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b
-내게 말해 주게. 누군가가 누군가를 친애할 때, 어느 쪽이 어느 쪽의 친구로 되는지, 친애하는 쪽이 친애함을 받는 쪽의, 아니면 친애함을 받는 쪽이 친애하는 쪽의 친구로 되는지. 아니면 아무런 차이도 없는 건지?
215e
-반대되는 것이 친구라고 주장하는 거지. 가장 반대되는 것이 가장 반대되는 것에 더할 수 없이 친구라는 거야. 그런 것을 각기 열망하지. 닮은 것을 열망하지는 않기 때문이라는 거야.
뤼시스에서 서로에게 없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컨대 a와 b가 닮았다고 했을 때 그들은 각자가 본인에게 없는 것을 상대에게도 줄 수 없다. a는 의사고 b도 의사일 경우, 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둘 다 의사이기 때문에 법조인으로서의 도움을 서로에게 줄 수 없다.
이건 유용성, 거의 도구로 취급하는 비루한 생각 아닌가? 조금 뒤에 이어서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것'이 튀어나온다. 어떤 것도 나쁜 것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신체는 좋고 유용하기도 한 의술에 우호적이며,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철학자들은 무지의 악 때문에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다.
-혼의 경우에도 몸의 경우에도 그리고 모든 경우에도 나쁘지도 훌륭하지도 않은 것이 나쁨의 나타나 있게 됨으로 해서 훌륭한 것의 친구이게 된다.-
아래는 박종현 번역이 아니라 찰스 칸 저서에 나온 것을 재인용
220a-b
-소중한 것에 관해서도 똑같지 않은가? 사물들이 다른 어떤 소중한 것을 위해 소중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결국 말로만 그렇다(소중하다)고 하는 것일 뿐이네.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바로 저것, 즉 우정이라 불리는 이 모든 것들이 귀결되는 것이지. ... 그렇다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소중한 것을 위해 소중한 것이 아니네.-
본래적으로 소중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욕망도 진실로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일까?
221d~에서 욕구는 그 자체로 결핍을 함축한다고 나오는데 (욕구하는 쪽이 부족해하는 것, 이걸 욕구하네.) 향연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다.
다음 주는 <크라틸로스>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라고 플라톤이 자주 언급했듯 굉장히 읽기 까다로운 대화편이었습니다 친구라는 단어가 얼마나 나오는지, 게슈탈트 붕괴를 느끼기도 했지요... 겉으로는 정말 그럴듯해 보이는 논의를 끝없이 뒤엎어버리는 소크라테스의 자기 반박에서 이 대화편의 철저함이 엿보입니다 물론 아포리아로 끝나는 대화편이지만, 플라톤에게 있어 아포리아란 대화의 중단이기보단, 전제를 재검토하라는 비판적 독서의 요청이지요 실제로 여기서도 eros와 philia에 대한, philia의 일상적 의미에 대한 더욱 철저한 구분이 요구됩니다 당연히 플라톤이 이를 몰라서 이런 애매성 위에 대화편을 구성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아카데미아와 뤼케이온 사이의, 팔라이스트라라는 애매한 장소 선정만 봐도 그렇지요
비록 향연, 파이드로스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이데아론을 연상시키는 첫째 친구 개념만 보더라도 충분히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