정확한 대상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또 다른 삶의 실천 아닐까, 글을 쓴다는 것은, 소설을 쓰던 뭘 쓰던 간에. 그 자체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갈 뿐.
누구도 이미 걸어온 자기 발자국들을, 자신이라는 실체를 정확하게 되짚어 다시 걸어오거나 재현하거나 그럴 수 없음.
없다고 봄, 나는. 물론 그럼에도 그러려는 이유가 나름 있겠지.
그런데 있다면, 역시 다시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과거의 데이터를 재구성해 새롭게 살기 위한 방편이라고 나는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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