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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면 까먹기에 개략적인 전개 내용을 메모해봄 잘못 적은 부분은 지적해주면 바로 고칠게~!!


느끼는 거지만 나는 늘 팔랑귀 같음 어떻게 보는 책들마다 이렇게 매료되고 정답처럼 다가올까?


그렇지만 얼마 안 있어서 다른 책들을 읽다가 또 지금의 성이 무너지고 새로운 성이 만들어지겠지? 흐흐,,,



+a. 주요 개념

가능성 : 경험에 의해 모순 없이 생각될 수 있는 상태

가언적 : 조건적 판단 형식(만약 A라면 B다)

물자체 : 인식 구조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 (그러나 인식할 수 없음)

감관 : 감각 기관으로 감성을 통해 직관 자료를 제공함

감성세계 : 감각으로 경험되는 세계(=현상계)

예지세계 : 이성으로만 생각되는 세계(= 물자체 영역)

경향성 : 욕망, 자연적 성향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

관계 : 판단에서 주어와 술어 사이의 연결 방식

관념론 : 사물이 의식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는 입장

범주 : 자신이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선험적 개념의 틀(양, 질, 관계, 양상)

변증적 : 이성이 경험을 넘어 모순이나 오류에 빠지는 작용

이성 : 지성을 넘어 전체적 원리와 통일을 추구하는 능력

지성 : 개념과 범주로 경험을 사고하는 능력

직관 : 대상이 직접 주어지는 방식

초험적 :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 조건에 대한 탐구

초월적 : 경험을 넘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

선험적 : 경험 이전에 성립하는 인식

후험적 :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

분석판단 : 술어가 이미 주어 안에 포함(모든 총각은 미혼이다)

종합판단 : 술어가 새로운 내용을 추가(이 사과는 달다)



b. 요약

1. 실재하지 않는 형이상학이 학문으로 성립할 수 있는지 묻는다.

2. 형이상학적 인식인, 선험적 인식으로의 수학과 자연과학은 이미 보편적 학문이다.

3. 수학과 자연과학의 법칙은 주어진 인식을 확대하는 선험적 종합판단이다.

4. 7 + 5 = 12라는 명제는 분석적 명제 같지만, 자세히 고찰하면 12라는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기에 종합적이다.

5. 즉, 순수 이성 또한 경험 없이 새로운 지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하므로 종합적이다.

6. 데이비드 흄은 관념은 경험에서 나오며, 인과성은 객관적 필연성이 아닌 오랜 습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7. 칸트는 흄의 주장을 통해 인식 능력을 감성(직관)과 지성(사고), 두 능력의 결합으로 분석한다.

8. 감성은 대상이 직접 주어지는 방식이며, 직관을 제공한다. (우리가 사물들을 직관할 수 있는 것은 직관을 통해서일 뿐)

9. 그러나, 인간에게는 공간과 시간의 관념이, 경험에 앞선 선험적 직관 형식으로 존재한다.

10. 예시로 수학은 이와 같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선험적 직관 구조 덕분에 필연적 지식이 된다.

11. 인간 지성은 감성의 자료(현상)를 범주라는 개념의 틀로 정리한다.

12. 범주(인과성, 실체, 상호작용 등)는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선험적 조건이다.

13. 자연 법칙은 자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지성이 자연에게 부여한 질서이다.

14. 인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물자체) 알 수 없다.

15. 때문에 순수 지성으로 물자체와 관계를 맺고자 하여도 객관적 실재성이 없는 자의적인 결합이다.

16. 전통 형이상학은 현상을 넘어 영혼, 세계, 신 같은 것을 주장하였다.

17. 이성은 보편성과 통일성을 추구하는 초월적 개념(경험을 넘어선 이성의 생각)을 만들어낸다.

18. 때문에 형이상학은 독단적 학문이 아니라, 인식의 한계를 규명하는 학문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c. 감상

경험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아마도 여태까지 경험을 신체가 감각한 것에 대하여 정신이 후속적으로

의미를 정리, 부여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에 앞선, 선험적 지성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 굉장한 충격이다.

데이비드 흄은 인상(직접 경험하는 감각)에서 관념(상상, 생각, 기억)이 희미하게 복사되기에 모든 인간 개념들이

경험 인상의 복사라는 주장을 펼쳤다. 때문에 ‘A가 B를 치면 움직인다.’와 같은 현상은 A와 B 각각의 움직임이지

인과가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 즉 필연이 아니라 반복, 습관이라는 말이다.

그의 이런 주장은 ‘태양이 내일 뜨지 않을 수도 있다.’, ‘물이 내일 끓지 않을 수도 있다.’와 같은 급진적인 예로 이어질 수 있다.

칸트는 이러한 흄의 주장에 충격을 받았다. 물리학 등 자연과학 전체가 인과 법칙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논리에는 모순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태양이 지구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돈다’의 관점으로 뒤집는 것을 시도한다. 인식이 대상에 맞춰진다는 기존 철학의 틀을 깨부수고,

대상이 인간 인식 구조에 맞춰 나타난다는 이성의 세계를 열어버린다.

이를 통해 그는 자연 법칙의 근거는 자연 자체가 아니라 범주를 통해 조직된 세계인 ‘인간 인식 구조’를 설명한다.


물자체를 볼 수 없으나, 감성세계에서 작용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긴장도 존재하고, 범주를 어떤 근거에 의거하여 12개로

구분하였는지에 대한 긴장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현대 철학자들이 어떤 견해와 주장을 내놓았을지

심히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그가 정립한 경험의 새로운 정의는 정말 충격적이고 또 논리적이다.

이 논리를 적용하면, 같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설명되니 말이다.

요즘 인상을 받는 것이지만 철학은 정말 인식의 전환, 해체와 조립의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무언가를 명확히 인지하고 이해하려면 그 대상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필히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칸트가 강의할 때 자주 언급하였던 ‘철학함’에 대한 정의도 새삼 되새겨본다.

철학은 암기하는 학문이 아닌 스스로 사유하는 활동임을 말이다. 현대에 와서 만인에게 상식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칸트의 철학을 접하기 전에 경험이 무엇인지 통찰해보질 못했다. 이러한 부분에 자책과 반성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