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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을 인터넷 방송으로 플레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스포일러를 피해야 한다거나, 선정적인 장면이 나온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치의 문제다.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치를 포함한 성향의 문제다. <디스코>는 게임 설계상 플레이어의 진지한 선택을 자주 요구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그렇듯 플레이어마다 고르는 선택지는 천차만별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의도적인 반어법이 아니고서야 진지하게 고를리 없을 듯한 선택지를 고르는 모습을 보며 논쟁이 생기는 일도 허다하다. 물론, 이런 <디스코>의 다양한 정치성향 자체가 이미 제작자들에 의해 편향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며 합당한 지적이다. 개인에게 제작진의 성향과 무관한 선택지를 열어주기에는 이미 <디스코>의 세계와 서사가 너무나 정치적이다. 그건 아마 <디스코> 속 세계가 현 상황으로부터 어떤 득도 볼 수 없는 몰락한 변방이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이런 세계에서 현상유지는 그 자체로 나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디스코>는 실제로 그런 생각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혹은, 그런 반영 또한 정치적 주장에 불과할 수도.



<디스코>만큼 자유롭지는 않지만, <맨디블 가족>을 정치적 주장과 떼어놓고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미국이 망하는 이야기이고, 망하는 방식이 뚜렷한 이야기이다. 혹자는 그 몰락의 방식으로부터 현대 미국인이 두려워하는 악몽을 엿볼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보편적으로 다가올 묵시록은 아니리라 여긴다. 제2의 IMF 사태를 두려워하는 한국은 제2의 IMF 사태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흥행시키지 않는다. 크라카우어가 <칼리갈리에서 히틀러까지>에서 독일 영화를 토대로 분석한 당대 독일인의 정신은 피폐해진 독일의 현실을 극에 그대로 올리지 않는다. 베스트셀러인 <맨디블>은 미국인에게 있어 소행성 충돌 같은 '있을 법도 하지만 결코 일어나진 않으리라 믿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서 수용되었고, 당연히 그럴만하다. 그러니 앞으로 <맨디블>을 이야기하며 예상하는 의도나 사상에 대해서는 대체로 작가에게 국한시키는 편이 나을 테다. (아마 내게도 귀속시켜도 이상하지는 않다) <맨디블>은 너무나 도덕적으로 해이해진 미국이 필연적이게도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이야기다.



미국의 방만한 재정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세계 무역 구조는 너무나 오랫동안 거론되었다. 앤드루 로스의 <크레디토크라시>에서 분석하듯 대부분의 현대 국가는 엄청난 부채를 짊어지고 있지만, 그 부채에는 대가가 따른다. 미국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채권의 액면가는 대개 기축화폐인 달러로 찍혀 있으며, 미국은 국내 경제 정책을 위하여 달러 통화량을 마음대로 늘려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 둘이 합쳐지면 미국은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늘 빌린 액수보다 더 적은 액수를 돌려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케네스 로고프가 <달러 이후의 질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 경제의 실패에 세계 경제가 휘말려 들어가는 것은 일상사였고, 그 도구는 늘 달러 인플레이션이었다. 그 구조는 엄밀히 말해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고, 2026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경제가 늘 그렇듯, 이것은 실제에 무엇이 정말로 영향을 미칠 만큼 유의미하고 무엇이 추상화를 위해 무시해버려도 될 정도로 미약한가를 주장하는 근거 없는 종교에 가깝고 나는 이 분류에서 이단에 가깝다 - 그러나 멸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정통인 세상이 어디에 있겠던가?)



<맨디블>은 이 구조가 결국 버티다 못해 끊어지고 마는 미래를 다룬다.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전산망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전국가적 셧다운 "스톤에이지"를 경험한 미국은 제1국가로서의 아우라를 잃을 뿐 아니라 국제적 신뢰도를 점차 잃었고, 미국 바깥의 국제적 협의를 통해 일종의 대안 기축화폐인 방코어가 임시로 만들어지고 미국 채권에 대한 지불을 방코어를 통해 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 임기 초인 대통령은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방코어 거래를 금지하고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며, 미 증시는 폭락한다. 전세계 증권거래소는 며칠 간 거래를 중지하고 이 여파가 사그라들기를 기대하지만, 다시 열린 거래소에서 주가는 마저 폭락해 하한가가 우스울 수준으로 거래되다가 거래 중지 품목으로 떨어지며 그 여파로 달러화는 휴지조각이 된다. 바야흐로 초인플레이션을 맞이한 미국에서 일찍이 전간기 초인플레이션 독일이 그랬듯 대부분의 상류층과 중산층은 몰락했고, 투자형 연금인 401k에 묶여 있던 돈은 전부 날아갔다. 이 배경에서, 대대로 상당한 부를 상속받던 맨디블 가족의 자원 공급이 끊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참한 몰락기가 펼쳐진다.



달러와 주식에 묶여 있던 맨디블 가의 재산은 모조리 날아갔고, 경제학 교수는 임금을 지불받지 못하다가 결국 대학에서 쫓겨나며, 빚을 내서 산 집의 이자는 점차 지불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고,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도시에 공급되는 한정된 물량은 금새 사재기에 시달려 동나고 만다. 이 재난 시기에 유년기를 보낸 소년 윌링은 생존주의자에 준하는 기지를 발휘하며 귀금속을 숨기고 교환할 가치가 있을 만한 물품을 사재기하고 주변 가구의 물건을 몰래 훔쳐오는 등 비도덕적이지만 발빠르게 움직이며 맨디블 가족을 도시로부터 시골 농촌으로 이주시키는 데에 성공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 둘 다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디폴트를 경험한 전형적인 국가다운 모습으로 변모한 2040년대의 미국은 부족한 자원을 국유화하고 국외에 진 빚을 방코어로 갚기 위해 징발을 일삼는 한편, 미국의 소비지상주의적 문화를 부족한 돈으로나마 이어나가기 위해 남은 돈에 과도한 세금을 붙이고 용이한 사회 통제를 돕는 인터넷 연결 칩을 두뇌에 이식하도록 강제한다. 한때 도시 밖에서 농장을 꾸리는 데에 성공해 맨디블 가가 이주할 수 있는 유일한 발판을 만들었던 삼촌은 이 새로운 미국에서도 반항자로 낙인찍히며, 이후 윌링과 함께 미국이 미국으로 남아 있는-혹은 자유지상주의적 미국인이 그렇게 믿는-최후의 보루인 미국 안의 독립국, 네바다 합중국에서 살아간다.



이상의 이야기에는 너무나 강한 정치적 영향력이 돋보인다. 물론 이상의 전개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가상적 서사이며, 케인즈가 제시한 바 있는 방코어를 비롯해 국제 경제와 미국 경제의 디커플링 우려 및 서브프라임 모기지 이후 찾아올지 모를 진정한 경제적 몰락 등 재료가 될 만한 소재는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에 비해 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 마크 피셔식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결과일 것이다. 일찍이 피셔는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을 일례로, 현재의 자본주의 국가 다음의 어떤 것이 올지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 그것이 내파되며 서서히 무너지는 것만을 멸망의 예시로 들 수 있는 상상의 고갈 상태를 지적한 바 있다. 현재가 무너지는 모습이 어떠하든 그것은 자본주의적으로 무너지는 것이어야만 하고, 그 이후에 올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맨디블>에서도 그렇다. 미국이 어째서 몰락하게 되는지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경제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 몰락한 미국과 미국 내부의 자유주의적 네바다 합중국이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이것은 경제적 사변 소설이니 말이다. (물론, 미국을 탈출해 네바다로 간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형벌 역시 아주 단순하게 모든 디지털 계좌를 몰수하는 것이다)



사실, 몰락 이후 미국의 모습은 미국에서 상상하는 중국의 사회 현실과 흡사하다. 돈을 들고 와 부유하게 지내는 외국인 사이에서 너무나 낮은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내국민과 이들을 모든 점에서 통제하고 사회 순응도에 따라 징벌을 내릴 수 있는 사회통제용 디지털 인프라. 그 점에서 <맨디블>의 작가가 상상하는 끔찍한 악몽은, 미합중국에서 미합이 떨어지고 중국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충실하게 경제적이고 무한한 빚을 질 수 있다는 이상한 몽상을 하지 않는 초강대국에게 짓눌려, 더 약해진 중국으로 변해가는 모습. 그게 참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